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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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오월극 ‘애꾸눈 광대’ 주인공 이세상 씨
두 동생도 피해입은 슬픈 가족사
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맡아 ‘증언’
“교장들 꺼려 연주·마술도 곁들여” 항쟁 30돌때 해학담은 ‘5.18 품바’
인생사 바탕 6인극 ‘애꾸눈 광대’로
26·27일 서울시청서 ‘첫 상경 공연’ 먼저, 최근 논란의 와중에 선 ‘임을 위한 행진곡’(임행) 제창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보훈처는 5·18 기념식에서 전체 참석자 제창을 반대하고, 합창단의 노래만 허용하도록 했다. 이씨는 이 문제는 투쟁의 역사나 이념의 상징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 곧 정서의 문제라고 했다. “이건 마치 고향 사람들한테 ‘고향의 봄’을 부르지 말라는 얘기나 같아요. 역사 문제를 떠나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잘 보살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게 대통령의 뜻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그가 올리는 6인극 <애꾸눈 광대>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치유와 희망의 노래로 승화시킨다. “이 연극에는 슬픈 가족사가 담겼습니다. 저도 그해 5월 큰 부상을 당했지만, 제 남동생도 공영버스터미널에서 데모를 하다 상무대로 연행당해 고문을 당했습니다. 더 기구한 것은 제 여동생입니다. 5·18 때 희생된 ‘망월동묘역 묘지번호 114번’의 유가족(형)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며 결혼했는데 불행하게 끝났죠. 이 연극에는 비극의 한국 현대사와 그 과정에서 할큄을 당한 가족사의 애환이 함께 존재합니다. 하지만 연극에선 그 슬픔을 닫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80년 5월 ‘큰일’을 당하기 전까지 그는 보통 청년이었다. 한때 악극단에 몸담았던 그는 그 무렵 서울에서 작은 슈퍼와 연탄배달업을 하고 있었다. 가끔 모교 광주상고의 경기가 열리면 야구장을 찾아 열광하기도 했다. 그러다 광주에서 ‘폭도들이 날뛴다’는 방송을 들었다. “저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고, 막연히 울컥하는 의협심이랄까, 아무튼 광주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내려갔어요.” 현장에서 본 광주는 처참했다. 계엄군에게 목숨을 앗긴 주검들을 똑똑히 눈으로 봤다. “저는 전남도청에서 주검들을 수습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농성동 바리케이드를 지나다 계엄군한테 한쪽 눈을 심하게 다쳐 전남대병원으로 실려갔지요. 그때 의사가 ‘자네 썩은 눈깔을 전두환 갖다 주라’고 했어요. 지금은 의안을 해 넣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5·18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85년 5월10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5·18의 숨겨진 실상을 알렸다. 88년 ‘5공 청문회’ 때 안대를 쓰고 나가 증언했다. 그때 특위 위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패를 던지던 장면도 직접 목격했다. 이후 그는 방방곡곡 대학과 중·고교를 다니며 증언과 강연을 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들이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걸 꺼리시더라고요. 그래서 각설이 타령부터 색소폰 연주, 마술을 두루 배워 공연도 하면서 실상을 알리기로 했어요.” 5·18이 그를 광대로 만든 것이다. “2010년 광주항쟁 30돌을 맞았는데도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세상을 해학으로 풀어보려고 1인극 ‘5·18 품바’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영화 <태백산맥>에서 하대치 역으로 출연했던 광주의 극단 토박이 대표 신동호씨를 만난 게 계기였다. 2012년에는 그의 인생사를 바탕으로 극본가 나창진씨가 원작을 가다듬었고, <모란꽃> <금희의 오월> 등 주로 오월극을 만들었던 신씨가 연출을 맡아 ‘애꾸눈 광대’를 제작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70여회 공연했고, 이번 첫 서울 공연에는 극단 크리에이티브 드라마 대표 이행원씨가 연출을 맡았다. 이씨는 “잃어버린 5월 광주의 ‘주먹밥 공동체 정신’과 실종된 민주주의를 살리는 공연을 펼쳐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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