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오만과 꼼수’로 가득 찬 국회법 거부권 행사 |
박근혜 대통령의 ‘협치’ 다짐은 역시 말뿐이었다. 박 대통령은 27일 상시 청문회를 가능하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아주 비통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심정을 입법부 수장이 잘 대변해 주었다. 4·13총선에서 나타난 민의 수용이니 협치니 하는 단어는 애초부터 박 대통령의 사전에 없다는 사실이 거부권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시기와 방식에서부터 꼼수투성이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를 시켜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을 의결하게 한 뒤 에티오피아에서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19대 국회 임기 만료를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기습 공략이다. 국회법상 임시국회 소집 요구는 3일 전까지 공고해야 하므로 국회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 놓고 정부는 국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19대 국회에서 처리하라고 배짱을 부린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폐기되며 20대 국회에서 재의할 수 없다”는 말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유치하고 졸렬한 꼼수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태도부터가 참으로 역겹다.
정부는 “위헌 소지가 있다”느니 “국정 및 기업 등에 과중한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는 따위를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의회가 행정부를 잘 견제해야 건강한 정부가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청문회 공화국이라 할 미국에서도 청문회 때문에 행정부가 마비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는 호통치기식 청문회인데 그것은 운영의 문제일 뿐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을 엉뚱하게 끌어다 위헌의 근거로 대고 있으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여야 간에 모처럼 조성된 협치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었다. 소통 대신에 불통, 협력 대신에 독선을 고집하는 대통령에게 야당이 협조할 리 없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다. 박 대통령 자신은 그것이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리석음의 극치다. 대통령의 오만과 어리석음의 결과는 국정운영의 파행이고,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보게 돼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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