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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법무·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버닝썬·김학의 사건 등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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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53)
버닝썬은 경찰, 김학의는 검찰에 ‘아킬레스건’
어떤 결과 내놓아도 국민 신뢰에 근본적 한계
법무부 장관의 특별검사 발동 요청이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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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법무·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버닝썬·김학의 사건 등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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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주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보고를 받고 나서 지시했다는 주요 내용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오늘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세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런 내용이 두루 알려진 19일 법조계에선 세 사건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에 대해선 2014년 제정된 상설특검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특별검사의 수사를 요청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버닝썬 사건은 경찰이, 김학의 사건은 검찰이 각각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일의 사실 여부까지를 밝히라는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는 “법에 정해진 공소시효를 형해화하는 것으로,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이 의심받는 사건…특검 발동이 정답”
2014년에 제정됐지만 한 번도 실제 가동된 바 없는 ‘특별검사의 임명에 관한 법’이 있다. 흔히 ‘상설특검법’이라고 부르는 이 법을 살펴보면 법무부 장관에겐 특별검사의 수사를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제2조(특별검사의 수사대상 등) ①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
2.
법무부 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
② 법무부 장관은 제1항 제2호에 대하여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버닝썬과 김학의 사건은 발동 요건에 정확히 들어 맞는다. 경찰이 진행 중인 버닝썬 수사는 경찰이 이해관계 충돌과 공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이미 버닝썬과 아레나 등 업소와 관할 경찰의 유착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됐고,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윤아무개 총경이 이번 사건 관련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여론은 ‘제 식구 봐주기’라며 쉽게 믿지 않으리라는 문제가 있다. 검찰이 가져와 수사하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해 ‘경찰 손보기’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김학의 사건은 이미 경찰과 검찰을 모두 거쳤고, 두 차례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검찰이 다시 수사한다 해도 결과에 대한 신뢰를 담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간’ 혐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혐의의 공소시효도 이미 지나갔다. 검찰 내에선 차라리 특검이 가져가서 수사했으면 하는 기류도 있다.
“버닝썬 사건은 경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박수받기 어려운 구조다. 틀림없이 검찰이 다시 수사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세게 수사하면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해 자신들의 치부를 까발리는 ‘경찰 죽이기 수사’라고 반발할 개연성이 크다. 김학의 사건은 검찰이 이미 두 차례나 봐줬다는 것이 시중의 정설 아닌가. 그런데 검찰이 재수사를 한다? 그 결과를 국민이 믿어줄까. 그러니 특검이 답이다. 상설특검 가동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사건들이 있을까?”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
“공소시효가 지난 일도 조사해서 가려라?”
“공소시효가 지난 일도 사실 여부를 가리라”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도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지시로 들린다. 장자연·김학의 사건에 해당할 텐데, 대통령의 이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법조인들이 있다.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당사자와 참고인 등의 조사가 필수인데,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 이를 강제할 ‘법적 권한’이 수사 기관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강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별도의 입법을 통해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이 감찰 차원에서 조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두 사건과 관련해선 감찰 시효 3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데다, 민간인은 감찰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없어서다. 이미 민간인인 전직 검사에 대해서도 감찰 조사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조사를 강행하면? 바로 “인권 침해는 물론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위법”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소시효가 배제된 살인죄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라도 공소시효가 지난 뒤에 잡히면 처벌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있는 경우 더없이 억울하겠지만, 법에 정해져 있어서다. 수사 기관의 조사는 기소와 재판을 전제로 한, 증거 수집의 과정이다.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 기소도 재판도 할 수 없는 데 무작정 조사하라고 하면 그야말로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시라고 해도 헌법과 법률을 넘어설 수는 없다. 그 자신이 변호사라 공소시효의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의외다.” (법관 출신 변호사)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보고 받으면 위법”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법무부·행자부 장관의 보고를 받았다. “세 사건(장자연·김학의·버닝썬)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법무부·행안부 장관이 대통령 면담 보고에 앞서 각각 검찰과 경찰한테서 수사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 상황을 보고받을 ‘법적 지위’가 있다. 그러나 행안부 장관은 경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을 ‘법적 지위’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왜 그럴까.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검찰청법 제8조)할 수 있다.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전국 모든 검사는 다시 전국의 모든 사법경찰을 지휘한다. 형사소송법에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제196조)고 돼 있어서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통해 경찰 수사 상황까지도 파악이 가능하고, 이런 절차는 법적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행안부 장관은 다르다. 그는 “치안에 관한 사무”(정부조직법 제34조)에 대해 경찰청을 관할하게 돼 있지만, 사법경찰이 맡은 수사에 대해서는 지휘는 물론 보고받을 법적 권한이 없다. 수사하는 사법경찰관리는 오직 검사의 지휘를 받게 돼 있어, 그들의 보고 의무도 검사에 대해서만 발생한다.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수사는 사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행안부 장관에게 ‘관행적으로’ 자기들 수사 상황을 보고해 왔다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위법이다. 장관이 경찰에 보고하라고 했어도 마찬가지다. 행안부 장관은 법적으로 수사 상황을 보고받을 권한이 없고, 경찰도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다. 검찰청법에 있는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지휘 권한이 행자부 장관과 경찰청장 사이에는 없다. 왜냐. 수사는 사법작용이기 때문에 오직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형사소송법 체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권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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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 장자연 씨 관련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버닝썬 관련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 의지를 밝히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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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합동회견 권위주의 시대 구습”
18일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박상기, 김부겸 장관은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에 사전 예고를 했고, 방송 생중계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내용은 대통령 지시의 동어반복을 벗어나지 못했다.
회견에선 ‘어떻게’가 빠진 채 대책 없는 ‘의지’만 넘실댔다. “드러나는 범죄 사실에 대하여는 수사로 전환하여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할 계획 …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분명히 하도록”(박상기 법무), “경찰로 하여금 유착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어떠한 사태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비상한 각오로 수사에 임하도록”(김부겸 행안) 지시하고 독려하겠다는 말 이상의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내용이 대통령 지시를 반복하는 맹탕이기도 했지만, 형식도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슨 일 터지면 장관들이 단체로 우르르 기자회견에 ‘출동’해서는 엄숙한 표정으로 ‘발본색원’, ‘근절’,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약속하는 풍경은 군부독재 권위주의 시대부터 익숙하게 보아온 것이다. 너무 뻔하지 않나. 문재인 정부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관계자)
회견에 이어진 질문-답변에서도 뾰족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전날 기정사실화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 기한 두 달 연장을 확정·발표했을 뿐이다. 박 장관은 “(지금 문제 되는 사건들이) 과거사 문제로 반복되지 않도록 그런 방법을 선택할 생각”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방법’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박 장관은 이 과정에서 체면도 구겼다. 해외 순방에 나선 문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법무부와 과거사위원회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활동 기한 연장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 2017년 12월 출범 뒤 모두 세 차례나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도 지금껏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다.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근본적 한계 등이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 기간만 연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의 법무 참모로서 박 장관이 과거사위 연장 보다 특검 발동 같은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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