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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9 15:04 수정 : 2016.06.21 10:55

유엔총장을 보는 해외시각

토머스 와이스 뉴욕시립대 교수 주장
“업적이라 얘기할 만한 것 없다
총장 임무는 국제사회 숨겨진
쟁점 드러내기인데
반 총장은 국가들과 맞서지 않아
그 예가 사우디 블랙리스트 제외”

토머스 와이스 뉴욕시립대 교수. 사진 뉴욕/이용인 특파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말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유엔에서조차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12월 말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에 대한 평가를 세계적인 유엔 전문가로 꼽히는 토마스 와이스(70·사진) 뉴욕시립대 정치학과 대학원 주임교수한테 들어봤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의 학교에서 만난 와이스 교수는 “10년 동안 반 총장의 레거시(업적)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할 것이 없다”며 역대 사무총장 서열을 매긴다면 “바닥권 쪽(toward the bottom)”이라고 밝혔다. 와이스 교수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유엔기구 근무 등을 거쳐 1998년부터 정치학과 대학원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도주의 개입>, <유엔과 변화하는 세계질서>, <국제기구와 글로벌 거버넌스> 등 유엔과 유엔의 역할에 대한 많은 저서를 펴냈다.

-반기문 총장이 최근 ‘아동인권 2015’ 연례보고서의 블랙리스트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인 아랍연합군을 삭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반 총장에게 분명히 더 큰 문제가 있다. 반 총장은 항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기를 원한다. 그는 큰 국가는 물론, 작은 국가, 심지어 사우디와 같은 중간 크기의 국가들도 자극하려 하지 않는다. 사우디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돈을 적게 낼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정당화시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결정이고, 나쁜 발상이다. 유엔 사무총장이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높은 도덕적 기반을 바탕으로 쟁점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무총장이 그것을 포기하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 25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포럼 행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는 반 총장이 사우디의 압력을 공개한 것을 ‘잘한 일’이라고 옹호하면서 압력을 행사한 사우디를 비판했는데.

“개별 국가들은 아주 협소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유엔이 창설된 1945년 이후 사무총장에 대해 (개별 국가들이) 늘 해오던 것들이다. 그런 식이라면 사우디,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등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비판할 수 있다. 개별 국가들의 그런 행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사무총장이 개별 국가들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반 총장은 일관되게 개별 국가들과 공개적으로 맞서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고 본다. 반 총장이 사우디와 진정으로 맞서고 싶었다면 블랙리스트에서 뺀 뒤 압력을 받았다고 공개할 것이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넣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 바뀌면서 유엔 사무총장이 별로 할 게 없어진 것 아닌가. 즉 구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편성을 띤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도덕적 지도자다. 그런 사실은 냉전 때나 탈냉전 이후에나 변하지 않았다. 탈냉전 이후 변한 것은 소련의 붕괴로 동서 간의 정치와 균형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무총장은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간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인권이나 인도주의 쟁점 등 강대국들이 동의하는 이슈들이 최근들어 더 많아지고 있다. 기본적인 인권 보호와 (특정국가가 반인도 범죄,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보호책임 원칙, 분쟁 뒤 평화 건설을 위한 유엔 주둔 등은 냉전 시대와 비교해 (탈 냉전 이후) 유엔 사무총장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역대 총장들에 대한 서열을 매긴다면 반 총장은 어디쯤이라고 보는가?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닥권 쪽(toward the bottom)이다. 개인적으로는 다그 함마르셸드(2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7대)을 가장 상위권에 두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5대)와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6대)일 것이다. 맨 밑바닥엔 쿠르트 발트하임(4대)를 위치시키고 싶다. 그는 나치독일 군인으로 복무한 사실이 밝혀져 유엔의 명예를 더럽혔다. 발트하임 위에 반 총장과 트리그브 할브란 리(1대) 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 총장을 그렇게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10년 동안 반 총장의 레거시(업적)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할 것이 없다.”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 대해선 공로가 있는 것 아닌가?

“워싱턴에 있는 10여명의 미국 공화당원을 제외하면 기후변화가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것이 반 총장의 업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간 활동에 대한 기후 변화의 위험을 평가해 온)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의 업적이다. 반 총장이 차별화시킨 자신 만의 쟁점이나 결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유엔의 평판을 증진시키지도 못했다. (반 총장 재임 기간인) 지난 10년 동안 유엔은 리비아, 시리아 등 다양한 위기들 때문에 더 많은 뉴스 속에 있었지만, 그것이 유엔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반 총장은 유엔을 세계 정치의 중심으로 서게 만들기보다는 주변부화시켰다. 다른 역내 조직들과 시민사회, 주요 20국(G20) 등이 유엔보다 더 큰 공간을 점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유엔 사무총장을 ‘세계 대통령’으로, 즉 특정 국가의 수반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이 교황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도 군대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무총장은 각국에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정도다. 교황이나 사무총장은 세계 무대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쟁점을 부각시킬 수 있고, 정말로 중요하거나 무시당하는, 혹은 감춰지는 쟁점이나 위기를 강조하는 역할 말이다. 따라서 사무총장의 권력은 도덕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물리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특정 국가의 수장과는 완전히 다른 권력이다.”

-반 총장이 한국 대통령이 될 경우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한국에 대해 정말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질문엔 답하기가 어렵다.”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뒤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많은 모델이 있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됐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칠레 대통령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코피 아난은 국제 무대에서 퇴임 뒤 가장 흥미로운 역할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코피 아난 재단’을 설립해 시리아와 케냐의 갈등 관리와 아프리카 농업개발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내가 사무총장이었다면, 어떤 한 국가의 수장이 되기보다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퇴임 뒤 무엇을 할지는 개인적 선택이다.”

글·사진 뉴욕/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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