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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년간 되풀이된 강남서 ‘물갈이 인사’, 이게 최선일까요

등록 2019-07-19 19:22수정 2019-07-20 15:03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서울 강남경찰서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경찰서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경찰청은 20일 일선 경찰서 직원들이 한곳에 오랫동안 근무함으로써 빚어지는 관내 업체와의 유착비리를 막기 위해 경위 125명, 경사 777명 등 모두 902명을 전보발령하는 대규모 인사를 했다. (중략) 경찰은 앞으로 경위 이하 경찰관의 순환근무를 정착시키는 인사지침을 만들고, 특히 강남·서초 등 이른바 ‘물 좋은 경찰서’에 젊은 경찰관을 우선 배치해 경찰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기로 했다.”

최근 나온 기사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한겨레> 1998년 5월21일치 기사입니다. 분명 21년 전에 나온 기사인데, 이번주나 지난주에 나온 듯 익숙합니다. 유흥업소와의 유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이 최근 내놓은 ‘물갈이 인사’ 카드가 얼마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돈이 없는 건 맞고 ‘가오’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 24시팀 선담은입니다. 왜 갑자기 영화 <베테랑> 속 황정민의 대사냐고요? 지난달 24일 새 강남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박영대 총경 때문입니다. 박 총경은 취임사에서 “경찰이 돈이 없지, 자존(가오)이 없냐!”며 철저한 반성을 통한 ‘강남경찰’의 명예 회복을 선언했습니다.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아는 ‘버닝썬 사건’ 때문이죠.

유흥업소와 경찰 간 유착 의혹으로 ‘해체설’까지 나왔던 강남경찰서는 하반기 정기인사를 앞두고 ‘초강수’를 뒀습니다. 지난 12일 경찰 내부망에 ‘경감급 이하 ○○명을 모집한다’는 직원 공개모집 공고를 낸 것입니다. 특정 경찰서가 지방경찰청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 근무자를 모집한 건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신 공고일 현재 징계를 받은 상태이거나 징계 의결이 요구된 경찰은 지원 자격이 없습니다. 하반기 대규모 인사 이동이 예고된 상황에서 비위 행위 등을 저지른 ‘문제 경찰’이 강남경찰서에 오는 걸 사전에 막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17일 마감된 접수 결과 지원자는 60여명에 그쳤습니다. ‘버닝썬’의 여파로 강남경찰서 근무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강남의 ‘ㄱ’ 자만 써도 (끌려)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강남경찰서도 한때는 인기 근무지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6년 12월 문을 연 강남경찰서는 ‘강남 개발사’와 운명을 함께해왔습니다. 1970년대 허허벌판이던 강남이 개발되면서 사람과 돈이 몰리자 범죄도 늘었습니다. 다른 경찰서보다 사건이 많은 만큼 업무 강도도 높지만, 굵직한 사건을 맡아 처리한다는 ‘강남경찰’의 자부심도 있었죠.

하지만 ‘물 좋은 곳’에는 비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사 첫머리에 언급한 21년 전 기사는 1998년 5월 강남 일대 유흥업소들의 불법영업을 눈감아주고 단속정보를 미리 흘려준 대가로 매달 수백만~수천만원을 상납받은 강남경찰서 전·현직 경찰관 5명이 구속 기소된 사건 직후 나온 경찰의 고강도 쇄신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리는 끊이지 않았고 물갈이 인사도 반복됐습니다. 2009년 논현지구대 소속 경찰관 등이 안마시술소 단속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사건이 터졌을 땐 600여명의 ‘강남경찰’이 비강남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2012년에는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로부터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광범위하게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2019년 버닝썬 사건이 터졌습니다.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하는 대가로 버닝썬 등 강남 클럽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경찰 8명이 입건됐고, 승리 등의 부탁을 받고 강남경찰서 단속 상황을 확인해준 ‘경찰총장’ 윤아무개 총경은 270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강남경찰서가 ‘제1호 특별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돼 최대 70%의 직원이 교체될 수 있다는 발표에 대해 “강남경찰서 직원 99%는 깨끗한데, 1%의 ‘부패경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경찰들도 떠나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강남경찰’의 파격적인 시도는, 마침내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고질적인 유착비리를 끊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바뀌어도 21년째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이젠 다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철저한 ‘제 식구 수사’ 같은 것 말이지요.

선담은 24시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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