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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8 22:01 수정 : 2017.03.02 15:23

보안사 자료로 드러난 ‘전두환 거짓말’

5공 인사들이 극비리 제작한 책
1979년~1981년 4월까지 다뤄
1권 제4편에 5월21일 발포 기록 나와

‘계엄사령부 결정’ 군 주장과 달리
군 비공식라인의 결정 드러난 셈

군통수권자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
다음날 전화로 “발포 사실이냐”

1980년 5월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 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은 5공화국 인사들이 극비리에 제작한 <제5공화국 전사>에 담겨 있다.

1982년 보안사가 주도해 만든 <제5공화국 전사>는 부록 3권까지 합쳐 총 9권 약 3800쪽에 이르며, 79년~81년 4월 11대 국회 개원에 이르는 격동기의 중요사건을 기록했다. 당시는 신군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라 신군부 인사들이 이 책에서 거리낌없이 이야기한 것이 부메랑이 된 셈이다.

18일 <한겨레>가 입수한 <제5공화국 전사>(5공 전사)의 1권 제4편 ‘제4공화국과 정국의 혼미’ 편을 보면 전 전 대통령은 광주의 군 집단 발포 도중에 군의 자위권 발동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책 1653쪽엔 “국방장관실에 합참의장 류병현 장군,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노태우 장군, 육사교장 차규헌 장군, 특전사령관 정호용 장군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돼 있다. 이들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을 주도한 신군부 핵심 세력이다. 이 책엔 “회의가 시작되어 2군사령관 진종채 장군이 현지 상황과 지휘관들의 건의를 설명하였다”고 돼 있다. 여기서 건의란 자위권 발동을 말한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의 공식 지휘라인에선 비켜서 있다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월간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어느 누가 총을 쏘라고 하겠어 국민에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너무 무식해서 그런 거예요. 보안사령관은 정보·수사 책임자요”라며 자신의 권한 밖이라고 항변했지만, ‘5공 전사’를 보면 사실이 아니다.

‘5공 전사’는 5월21일 오후 자위권 발동이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도청이건 어디든 군인이 가서 보초를 서는데 총기를 뺏거나 생명을 위협할 때는 군인복무규율에 의하면 초병이 정당방위로 자위권을 자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광주의 상황이 그러한 정도라면 위의 경우가 적용되기 때문에 여기서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 특별히 의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하고 거기 있는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어 “그리하여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 계엄당국은 5월22일 12시부로 전국 계엄군에게 자위권 발동을 지시했다”고 적었다. 이는 광주의 집단 발포 등 자위권 발동이 이른바 신군부 등 비공식적 지휘라인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달리 군은 계엄사령부가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광주에서 집단 발포가 이뤄지기 전인) 오전 9시에 육본에서 열린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군이 자위권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고”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진술했다. 당시 집단 발포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등 희생이 컸지만, 5·18 집단 발포로 처벌받은 군인은 단 1명도 없다.

80년 5월 광주에서 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국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은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의 검찰 진술(1995년 12월27일)을 보면 이런 정황이 상세하게 나온다. 검찰 기록을 보면, 80년 5월22일 밤 10시께 사무실 전화로 최규하 대통령과 통화한 정석환 전 지부장은 “최 대통령이 ‘지금 발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고 물어 ‘지금 시내의 상황이 너무 험악하여 직원을 직접 현장에 배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계엄사에 직접 확인하여 보시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더니 최 대통령이 ‘알았다’고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진술한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편집자 주> 2016년 5월19일치 2면 ‘발포 직전 군 비공식회의 “전두환·노태우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기사에서 국방부 장관실 대책회의가 “5월21일 오전 10시50분”에 열려 “군 자위권 발동이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제5공화국전사>엔 1980년 5월21일 국방부 장관실 대책회의 시각은 명시돼 있지 않았기에 개최 시각은 삭제했다. 검찰 수사 기록 등을 근거로 국방부 장관실 대책회의 개최 시각을 오후 3시로 수정하고, 광주 금남로 발포 도중에 열렸다는 점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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