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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2 22:16 수정 : 2016.11.22 22:16

기고 l 트럼프 경제정책 전망
감세혜택 대부분 부유층에 집중
관세장벽 쳐도 공장 생산성 제한적
달러 이미 고평가…팽창재정 가세땐
경기과열·불균형 심화 우려
‘재정긴축 압박·경기침체’ 위험 상존

1971년 3월, 프랑스 파리의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가 목청을 높였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파리가 아닌 워싱턴에서 결정하는 겁니다.”

두 차례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 가치가 계속 추락하던 때였다. 더 이상 고정환율로 묶을 수 없게 되자 미국과 유럽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파리에 모여 달러 환율의 자유변동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상적인 중앙은행이라면 이 경우 강한 긴축으로 통화가치를 방어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연준 의장은 ‘달러를 계속 풀겠다’며 역정을 냈다.

미국 중앙은행의 대외 독립선언이라 할 만한 이 유명한 발언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 구호를 연상케 한다. 과거 일을 살펴보는 것은 트럼프 시대를 미리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달러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강한 하락 압력을 받았다. 복지 지출을 대폭 늘리는 가운데 베트남전까지 치르면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푼 탓이다. 물가 오름세까지 빨라졌다. 화폐가치를 믿을 수 없게 된 유럽이 미국에 달러를 돌려주고 앞다퉈 금을 인출했다.

결국 미국은 폭탄 선언을 했다. 1971년 8월, 금을 더 이상 내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적자재정과 화폐증발 정책을 계속하려고 족쇄를 푼 것이다. 모든 수입품에는 10% 관세를 매겼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그 직전 존 코널리 미 재무장관은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의 가치를 걱정하는 유럽 장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달러는 미국 화폐이나, 문제는 당신들 것이다.”

미국의 팽창적 재정통화정책은 1차 석유파동과 전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침체)을 야기했다. 그러나 경제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었다. 달러 위기가 발생했다. 1978년 11월 미국 정부는 유럽과 일본의 도움을 받아 300억달러의 외환 실탄을 모았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직접 1%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발표했다. 미국 통화정책 독립선언은 5년 만에 폐기됐다.

새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는 공격적인 통화긴축에 나섰다. 달러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미국의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1981년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대규모 감세와 군비 지출로 재정적자를 대폭 늘렸다. 정부가 돈을 끌어 쓰는 바람에 금리가 뛰고 물가 압력이 커졌다. 연준은 더욱 강하게 긴축했다. 볼커는 금태환 정지를 주도한 인물이었기에 정부 적자를 함부로 지원했다가는 달러가 위기에 빠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레이건 정부도 별 불만이 없었다. 초고금리로 전세계 자금이 미국에 몰려와 정부에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순은 누적됐다. 방만한 지출로 경상적자가 대폭 확대되는데도 달러는 계속 뛰어올랐다. 농업과 제조업이 피폐해졌다. 이번에도 미국은 보호무역을 위협하면서 달러를 평가절하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다. 미국은 재정긴축을 약속했으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금리와 달러가 치솟고 있다. 지난 2주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주요국에 대한 달러화 가치는 14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레이건 시대를 연상케 하는 자연스런 반응이다. 트럼프는 대규모 감세와 사회간접자본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 지출을 약속했다.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 많은 빚을 내야 한다. 타이밍은 매우 나쁘다. 이미 미 경제는 완전고용에 근접해 여유 노동력이 별로 없다. 물가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경기가 정점 부근이다. 달러는 이미 너무 고평가돼 제조업을 질식시키고 석유 이외 부문 무역적자를 키우고 있다. 팽창재정이 가세하면 경기가 과열되고 불균형은 심화된다.

연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1970년대를 따르면, 물가와 국제수지를 망쳐 달러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1980년대를 따르면, 농업과 제조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무역적자가 심각해진다.

과거 같은 달러 평가절하는 어렵다. 유럽과 일본은 극도로 쇠약해져 오히려 수년째 달러 강세를 몰아왔다. 미 경제도 매우 취약해져 강한 통화긴축을 견디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의 ‘위대한 미국 재건’은 경제를 잠시 더 달굴 순 있으나, 급격한 긴축과 경기침체를 잉태한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평론가들은 ‘세계화에 대한 거부’라 말한다. 한편으로 옳지만 또 한편으론 타당치 않다. 브렉시트와 트럼프는 기존 정치질서, 왜곡된 자원배분 체제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분배의 모순이 수십년간 누적돼 발현한 현상이다. 동시에 이는, 기존 질서가 이 모순을 단지 ‘세계화’의 탓으로 돌려 정치적 에너지를 옆길로 빼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집권한 트럼프는 이 모순을 극대화할 태세다.

미 ‘세금정책센터’에 따르면, 트럼프의 감세는 중위 20% 계층에 1010달러를 돌려준다. 연간 세후소득의 1.8% 수준이다. 반면, 최상위 0.1%에겐 연간 세후소득의 14%에 이르는 110만달러를 쥐여준다. 소비성향이 극히 낮은 부유층에 감세가 집중돼 경기진작 효과는 미미하다. 대신 나랏빚은 영구적으로 늘어난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은 일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나, 치솟는 달러화는 그 효과를 무차별적으로 희석하고 남을 것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은 미국에 새 공장을 짓게 할 것이나, 이는 생산성 저하를 야기해 국민소득을 갉아먹을 것이다. 비교열위 제품까지 스스로 만들려면, 비교우위 산업 생산에 투입할 자원을 줄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미 재정지출 확대는 긴요했다. 실업이 많았고 물가하락 압력이 컸다. 그러나 당시 야당(공화당)은 ‘재정악화’를 이유로 극렬히 반대했다. 그런 진영이 여당이 되어 뒤늦게 큰 빚을 내려 한다.

현 정부에 절망해 트럼프에게 표를 줬던 제조업 노동자와 농민들은 달러화 강세, 뛰어오르는 이자율, 높은 물가, 결국엔 경기침체의 고통을 맞이할 위험에 처해 있다. 경기사이클은 나중에 다시 올라갈 수 있지만, 악화된 세금정책과 국가부채는 영구적인 짐으로 남아 생활 수준을 짓누르게 된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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