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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6 19:42 수정 : 2016.05.16 23:29

2013년 기념식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공식 기념식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순서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임을 위한 행진곡’ 반대논리 살펴보니

국가보훈처가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식 제창 불가 사유로 든 논거는 두 가지다. “기념일과 같은 제목의 노래만 제창한다는 관례와 어긋나고, 논란이 심해 제창으로 강제하면 국민 통합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보훈처가 ‘제창에 반대하는 쪽 의견’이라며 보도자료에 소개한 논지는 더 황당하다. 이 노래가 “(국민 일각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를 정부 행사에서 제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있고), 북한의 5·18 소재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가사의 ‘임’과 ‘새날’의 의미(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극단적 보수세력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왔기 때문이다. 보훈처의 주장은 결국 ‘북한 관련성 때문에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있으니, 이 노래를 국가 행사에서 함께 부르게 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북 영화 배경음악 사용” 문제제기

영화보다 먼저 만든 노래
배경음악=종북 주장은 무리

“국론 분열시킨다”?

제창 찬성 55%-반대 26%
여론조사 결과엔 눈감아

“대한민국 부정하는 노래”?

새누리 상당수 제창 거부감 적어
정권 핵심부 ‘불편함’ 작용한 듯

하지만 ‘국론 분열’을 이유로 이 노래의 제창을 불허하는 보훈처의 처신이야말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분열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 10일 리얼미터가 전국의 19살 이상 성인 551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식 제창에 찬성하는 의견이 55.2%로 반대 의견(26.2%)을 압도했다. 이 회사가 2013년 5월 벌인 같은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찬성 여론은 12%포인트 오르고 반대 여론은 3%포인트 낮아졌다. 찬성 여론이 반대 의견을 2배 이상 압도하는 ‘일방적’ 여론 지형에는 눈감은 채 보훈처가 석연찮은 ‘제창 불가’ 논리를 고집하면서 기념식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9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2008년까지 아무런 논란 없이 제창돼오던 노래를 보수 정권이 다시 들어선 뒤 갑자기 문제 삼고 나선 것부터가 의도적인 국론 분열 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훈처가 이 노래를 ‘북한’과 연결시키는 보수세력의 선동을 무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등에선 보훈처의 이런 태도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이후 펼쳐진 민주화운동 전체에 종북 색깔을 덧칠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해왔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문제 삼는 ‘북한 관련성’은 그동안의 언론 보도와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노래의 탄생 배경을 살피면 쉽게 반박된다. 이 노래는 1982년 5월 백기완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빌려와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쓰고, 전남대 출신으로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동상을 받은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노래는 광주의 한 극단이 만든 음악극 ‘넋풀이굿’에 삽입됐고, 카세트테이프에 복사돼 전국으로 확산된 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널리 불렸다.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는 북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가 만들어진 것은 1991년으로 시기상으로 한참 뒤다.

일각에선 정권 핵심부가 이 노래에 대해 갖는 ‘거리감’과 ‘불편함’이 기념식 제창 불허로 이어졌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민주화의 ‘청산’ 대상이었던 옛 권위주의 세력에 뿌리를 둔 박근혜 대통령 등 정권 핵심 인사들로선 국가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현실 자체가 달가울 리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이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 입장을 보여온 쪽은 김무성 전 대표 등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옛 상도동계와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인 반면, 군·관료 출신 보수인사와 당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들은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취해온 데서도 드러난다.

보수세력이 이 노래를 근거조차 불분명한 ‘종북 시비’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단순한 ‘정서적 불편함’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화운동을 대한민국의 공식 역사에서 ‘소거’시켜 역사 자체를 정파적으로 독점하려는 보수세력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한꺼풀 벗겨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있다는 합의된 역사인식마저 부인하려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욕망이 드러난다”며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등에서 확산된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에서도 동일한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권 핵심부의 ‘유신적 감수성’(문화적 후진성)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다. 대중음악 전문가인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국민이 똑같은 생각을 갖고, 똑같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유신정권의 ‘국민총화’ 논리가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 온갖 억지스런 이유를 붙여 금지곡을 양산해 가수와 국민의 입을 틀어막던 박정희 시대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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