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3 17:41
수정 : 2016.06.13 22:20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피해자 인터뷰
기업의 성적표는 재무제표로 드러난다. 흑자가 나면 싼 이자로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다. 반면 적자가 많으면 고금리를 약속해도 쉽게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 기업이 ‘성적표’ 조작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회계법인은 이를 감시하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다. 기업들의 재무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국내 회계법인은 끊임없이 부실감사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흑자라는 회계법인의 말을 믿고 투자에 나선 이들이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피해 소액주주 모임을 이끌고 있는 심상훈(36)씨는 지난 9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저희는 운이 없어 조선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심씨는 대우조선해양이 2013~2014년 분식회계로 회사가 흑자인 것처럼 허위 공시를 해 이를 믿고 투자하도록 사기를 쳤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소액주주들(107명)과 함께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과 외부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민사21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난해 3월 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2만원에 근접할 때 친구와 함께 4억원 어치 주식을 샀어요. (정성립 사장이 취임해 해양플랜트 사업 손실을 인정한 뒤) 7월15일 주가가 9천원 대로 떨어지더군요. 2억원 정도 손해를 봤어요.”
심씨의 투자 동기는 공시된 2014년도 사업보고서였다. 국내 조선사 ‘빅3’ 가운데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로 영업손실을 공시했는데 대우조선해양만 2014년 471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3년(4409억원)보다도 많았다.
“언론이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신기술을 도입했다고 보도하고 또 외부감사보고서에도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나오니까 투자했죠. 그런데 사장이 바뀌더니 갑자기 ‘사실은 지난해 5조5000억원 적자’라고 발표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조선소에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안진회계법인은 뒤늦게 2013년과 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해 적자 중 2조원을 2013년과 2014년에 나눠 반영해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에 정정을 요구한 것이다. 평택에 사는 심씨에게 안진회계법인은 낯설지 않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뒤에 안진회계법인의 회계 보고서가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이 회계보고서의 내용이 잘못됐다(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대계상)고 판단한 바 있다. 심씨는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공모했고, 고재호 전 사장은 연임을 위해 경영부실을 숨겼다고 믿고 있다.
심씨는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려 해도 변호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대주주가 산업은행인데, 국가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느냐, 금융감독원 감사 뒤 생각해보자’며 다들 거절했어요.” 어쩌다 법무법인 한 곳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이 시작됐다.
“소송인 중에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얼마전 퇴직한 분도 있어요. 평생을 함께한 회사를 믿고 퇴직금을 투자했는데 분식회계 피해를 당한 거죠. 전세자금 다 날리고 자살을 결심했단 분들도 있고, 다들 피해가 막심해요.” 심씨가 공개한 대우조선해양이 재판부에 낸 답변서에는 “원고들의 소장 기재 내용을 부인합니다”라는 말 외 다른 설명은 없었다. 검찰은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경영부실과 회계부정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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