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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광주인권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베트남의 인권운동가 누옌 단 쿠에(Nguyen Dan Que) 박사. 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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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광주광역시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광주인권상 시상식은 수상자 없이 열린다. 공동수상자로 두 명을 선정했지만, 모두 정부의 출국금지조처로 출국할 수 없다. 한 사람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누엔 단 쿠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말레지아민주공화국 국민인 마리아 친 압둘라다. 쿠에는 베트남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38년째 헌신해왔으며, 압둘라는 반부패 공정선거 운동으로 나지브 라자크 현 총리와 맞서고 있다. 체제는 양극이지만, 민권운동에 대한 정권의 공격성은 다르지 않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국가사범 쿠에를 5·18기념재단이 선정한 일이다. 그는 베트남이 미군을 쫓아낸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13년 가까이 구속됐고, 지금도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다. 그는 베트남 해방 후 한 시도 정권을 괴롭히지 않은 적이 없는, 정권 입장에서 보면 철두철미 ‘친미’ ‘반동’이다. 그런 그를 재단이 기념행사의 최고 영예인 인권상 수상자로 뽑은 것이다.
사실 미국은 베트남 인민에게 ‘철천지원수’였다. 1958년 프랑스가 퇴각한 이래 미국은 인도차이나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핑계로 남베트남에 식민 정부를 세웠다. 아울러 반외세 민족해방과 통일을 열망하던 민중을 앞장서 억압했고 민중 결사체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파괴하기 위해 최악의 파괴적인 전쟁을 수행했다. 1968년 북폭을 시작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 미국이 1975년 패퇴할 때까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게릴라 22만여 명, 북베트남 정규군 110만여 명이 죽었다. 무차별 폭격과 학살로 말미암은 민간인 사망자는 150만여 명, 부상자 300백만여 명에 이르렀다.
쿠에는 북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호치민이 이끌던 인도차이나공산당이 1945년9월 하노이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우자 그의 가족은 공산정권을 피해 남베트남으로 탈출했다. 쿠에는 1967년 사이공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서방으로 유학했다. 그는 전형적인 반민중적 환경에서 살아온 셈이었다.
그는 197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다. 당시는 사이공 정부가 온갖 부패와 잦은 정변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몰락할 때였다. 그는 사이공의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다. 이듬해 남베트남은 ‘공산화’되었다. 주변에선 탈출하라고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수십 년 간 계속돼온 독립전쟁과 내전으로 황폐해진 조국의 재건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호지민시(이전의 사이공)에서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빈곤층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새 조국도 이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특권층이 생기고, 새로운 권력자들이 나타났다. 빈곤층은 여전히 빈곤했고, 약자들은 차별을 받았으며, 사회적 혜택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았다. 특히 의료혜택은 공산당 간부 등 소수의 특권층에 집중됐고 민중들은 접근조차 어려웠다. 그는 이런 의료 정책과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조국 해방 후 불과 1년 만인 1976년 그는 베트남 국립의료원에 해당하는 초레이 병원 원장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쫓겨난 그해 몇몇 동지들과 ‘비폭력 민족진보전선’을 설립했다. 약자와 빈곤층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였다. 베트남 정부는 긴장했고 이 단체가 주목을 받자 1978년2월 그와 그의 동지 50명 가까이를 체포해 구금했다. 정부는 행정처분만으로 쿠에를 10년간 독방에 수감했다.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적 인권단체들이 문제를 삼자 1988년에야 풀어줬다.
석방되고 이태 뒤인 1990년5월엔 베트남 민주화 단체, ‘비폭력 인권운동’을 창립했다. 창립과 함께 인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베트남 정부가 인민에게 돌려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호소문을 세계인에게 발표한다. 한 달 뒤 그는 다시 체포돼, 정부 전복 혐의로 20년의 강제노역과 5년간 가택연금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98년에야 역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다시 풀려났다.
2003년 3월엔, 언론의 자유와 정보 접근의 자유를 박탈한 정부를 비판했다. 이번엔 간첩 혐의로 기소돼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2005년2월 출소한다. 나오자마자 베트남 민주주의의 평화적 이행을 위한 9개항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2010년엔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 베트남에서 인터넷 이용의 자유를 촉구하는데 힘써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또 그해 말 베트남의 모든 양심수를 조건 없이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양심수 석방 요구는 2011년 네 번째 구속으로 이어졌다. 공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민중봉기를 사주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베트남 정부는 3일 만에 그를 석방했다. 2013년엔 베트남 블로거 네트워크를 설립했고, 베트남 여성 인권위원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이듬해엔 양심수협회를 설립했다.
그런 쿠에의 베트남 민주화운동에 가장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보낸 것은 공교롭게도 미국이었다. 쿠에도 미국에 가장 많이 의지했다. 그가 1990년 20년 형을 받았을 때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 인권기념센터는 그에게 인권상을 수여했다. 미국 의회는 쿠에가 ‘비폭력 인권운동’을 창립한 5월11일을 ‘베트남 인권의 날’로 지정했다. 의회는 매년 이날 행사를 열어 베트남 민주화를 호소하고 압박도 했다. 2010년 아세안 정상회담 때에는 인터넷 자유 호소문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데이비드 쉬어 주베트남 미국 대사와의 면담에서도 ‘베트남의 민주화는 미국이 동남아시아 전략의 균형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3년1월엔 미 국무부 인권 노동 담당 부차관보에게, 미 정부가 뉴양 반 리 신부 등 양심수를 석방하도록 베트남 정부에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쿠에의 행동은 ‘친미주의자’를 넘어서 이적 또는 간첩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과거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억압과 폭력은 베트남의 입장에선 용서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베트남 정부가 자국민에게 가하는 억압과 폭력을 용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쿠에는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버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디에서 들려오든 자유에 대한 외침에는 공통된 진실이 있으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존엄을 갖춰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4월22일, 518재단이 쿠에를 수상자로 선정한 다음 날 우리 외교부를 통해 선정을 철회하라는 입장을 재단에 전해왔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은 한-베 외교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끼칠 것이라는 엄포도 놓았다. 그러나 518 재단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쿠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모든 억압과 폭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518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부는 올해도 518 항쟁을 시비 논란 속으로 끌어들이려 기를 쓴다. 수구세력들과 함께 ‘친북’ 색깔을 입히려 혈안인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는 상징적이다. 이 노래는 1980년 신군부가 군사정변에 이어 광주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짓밟고 학살할 때 온몸으로 맞섰던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로 작곡돼 불려왔다. 그런 노래를 김일성 부자를 기리며, 공산화를 추구하는 노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북한군 혹은 무장간첩 개입 및 폭동 유도설을 지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비를 가려,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때, 국론분열 운운하며 왜곡을 부추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에서 애창된다고 ‘친북’이라면, 한글도 북한에서 쓰이고 있으니 국어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말인가.
베트남은 인권운동가 쿠에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반국가사범으로 세계에 낙인 찍었다. 그런 쿠에를 광주와 518 기념재단은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도대체 누가 친북이고 누가 용공인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시민들인가 아니면 그때 총칼로 민주주의를 전복시킨 박승춘 류의 신군부 수구집단인가.
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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