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1.26 15:17 수정 : 2018.11.26 15:46

케이티 누리집 결합상품 소개 페이지. 누리집 갈무리.

무심코 가입했던 ‘결합상품’…“통신장애에 바깥소식 다 끊겨”
“당장 해지하고 싶지만 위약금 부담에 고민” 하소연도

케이티 누리집 결합상품 소개 페이지. 누리집 갈무리.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직장인 이아무개(26)씨는 24일 오전 대한민국에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집에서 보고 있던 티브이(TV)는 갑자기 화면이 그대로 멈췄고, 스마트폰에는 ‘서비스 안 됨’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이씨는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이씨와 가족들이 사용하는 집 전화·휴대전화·인터넷·아이피티브이(IPTV)는 모두 케이티(KT)의 ‘결합상품’이자 ‘가족할인’ 상품이었는데, 케이티 통신망이 붕괴하면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합 범위가 넓어질수록 요금 할인 폭도 커지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케이티만 써온 이씨는 “강남 쪽으로 가서 통신이 연결되어 있었던 어머니가 밤 10시께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케이티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장애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며 “가족 모두가 오랜 케이티 가입자일 만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는데, 이번 일로 결합상품 해지를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24일 케이티 아현지사 화재로 발생한 서울 서북권의 통신장애가 ‘대란’ 수준으로 확대된 배경에는 집 전화와 가족들의 휴대전화, 인터넷과 아이피티브이 등을 한 통신사에 묶어서 가입하는 ‘결합상품’이 큰 역할을 했다. 통신사들은 할인을 미끼로 시민들에게 ‘결합상품’ 구입을 유도해왔지만, 정작 이번 화재와 같은 재난으로 연결망 시스템이 망가졌을 때를 대비한 백업 시스템조차 마련해두지 않아 시민들의 ‘통신 암흑’ 상태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케이티를 비롯한 국내 3대 이통통신사 누리집 등을 보면, 통신사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아이피티브이 등을 결합상품으로 가입할 경우 적게는 월 5만~6만여원에서 많게는 10만원이 넘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다른 경쟁사 고객을 신규 가입자로 유치하기 위해 백화점 상품권과 가전제품 등 사은품을 ‘미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게다가 결합상품에는 가족들끼리 같은 통신사에 가입할 경우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데이터 사용료를 할인해주는 상품도 포함되어 있다.

케이티 누리집 가족결합 상품 홍보 화면 갈무리.
1인 가구의 경우에도 통신마비 상황에서 결합상품 가입에 따른 피해와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앞선 이씨의 사례처럼 함께 사는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통신장애가 발생했을 때 그나마 외부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재난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혼자 사는 경우는 이마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중동에 거주하는 케이티 가입자 고아무개(48)씨는 이날 재난 알림 문자를 받지 못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서야 전화와 인터넷이 모두 먹통이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고씨는 “우수 고객에게 혜택을 주겠다며 결합상품 가입을 권유한 케이티 쪽의 텔레마케팅에 순순히 동의해왔던 일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 몰랐다”며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통신이 두절되면 정말 방법이 없다. 당장 인터넷과 전화 통신사를 분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결합상품 해지를 결심한 소비자들에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가입 해지에 따른 위약금 지불 문제다. 친누나와 함께 케이티 휴대전화 가입자인 대학생 김병준(25)씨는 24일 약속장소인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30분 넘게 상대방과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을 겪으면서 통신사 전환을 마음먹었다. 그러나 곧 6개월 전 새 스마트폰을 사면서 24개월 약정 가입을 조건으로 할인받은 사실이 떠올랐다. 김씨는 “마음 같아선 당장 케이티 가입을 해지하고 싶지만, 학생 신분인지라 위약금에 발이 묶여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 가입을 유지할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전문가들은 통신사들이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결합상품 가입을 유도해놓고 공공재인 통신망을 활용한 재난 대비책에는 소홀해 온 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승엽 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통신사들이 당장의 이익 때문에 가입자들을 자사의 결합상품으로 몰아넣은 결과 소비자는 뒤통수를 맞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지난해 포항 지진 때도 통신장애가 생겼는데, 통신사 분리 가입은 물론 장기적으로 재난 상황에서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어떻게 연락을 취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공공재로서 통신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은 이번과 같은 재난 상황에 대비한 인프라 투자를 하기보다 자사의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패키지 상품 판매를 늘리는 방식으로 매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둬왔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요금인하는 물론 통신 서비스의 공공성과 안전성을 강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전문가인 이송규 전 대한기술사회 회장도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인 통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통신사업을 민간영역으로 넘겼지만, 통신사들이 수익 창출에만 몰두한 결과 재난에 대비한 통신망 확충 등 안전 측면에서 빈틈이 생겼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통신사업의 공익성을 보장하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담은 이정규 김민제 기자 su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