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31 11:23
수정 : 2019.01.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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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4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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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통신시설 현장점검 결과 공개한다더니
법·규정 위반한 통신사 이름은 빼고 공개
고의 통신시설 관리 소홀은 국민 삶 위협 행위
통신사 밝혀 사업자 선택 시 참고하게 해야
통신사 비공개 놓고 갖가지 의혹 제기
‘교훈’ 기대하는 것조차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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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4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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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공개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요 통신시설 현장점검’ 결과는 최근 들어 통신구 화재와 그로 인한 통신대란이 케이티(KT) 아현국사 한 곳에서만 발생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정도로 국가 중요 통신시설이 엉망으로 관리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통신사들이 중요 등급을 실제보다 낮게 분류해 정부 감독을 피하고, 소방설비 구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법·규정을 위반한 사례도 상당수 발견됐다.
우선 이번 통신대란 사태의 진원지인 케이티 아현국사를 포함해 전국의 주요 통신국사 가운데 9곳의 중요 등급이 실제보다 낮게 분류돼 관리가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중요도가 높은 비(B)급 통신국사에 해당하는데 덜 중요한 시(C)급이나 디(D)급으로 낮게 분류된 게 2곳이고, C급인데 D급으로 분류된 게 7곳에 달했다. 통신시설의 중요 등급 분류를 통신사 판단에 맡기고, 과기정통부는 적절성 검증 없이 이 가운데 A~C급만 점검하고, D급은 통신사가 알아서 관리하게 하는 등 중요 통신시설 관리체계가 부실했던 탓이다.
게다가 A급 통신국사 3곳, B급 1곳, C급 2곳 등 6곳이 통신망 우회로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수해·지진 등으로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해도 우회로를 확보할 수 없고, 따라서 장시간 통신대란이 불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중요 통신시설 지정기준에 따르면, A급은 재난 발생 시 피해 범위가 전국 권역(서울 및 수도권·영남권·호남권·강원 및 충청권 등)에 달하고, B급은 광역시·도, C급은 특별자치시 및 3개 이상의 시·군·구, D급은 시·군·구에 이르는 통신시설을 말한다.
요약하면 통신사들이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면 광역시·도와 3개 시·군·구 지역에 통신대란을 일으킬 수 있어 중요하게 관리돼야 할 통신국사 가운데 최소 9곳의 중요 등급을 낮게 분류해 관리를 소홀히 했고, 장애 때 서울·수도권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통신대란을 일으킬 수 있는 A급 국사 3곳을 포함해 6곳을 우회로 없이 운영해왔다는 뜻이다. 케이티 통신망 기술직 출신 등 통신망 기술자들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경우”라며 혀를 내두른다.
과기정통부의 정책당국자들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 당국자는 “케이티 아현국사의 경우, 무려 8개 국사에 있던 전송장비들을 끌어와 집적시키고, 하나의 통신구를 지나도록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즉각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통신 이용자들의 답답함은 더 크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는 5600여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다. 사실상 전 국민이 이용자라는 의미다. 게다가 통신은 이제 단순한 통화 수단을 넘어 생활 도구이자 생계 수단이 됐다. 중요 통신시설 관리가 엉망이었던 사실을 이용자 쪽에서 보면, 경제활동 도구이자 생계 수단인 통신서비스가 통신사들의 수익성 극대화 전략에 따라 매우 허술한 상태로 관리됐다.
당연히 이용자들은 통신시설 관리를 엉망으로 해 자신의 삶을 위협해온 통신사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동안은 요금과 통화품질이 통신사를 선택하는 주요 잣대였다면, 이번 케이티 아현동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을 계기로 통신망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도 통신사를 선택하는 주요 잣대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현장점검에서 발견된 통신시설 엉터리 관리 사례만 공개했을 뿐, 어느 통신사가 그렇게 해왔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언론 브리핑 때 ‘통신국사 중요 등급을 낮게 분류해 허위 보고한 통신사 명단을 공개해 이용자들이 사업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에 공개 관련 조항이 없다. 이번에는 비공개로 하고, 다음에 하는 현장점검 결과부터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과기정통부가 통신사들한테 휘둘리고 있거나, 통신사들과 ‘짬짜미’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렇지 않고는 중요 통신시설 관리를 엉망으로 해 국민의 삶을 위협해온 통신사 이름을 이용자들의 알 권리와 선택권 침해 지적까지 받으면서 숨겨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진걸 희망경제연구소장은 “국민의 세금을 들여 점검한 결과를 법에 공개 금지 조항도 없는데 밝히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직무유기다.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30일 과기정통부가 통신서비스 품질측정 결과를 공개하면서 통신사 이름과 사업자별 순위를 낱낱이 공개한 것과도 형평이 맞지 않는다.
과기정통부가 중요 통신시설을 고의로 소홀히 관리해온 통신사 명단을 비공개하면서 사업자들이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례로 볼 때, 통신사들은 법 위반이나 고객 권익 침해 행위를 해 제재를 받고도 이름이 공개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누가 한 짓인지 모르는데 뭐”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언론 보도에 대응할 때도 어떻게 책임지고 사과하며 개선할 것인지보다 회사명과 최고경영자 이름을 숨겨달라고 하는 데 집중한다. 앞서 <한겨레>는 과기정통부가 중요 통신시설 현장점검 결과 공개를 미적거리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과기정통부 고위관계자들이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모두 공개할 것”이라며 정정을 요구한 바 있다. <한겨레>는 이를 수용해 ‘어느 정도로 공개할지 주목된다’로 기사 내용을 수정했는데, 과기정통부가 통신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과기정통부 고위관계자들이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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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당사자…통신재난 대책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
‘과기정통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냐’, ‘과기정통부는 왜 중요 통신시설 관리를 엉망으로 해온 통신사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과기정통부의 중요 통신시설 현장점검 결과를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지난 28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케이티 아현국사 화재 관련 중소상인 피해대책 관련 간담회’ 방청석에서도 “과기정통부가 왜 피해자가 아닌 사업자를 두둔하느냐”는 피해 소상공인들의 한숨섞인 불만이 쏟아졌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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