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전 산은 회장이 폭로한 대우조선의 부실 내막 |
정부가 조선·해운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날, 대표적 부실기업인 대우조선 처리와 관련해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을 둘러싼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의 내막을 공개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고, 홍 전 회장은 2013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누구보다 내밀한 속사정을 잘 아는 당사자다.
홍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4조2천억원 지원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감원장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고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지원을 국책은행에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는 얘기다. 그것도 ‘청와대 서별관회의’라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밀실 모임에서 말이다. 구조조정 원칙이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홍 전 회장은 또 “(당국은) 모든 사안에 관여하면서도 방식은 (흔적이 남지 않게) 말로 지시했고, 따르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도 아니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이런 식으로 결정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으로 그 역시 낙하산 출신인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의 낙하산 인사 실태도 폭로했다. 그는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산은이 3분의 1이다. 산은은 업무 관련자를 보내지만 당국은 배려해줄 사람을 보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우조선이 이렇게까지 부실해진 데는 낙하산 인사 탓이 크다. ‘정피아’와 ‘관피아’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고 앉아 그나마 남아 있던 단물마저 다 빨아먹었다.
홍 전 회장의 폭로 배경에는 ‘국책은행 책임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또 거론된 이들 모두 “일방적 주장”이라고 부인한다. 그러나 홍 전 회장이 핵심 당사자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 수사에 착수한 검찰도 분식회계 등 특정 사안에 국한하지 말고 부당한 압력이나 낙하산 인사 등 금융당국과 청와대, 정치권의 비리까지 철저히 파헤치고 엄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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