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9 20:06
수정 : 2016.05.20 09:12
1982년 7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동자 문부식씨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5·18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방화를 결심했다. 광주사태가 이 땅에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문부식씨만이 아니다. 1980년대 군사독재와 맞섰던 모든 사회운동과 변화를 추구했던 행동의 뿌리엔 ‘광주’가 자리잡고 있다. 그 시대를 지나온 수많은 이들이 광주에 갖고 있는 감정이 바로 “80년 5월의 광주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의 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간사하고, 그리 오래가질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의 논란은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백명을 희생했던 광주의 아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거짓과 왜곡과 궤변의 파편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없다고 끝내 버텼다. 1980년 ‘광주 학살’의 책임을 진 전직 대통령은 “나는 광주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발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유혈진압 책임을 피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광주를 바라보는 인식은 서로 다르지 않다. 둘 다 시민 저항권에 대한 매우 불온한 시각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깜박깜박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대신해 광주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한 건 부인 이순자씨였다. 이순자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광주사태는 양비론이 있다고 봐요. 민주화든 세계 평화를 위해서든 폭력사태로 번졌을 때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진압해야 하잖아요. … 저희 각하께서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희생된 시민들, 그리고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명령에 의해 치안을 유지하러 갔다가 희생된 계엄군 모두 희생자라고 생각하세요.”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거부하는 논리도 같은 선상에 서 있다. 참석자 모두 노래를 부르는 제창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기에 합창단 노래로만 끝내자는 게 보훈처 주장이다. 1980년대 시위 현장에서 수없이 불린 이 노래에서 광주와 민주주의의 기억 대신에 ‘국민 갈등’을 먼저 느끼는 이 정권의 정서는 뭘까. 아마도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력적이고 사회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니 계엄군의 유혈진압은 불가피했다’는 시각일 것이다.
이순자씨가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는 기자 질문에 “각하가 망월동 묘지에 참배를 못 할 이유는 없지요”라면서도 “계엄군의 행동 자체에 대한 상징성이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는 있어요”라고 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과정이야 어쨌든 계엄군 진압은 정당했으니 나에게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묻지는 말라는 뜻이다. 과거 독재정권이 그래도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켰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는 오도된 믿음이다.
불법·부당한 권력 행사에 정면으로 맞서는 국민 권리를 ‘저항권’이라 부른다. 역사를 진보시킨 수많은 혁명이 시민들의 저항권에서 나왔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행동은 스스로를 희생한 저항권의 정당한 행사였다. 그래서 광주의 기억이 선명했던 시기엔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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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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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이란 세월이 학살과 탄압의 기억을 무디게 한 것일까. 독재의 폭압은 잊히고 그에 맞선 행동의 정당성을 따지는 시대가 됐다.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반동을 보는 건 서글프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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