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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7 18:49 수정 : 2019.03.27 22:08

그래픽_김지야

대한항공 ‘일방 통행’에 제동
조현아 ‘땅콩 회항’ 사실관계 확인
국민연금 보낸 서한 등 계속 무시
‘2대 주주’ 요구 팽개치다 화 불러

재계에 ‘스튜어드십 확대’되나
눈치보지 않고 반대표 적극 행사
연기금 영향력 전보다 늘어날 듯
금융위원장 “긍정적인 면 보여줘”

그래픽_김지야
국민연금이 지난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가 27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이라는 첫 실행 사례를 만들었다. 연기금과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불법과 전횡을 일삼은 재벌 총수의 경영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현실화한 만큼,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영향력이 경영계에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이 마치 ‘집사’처럼 국민에게서 투자받은 자금이 손해가 나지 않도록 투자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기금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문제를 적극 해소·개선할 수 있도록 우선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하고 적극 이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투자한 자산을 지켜야 함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국민연금에 명시적인 활동폭을 넓혀준 셈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26일 밤 격론을 벌인 끝에 ‘대한항공의 조양호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내렸다. 이날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지분(11.7%)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가부를 갈랐다.

조 회장의 연임안 부결은 대한항공 쪽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연금은 2015년 1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이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비공개 서한을 발송했고 그 뒤에도 비공개·공개 서한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회사 쪽은 이를 무시했다. 국민연금은 2016년 3월 주총 때는 과다한 겸직을 이유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고, 지난해에는 경영진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대 주주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국민연금은 결국 조 회장을 직접 겨냥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국내 기업들은 주주가치 경영과 관련해 큰 변화를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짠물 배당’으로 알려진 현대그린푸드는 국민연금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총 전에 배당을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중점관리기업에서 벗어났다.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을 배당 확대에 집중했고, 그 결과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상장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이 1년 전보다 4천억원 이상 증가했다. 에프앤가이드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8년 사업연도 배당금으로 2조4167억원(지분 5% 이상 293개 기업)을 받아 전년도 배당금(2조157억원)보다 더 수익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됐다.

또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의결권 행사를 하는 것을 본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동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에스케이(SK) 주총 안건 표 대결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눈치 보지 않고 반대표를 던지는 원칙을 보여줬다. 선진국에서 활발한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그동안 국내에선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영향력에 가려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다. 당장 29일에 있을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강성부 펀드’와 조양호 회장이 격돌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조양호 이사 재선임안 부결은 향후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유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 대상 기업의 확대는 예고된 상태다. 국민연금은 올해 횡령, 배임, 경영진 일가 사익편취 행위 등을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고 해당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추진한다. 내년에는 비공개 대화에도 미개선된 기업에 대해 공개 주주활동으로 전환한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변화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이행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이번에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완 박수지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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