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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2 18:24 수정 : 2016.06.23 11:48

[김종구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 중 최대의 코미디를 꼽는다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한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갈등 해소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박 보훈처장은 갈등 해소자가 아니라 갈등 유발자다. 좌충우돌식 언행으로 끊임없이 분란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트러블 메이커’다. 박 처장에게 갈등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거북이 등에서 털을 긁고 토끼의 이마에서 뿔을 찾는 것과 같다.

따지고 보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것부터 상식과 정의가 물구나무선 현실이다. 보훈처는 역대 처장들이 대부분 군 장성 출신들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훈 업무의 주 대상도 군인이나 경찰 등이다. 5·18민주유공자는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특수임무유공자 등의 사이에 개밥에 도토리 신세로 외롭게 끼어 있다. 우리의 지난 굴곡진 역사에서 군과 민주는 서로 양립하기 힘든 단어였다. 미국에서는 군 보훈 업무를 맡은 기관이 ‘제대군인부’로 명칭부터 명확한데, 우리는 ‘보훈’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엮여 있다. 그러다 보니 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선 민주항쟁의 기념식마저 군 출신 인사의 결정에 맡겨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박 처장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1980년대 군에서 목격했던 일부 육사 출신 장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민주화 시위 장면이 나오면 “저런 놈들은 모두 총으로 쏴 죽여버려야 해”라는 끔찍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씨는 존경하고 자랑스러운 선배들이고, 시위 학생들은 척결 대상이 돼야 할 불순분자들에 불과했다. 박 처장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훈처장에 취임하자마자 유신 시대의 민주화 운동을 종북 활동으로 헐뜯는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것을 보면 그중에서도 특히 유별난 축인 듯싶다. 5·18 당시 소령이던 박 처장은 전두환-노태우 정부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5·18 비극에 대한 아픔이나 성찰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5·18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제11 공수특전여단을 6·25 기념 광주 시가행진에 투입하려 한 것은 5·18을 바라보는 그의 왜곡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트러블 메이커 행보는 단지 진보 쪽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군 내부의 갈등 유발자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육군 안에서 육사니 학군이니 3사관학교니 해서 출신을 나누고 성골·진골을 가르는 폐습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아픈 곳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 바로 박 처장이다. 박 처장은 재향군인회(향군) 회장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거 중단 지시를 내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 향군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금품 살포 의혹이었지만 실제로는 육사 출신을 회장에 앉히기 위한 무리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의 이런 결정으로 향군은 아직도 표류 상태이고, 출신에 따른 군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무리한 행보는 보수 쪽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재향군인회 대의원연합회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어 보훈처의 향군 회장 선거 중단조처를 비난하며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흥미로운 대목은 향군 회원들이 박 처장 때문에 현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향군은 뼛속까지 보수우익의 성향을 지닌 단체로, 선거 때마다 현 여권의 강력한 지원군 노릇을 해왔다. 그런데 4·13 총선이 끝난 뒤 향군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새누리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찍었다”는 말들이 무성하게 나온다. 쓴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박 처장은 보훈처장보다는 ‘보은처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자신을 발탁·유임시켜준 권력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행동해왔다. 하지만 그 보은이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이 정부에도 짐이 되고 있다. 트러블 메이커는 결국 트러블 메이커일 뿐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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