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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9 19:29 수정 : 2017.03.02 14:40

‘5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들이 18일 오전 제36돌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ㆍ18민주묘지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직접 발표했던 이희성 계엄사령관
“보안처장이 담화문 문안 건네줘
장관 등과 논의뒤 일부 수정발표”
다음날 노태우 수경사령관 찾아와
“왜 원문대로 하지 않았느냐” 항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계엄사령관 명의로 나온 ‘계엄군은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담화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령관을 맡은 보안사령부가 문안 작성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위권 보유 천명 등을 광주에 투입된 일선 부대에서는 사실상 발포 명령으로 받아들였다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구속기소한 검찰은 판단했다.

19일 <한겨레>가 입수한 <제5공화국 전사>(<5공 전사>)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기록 등을 보면,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한 뒤인 이날 오후 3시 국방부 장관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위권 보유 천명을 결정한다. 정도영 보안처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 국방부 장관실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자신이 국방부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

정도영 보안처장은 검찰 수사에서 “80년 5월21일 오후 국방부 보안부대장한테서 전화 연락을 받았다. 국방부 장관께서 보안사령관을 위 회의에 참석하도록 지시해 보안사령관실에 연락해보니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안 계시는데, 보안사령관이 없으면 처장이라도 참석하여 달라고 하기에 제가 보안사령관을 대신해 국방부 장관실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고 진술했다. 이 회의에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자위권 천명과 관련한 결정이 이뤄졌다. 회의엔 주영복 국방장관, 각군 참모총장(육군 이희성, 공군 윤자중, 해군 김종곤), 유병현 합참의장, 백석주 연합사 부사령관, 진종채 2군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1980년 5월 광주 진압군 지휘체계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대장)에게 5월21일 저녁 7시30분 발표한 군의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문을 건네준 이는 정도영 보안처장이다. 이희성씨는 검찰 수사에서 “21일 오후 4시께 국방부 장관실에서 보안처장 정도영이 자위권 천명 담화문 문안을 건네주면서 ‘담화문 발표를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언론을 동원해 생중계하도록 하자’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그때부터 주영복 국방장관, 진종채 2군사령관, 각군 참모총장, 유병현 합참의장 등이 모여 정도영이 가져온 담화문 초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희성씨는 “그때 유병현 합참의장이 ‘일부 표현이 잘못됐다’고 정정한 다음 담화문을 나에게 건네줘 받아들고 육군본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7시30분 고친 문안대로 육본 기밀실에서 전 언론매체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담화문을 발표했다”고 진술했다.

<5공 전사>를 보면, 노태우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소장)은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문 발표 다음날(5월22일) 상관인 이희성 계엄사령관(대장)에게 담화문 발표와 관련해 항의했다. 당시 신군부 핵심 실세인 노태우 사령관은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문을 왜 원래 문안대로 발표하지 않았으냐. 수정하지 않고 원래의 문안대로 발표했어야 효과가 컸을 것인데, 수정하여 발표하는 바람에 별 효과도 거두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소장 계급인 수경사령관이 대장 계급인 합참의장과 계엄사령관이 문안을 고쳐 읽었다고 문제 삼은 것은 당시 군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이런 내용에 대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한편, 80년 5월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의 자위권 발동 결정에 관여(<한겨레>19일치 1면)했다는 <5공 전사> 내용에 대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김준봉 2군사령부 작전참모부장도 1996년 3월 검찰 수사에서 인정했다. 김준봉 작전참모부장은 검찰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이 참석하였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5공확국 전사>에 그와 같이 되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참석을 한 것처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편집자 주> 2016년 5월 20일치 6면 ‘광주 발포 뒤 자위권 담화문, 전두환이 보안사가 주도’라는 기사에서 국방부 장관실 대책회의가 5월 21일 오후 2시55분에 열렸다고 보도했으나, 오후 3시로 수정했다. 정도영 보안처장은 오후 3시 국방부 회의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참석하지 않았고 자신이 참석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점을 명시했다. 김준봉 2군사령부 작전참모부장이 검찰에서 <제5공화국전사>와 관련해 진술한 내용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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