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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7일 미시시피주 매디슨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매디슨/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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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대 교수의 미 대선 깊이 보기 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지난 3월1일 ‘슈퍼화요일’ 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데 이어, 15일 ‘미니 슈퍼화요일’ 5개 주 경선에서도 오하이오를 제외한 4개 주에서 승리했다. 이대로라면 이내 곧 후보직을 걸머쥘 기세다. 올해 초 공화당 경선이 시작될 즈음에만 하더라도 트럼프의 질주는 한두 번 반짝하다가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경선이 후반전으로 접어든 현시점에서 그는 대세를 형성해 진심으로 그를 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화당 주류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저널인 <내셔널 리뷰>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정치인으로 뛰고 있지만, 트럼프는 하나의 현상으로 뛰고 있다”고 기술했다. 즉, 트럼프의 출마가 돈키호테식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일정하게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몸을 실은 시대현상은 무엇일까?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전역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린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의 세계화가 중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선 1980년대 이후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세계화는 중산층 미국인들의 삶을 황폐화했다. 세계화는 대공황 시절과 비견될 정도의 소득불평등과 함께 수백만개의 생산직 일자리 감소를 낳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의 소수 금융자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규모 구제금융은 중산층 노동자에게 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세계화로 몰락한 백인 중산층
‘월가 대변’ 공화 주류에 반기 든
‘아웃사이더’ 트럼프에 열광
이민자 추방·부유세 등 복지공약으로
인종갈등·실업률 높은 지역서 승리
트럼프 현상은 일회성 돌출 아냐
혁신 원하는 공화 내부의 반란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세계화는 백인 중산층을 떠받쳐온 가치체계를 붕괴시켰다. 역사적으로 미국 중산층은 근면, 정직, 가족, 그리고 종교적 헌신 등을 중심적인 도덕적 가치로 삼아왔고 보수적인 백인일수록 그 정도가 더했다. 그런데 세계화는 이윤 극대화를 제1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적 한탕주의와 이질적인 히스패닉 문화의 대량 유입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백인 중산층은 자신의 도덕체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러한 세계화의 여파는 공화당 지지자만 놓고 볼 때 보수적인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치명타였다. 그들은 자신이 지지해온 공화당이 소수의 월가 자본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기에 급급했다고 간주한다. 그들이 원하는 생산공장이 멕시코와 다른 제3세계로 이전할 때 공화당은 최소한 이를 묵인했다고 생각한다.
멕시코와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 혜택마저 앗아갈 때 공화당은 속수무책이었다고 비판한다. 히스패닉 인구와 문화의 범람,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에 대처해 공화당이 해준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고 여긴다. 그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공화당을 근저로부터 개혁할 수 있는 록스타로 보일 법하다. 그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을 보호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등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해외로 이전한 공장들을 불러들여 생산직 일자리를 늘릴 것이며 무역적자를 해소할 것이다”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멕시코 국경에 불법 이민을 막는 거대한 장벽을 세울 것이다” “국경을 튼튼히 해 중산층의 복지를 빼앗아가는 불법 이민자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인 무슬림의 입국도 막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이런 언사는 이들의 경제적 및 문화적 소외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국수주의적 고립주의 냄새마저 풍기는 트럼프의 정치적 정체성은 그의 권위주의적인 행동 및 언변과 함께 미국 사회가 ‘갈색화’돼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인종주의적 우파와, 세계화와 양극화로 삶의 방향을 잃은 전통적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들끓게 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지표는 이를 실증한다. 공화당 경선에서 각 후보가 승리한 지역을 보면 트럼프는 플로리다, 미시시피 등 대부분의 남부 주와 서부의 네바다, 중서부의 미시간과 일리노이, 동북부의 매사추세츠에서 승리했다.(그림1 참조)
특히, 남부 주에서 트럼프가 거둔 성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크루즈 후보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 심지어 현역 상원의원 루비오가 후보로 뛴 플로리다에서도 대승을 거두어 그를 후보직에서 사퇴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이 주들은 과거 노예제에서 유래된 흑인과 함께 최근 중남미로부터의 이민으로 히스패닉계 인구의 비율이 높고 인종적 갈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이는 공화·민주 양당 경선에 참여하는 인구 구성을 갈라놓았다. 유색인종은 민주당 경선에 몰리고 백인은 공화당 경선에 몰리게 만들었다. 공화당 경선에 참여한 백인들은 인종적 편견을 거침없이 내비치는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는 뜻이다.
또한 미국 각 주의 최근 실업률을 보면, 신기하게도 실업률과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보낸 주가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2) 이는 세계화로 인해 붕괴된 삶을 경험하고 있는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대거 공화당 전당대회장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표심은 월가를 대변하는 공화당 주류 후보들을 제치고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에게 열광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정책을 뜯어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욕구를 알 수 있다. 공화당 경선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보면 경제(27%), 테러리즘(18%), 이민(12%), 사회보장(10%), 재정적자(10%), 낙태(5%), 총기 규제(5%) 순서였다. 그런데 트럼프와 다른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로 구분해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동안 공화당 주류가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온 이민이나 사회보장과 같은 정책에 더 높은 순위를 부여한 반면, 다른 후보 지지자들은 낙태나 총기 규제 등 공화당의 전통적인 쟁점을 우선시하고 있다.
또 공화당 지지자들의 압도적인 다수(75%)는 ‘미국의 경제체제가 소수의 부자만을 위하며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정부 인사들은 하나같이 사기꾼’(67%)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을 다시 소득 수준으로 나눠 보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저소득층에서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소득층에 비해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두 배에 가깝거나 그 이상이다. 즉,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부자의 정당이었음을 고려한다면, 트럼프는 분명 공화당 내부의 반주류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대변하는 공화당 비주류들은 트럼프가 과거 낙태를 옹호했다거나 종교적 신실함이 없었다는 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소득층에 부유세를 매겨 그들의 복지를 더 챙겨줄 것’(62%)을 바란다. ‘불법 이민자를 비롯한 모든 이방인을 미국에서 추방하길’(68%) 원한다. 심지어 멕시코와의 접경지대에 장벽을 설치하는 것을 주저없이 찬성하기도(75%) 한다. 경제 문제와 사회복지, 이민 쟁점에서 다른 어떤 후보보다 트럼프에게 더 많은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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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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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트럼프의 반주류 운동이 공화당 기득권층에 달가울 리 만무하다. 공화당 주류는 트럼프가 대의원의 과반을 얻지 못하면 오는 7월 중재 전당대회장에서 반트럼프 연합을 형성해 판세를 엎겠다는 복안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가 남은 주에서 대세를 확정지을 만큼 선전하지 못한다면 반트럼프 연합의 가능성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트럼프 현상이 단순히 억만장자의 일회성 돌출행위가 아니라 기층으로부터의 혁신을 원하는 공화당 내부의 반란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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