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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17:33 수정 : 2019.03.17 19:23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면 여러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 서로 해치지 않으면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회를 통제하는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법, 규칙, 규범 등이 필요하다. 다양한 수단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법을 위반하고 규칙을 위배하고 규범을 어기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리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은 법과 규범을 어긴다. 걱정과 두려움을 상쇄하는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약 70년 전에 사회학자 그레셤 M. 사이크스와 데이비드 마차는 그 방법을 알고자 했다. ‘인간에게는 법과 규범을 어기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서, 그 기술을 ‘상쇄기술’이라 불렀다. 걱정과 두려움을 상쇄하는 기술 덕에 사람들이 법과 규범을 어긴다는 것이다.

상쇄기술은 모두 5가지다. 첫째, 책임을 부정한다.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야. 난 그저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야. 둘째, 피해를 부정한다. 그 일이 진짜 피해를 가져온 건 아니잖아. 피해를 입힌 게 아니라고. 셋째, 피해자를 거부한다. 그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거다. 바로 그 친구에게 책임이 있단 말이지. 넷째, 권위를 부정한다. 판결이 이상한 거다. 나에게 판결을 내린 판사가 뇌물을 드신 겁니다. 다섯째, 이기심을 부정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한 거잖아.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니야.

상쇄기술의 전제는 기술 사용자들이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함을 안다’는 것이다. 혹시 부적절함을 모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것을 알지만 그냥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사회학자 앨버트 K. 코언은 하위문화 테제를 주장했다. 사회를 주도하는 문화, 그러니까 지배적인 가치와 도덕과 규범을 거부하고 전복시키는 특정 집단의 문화를 하위문화라 부른다. 그 집단은 주류사회에 반항하면서 주류적인 문화를 거꾸로 세우려는 것이다. 주류문화를 벗어나는 일탈과 그것을 부정하는 범죄는 오히려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다.

하위문화와 상쇄기술은 애초 서로 다투었지만(후자가 전자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최근 연구자들은 양자가 대립하기보다 서로 보완한다고 본다. 가령 승리와 정준영의 단체대화방 멤버들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일단 상쇄기술에 능한 자들로 보인다. “우리 이거 영화야. 살인만 안 했지, 구속감 진짜 많아.”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그 짓을 했다. 그들의 하위문화도 힘을 보탰을 것이다. 성폭력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거나, 때에 따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서 자신들의 범죄 행동을 자랑했고 전리품인 동영상을 그 증거로 공유했으며, 여성의 몸을 비즈니스의 윤활제로 활용하기도 했다.

잠깐, 그들만 그런 하위문화에 젖어 있고 상쇄기술을 사용했던 걸까?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그에 대한 범죄를 유희로 삼는 문화는 적어도 이곳 한국에서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주류문화다. 정부가 주도했던 주류문화다. 강준만의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여행사들을 통해 ‘기생 관광’을 해외에 선전했으며 문교부 장관은 73년 6월 매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한 ‘관광 정책’ 기조는 199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반문할 수 있다. 옛날에 그랬지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 일단 ‘매매춘’이 금지된 것처럼 여성 인권을 지키려는 법과 제도가 설치·정비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다른 시간을 산다. 남성 중심의 문화는 여전하며 나이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늙은 남자도 젊은 남자도 그 문화에 포획되어 있다. 일례로 교사를 양성하는 한 대학에서 남학생 대면식, 그러니까 남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여자 재학생들의 얼굴을 평가하는 성희롱 자료를 오랫동안 열람했다는 폭로가 최근 나왔다. 다른 대학에서도 그와 흡사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수전 브라운밀러에서 비롯한 ‘강간 문화’라는 표현이 있다. 여성의 몸을 향한 범죄를 유희와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삼는 남성 중심 문화를 일컫는다. 표현의 과격함에 놀랐고 불편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불편하다고 계속 침묵하고 방조한다면 ‘우린 모두 구속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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