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7 19:13
수정 : 2016.05.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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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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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한겨레신문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임지선(35)씨, 그러니까 저는 마감을 하다 말고 멍하니 앉아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다 뒤적였죠. 2년째 줄기차게 회사에 내온 기획안을. 거기에는 ‘기업 일자리 질 평가 기획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7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뒤로 ‘일자리 질’ 기획을 생각해 왔습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피해자 관련 취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무실로 온 전화를 무심코 받았는데 상대가 백혈병 산재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군요. 누구시냐 물으니 유럽의 한 기관투자사 직원이랍니다. ‘지속가능투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더군요.
그때까지 무식한 저는, 국민연금 같은 전세계 거대 기금 운영사들이 진짜로 ‘지속 가능’ 차원에서 기업의 인권 문제 등을 꼼꼼히 살핀 뒤 투자에 나서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지속가능경영이니, 노동 인권이니, 환경 경영이니 살핀다고 해도 결국 안정적인 회사에 투자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고 있더군요. 기업활동이 사회에 해악을 미치지 않는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지 등을 살피더군요. 국제 사회에서 ‘일자리 질’ 논의는 이미 불붙은 상태였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라는 괜찮은 개념을 내놨고 미국 <포천>이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기업’은 투자자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니 많은 기업들이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7년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사회 기준을 분석해 한국 ‘고용의 질’ 측정 기준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발주로 ‘기업 인권 경영 자가 진단 도구’ 개발을 시도한 보고서가 2009년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이러한 작업에는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한겨레>가 해보자. “너무 기업 비판 일색이다”라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모든 데이터를 끌어모아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다면 평가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직장의 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2년 전, 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문화부 소속이어서 ‘직장 문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발제했고 1년 전 경제부로 이동한 뒤에는 ‘기업 일자리 질 평가 기획’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기획안 하나로 잘 우려먹죠?
<한겨레> 창간 28주년 기획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말 사내에 부서를 초월한 태스크포스를 세웠죠. 편집국 소속인 저와 허승 기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서재교 CSR팀장과 박은경 연구원, 미래전략부의 문성호 과장이 모였습니다. 처음 모인 날, 서로 해맑게 물었습니다. “이제 우리 어쩌죠?”
다행히 이 같은 고민을 우리보다 오래 해온 전문가들이 흔쾌히 함께해주었습니다. 6개의 지표에 6명의 전문가 위원.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고용안정성),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일과 삶의 균형),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정신과 신체의 안전),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성취감),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직장 내 차별), 서재교 팀장(임금의 질)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년 고용전망보고서(Employment Outlook)를 통해 밝힌 ‘일자리 질’ 기준은 우리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질 좋은 일자리(quality job)는 단순히 좋은 임금, 밝은 전망만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뜻한다.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으로 쓸모 있으며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동시에 부정적인 영향도 받는다. 근무환경의 질을 평가한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면을 관찰해야 하는 도전이다.”
우리는 지금 그 도전을 하고 있고, 당신이 원한다면 그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사족: 이곳에 넣을 사진을 합성하고 있자니 누군가 말하네요. “일 재밌게 하네.” 맞습니다. 전 일을 재밌게 하고 싶어요.
임지선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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