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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2 05:00 수정 : 2019.07.02 07:04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에서도 2011~2013년 장시간 노동과 욕설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문제가 됐다. 베트남과 인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장과 달리 브라질 정부와 노동자는 이에 강력히 대응해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마나우스 공장. 연합뉴스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⑤ 에필로그
2013년까지 다른 곳처럼 ‘생산현황 전광판’
현지 노동검찰 ‘노동착취’로 삼성전자 기소
삼성 인권보호 광고 캠페인, 노동존중 약속
“노동자가 노조로 대표되는 드문 삼성공장”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에서도 2011~2013년 장시간 노동과 욕설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문제가 됐다. 베트남과 인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장과 달리 브라질 정부와 노동자는 이에 강력히 대응해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마나우스 공장.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브라질 북부 마나우스와 남부 캄피나스에도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이 두 곳의 공장은 아시아 지역 삼성 공장과는 다르다. 먼저 브라질 공장에는 실시간으로 생산 현황과 목표치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없고, 불법적인 견습공 고용이 없다. 과로의 원인이 되는 무분별한 초과근무와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한국식 괴롭힘도 흔하지 않다. 노동조건의 차이를 만든 건 각 나라의 노동법과 ‘노동자의 힘’이었다.

삼성전자의 브라질 진출은 1995년 북부 마나우스에 직원 6천명 규모의 휴대폰 생산공장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4년에는 마나우스에 견줘 조금 작은 규모의 캄피나스 가전제품 공장을 추가로 지었다. 삼성은 중남미 시장에 공급하는 제품의 대다수를 여기서 만든다.

삼성전자 마나우스·캄피나스 공장의 노동조건은 적어도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아 공장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곳에서도 2011~2013년 장시간 노동과 한국인 관리자의 언어적·신체적 괴롭힘, 해고 위협 등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2011년 11월 캄피나스 공장에서 첫번째 사건이 터졌다. 삼성전자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일부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달라며 노동부를 찾아갔다. 그들은 관리자의 무리한 목표량 설정과 이에 따른 고강도 노동과 욕설, 휴식시간 미준수 등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브라질 노동검찰(MPT)은 노동법 위반 책임을 물어 삼성전자를 기소했다. 사건은 법원 조정을 거쳐 삼성이 지역 사회복지기금에 50만헤알(당시 환율로 약 3억3천만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끝났다. 노동자의 작업 속도를 높이려고 공장 내부에 설치했던 생산 현황 전광판도 그 이후 사라졌다.

2013년 8월 마나우스 공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불거졌다. 노동검찰 조사에서 하루 최대 15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강도의 문제가 나타났다. 노동자가 공장 밖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회(10분)에 그쳤다.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불법적으로 고용된 파견 노동자가 맡는 사례도 드러났다.

노동검찰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2억5천만헤알(당시 환율로 약 120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공공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5일 뒤 브라질 노동법원은 삼성에 하루 1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과 파견 노동자 불법 고용을 곧바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삼성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공공민사소송은 2014년 12월 삼성이 브라질 정부와 ‘행동규범 조정 합의’(TAC·티에이시)를 맺으며 일단락됐다. 브라질 노동검찰은 이듬해 누리집을 통해 삼성이 티에이시 합의와 함께 지역 사회복지기금과 노동인권 보호에 관한 광고 캠페인 등에 모두 1천만헤알(48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삼성은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브라질 정부에 약속해야 했다.

2017년 12월 브라질의 노동단체인 ‘리포터 브라질’(Reporter Brasil)과 유럽의 비정부기구 소모(SOMO: 다국적기업조사센터)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마나우스·캄피나스 공장의 노동조건은 그 이후 상당히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두 단체는 브라질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노동인권 실태를 다룬 <브라질에 진출한 외국계 전자기업의 노동조건> 보고서를 통해 2011~2013년 삼성전자 공장에서 문제가 된 과도한 초과근무와 한국인 관리자의 괴롭힘 등은 2015년 조사 때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마나우스 공장 생산라인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 리포터 브라질 제공
당시 조사에 직접 참여한 안드레 캄푸스 리포터 브라질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2014년 브라질 정부와 삼성전자 사이에서 이뤄진 합의는 이후 삼성 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의 노동조건이 몇 차례 논란을 거치며 어느 정도 나아진 것은 일차적으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이를 가능하게 해준 노동법 덕분이다. 브라질의 노동법은 2017년 개악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여전히 노동친화적이라는 평가다. 노동검찰과 노동법원도 한국에는 없는 제도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노동권 침해에 소송으로 맞설 때가 많다.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면 무료 소송도 가능하다.

노동조합의 높은 조직률과 강한 영향력도 삼성 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삼성전자 마나우스·캄피나스 노동자의 상당수는 지역별 금속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는데, 삼성 노동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 브라질이다. 노조는 삼성 공장의 고용 불안과 임금 수준의 하락에 맞섰다.

2012년 삼성전자 헝가리에 이어 브라질 공장의 노동실태 조사에도 참여한 소모의 이레너 스히퍼르 선임연구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글로벌 삼성의 노동조건이 각 나라의 노동법과 노조의 위상에 따라 달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초국적 기업에 관한 유엔(UN) 가이드라인 등 국제 규범을 따르기보다, 각 나라의 노동법 수준에 맞춰 자신들의 ‘저비용 모델’을 구현하는 것에 훨씬 관심이 많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현지 정부가 저비용 모델을 허용하기만 한다면, 삼성은 노동권 보호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소모의 조사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에서는 2012년 조사 당시 ‘타임뱅크’라는 이름으로 4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시행했다. 초과노동에 대한 보상은 수당이 아니라 비수기에 적게 일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임금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헝가리에서는 탄력근로제를 노동자 대표의 동의 없이 사용자의 지시로 실시할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8~9%에 그칠 만큼 낮고,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도 많지 않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헝가리의 사회적 대화 구조 및 과정은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스히퍼르 연구원은 “(2015년 조사에서) 여전히 일부 노동조건의 문제가 나타났지만, 브라질은 삼성이 진출한 다른 나라와 뚜렷하게 달랐다”며 “브라질 공장은 노동자가 노조로 대표되는 전세계 삼성의 몇 안 되는 공장 가운데 한 곳”이라고 말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 등 전세계 삼성전자 공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각 나라의 의지와 함께 노동자한테 실질적인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립스(LIPS)의 파흐미 소장도 아시아 삼성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와 관련해 “삼성 노동자들은 무노조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집단으로 항의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아시아 삼성 공장에 노조가 존재했다면 노동자들 스스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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