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팀 선임기자 강한 우려와 실망. 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데 대한 미국의 반응은 이렇게 줄일 수 있다. ‘실망’이란 용어가 동맹을 향한 외교적 언사로는 도가 세다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했다는 점에서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미국이 실망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건 미 국무부의 논평이다. 미 국무부는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동북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안보적 도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한국의 설명은 ‘무지의 소치’라는 얘기다. 일본 외무상이 “지역의 안보환경을 완전히 오인한 대응”이라고 밝힌 것과 판박이다. 위협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한 동맹이 과연 있을까 싶다. 동맹이라고 해서 한결같이 굳건하고, 협력한다고 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이따금 덜컹거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관계가 굴러가는 것은 강력한 행위자가 동맹의 이익을 분배하고, 협력의 지속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의 역사적 청산을 놓고 불거진 한-일 갈등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폭발한 작금의 상황은 미국이 그런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애초 미국의 구상에서 출발한 ‘불안한 동거’였다. 서로 다른 과거를 가진 한국과 일본을 미국이 억지로 맺어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동거가 유지되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이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 미국이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이듬해 지소미아 체결까지 성사시킴으로써 결속력을 키웠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지도력이 어떤 형식으로든 한-일 관계에 관철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도력은 사라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곳곳에서 동맹의 가치를 동전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칭송하기보다는 주한미군과 연합훈련 유지에 돈만 들어간다며 투덜댔다.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군국주의화의 길을 가속화하는데도 모른 척했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은 침략의 과거를 환기시키고, 이는 우호적인 한-일 관계와 양립할 수 없다. 적어도 한-미-일 안보협력은 이미 파탄의 조짐을 드러냈다. 미 국무부가 논평에서 지적한 ‘동북아에서 직면한 안보 도전’이란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증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부상이 이 지역에 뿌리내린 미국 주도의 질서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틀린 인식은 아니다. 중국은 기존 동북아 질서를 변경하려 하고, 이는 미국의 이익과 충돌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역내 국가들을 규합하려는 줄세우기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역내 국가들이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미-중 대결구도로 단순하게 수렴하지 않는 데 있다. 더욱이 역내 국가들의 힘의 격차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좁혀져 있고, 특정 분야에서는 순위가 바뀌는 세력전이가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지정학적 변화를 촉진하거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동북아의 변화는 중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갈등은 이런 복잡성이 양자관계에 투영된 결과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과 미국,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일본은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해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군사대국이 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일 관계는 뚜렷한 좌표를 잡지 못한 채 표류했다. 미국은 이제 동북아에서 동맹의 이해충돌을 반영하는 한층 세심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moon@hani.co.kr
칼럼 |
[한겨레 프리즘] 미국이 실망스럽다 / 유강문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강한 우려와 실망. 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데 대한 미국의 반응은 이렇게 줄일 수 있다. ‘실망’이란 용어가 동맹을 향한 외교적 언사로는 도가 세다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했다는 점에서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미국이 실망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건 미 국무부의 논평이다. 미 국무부는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동북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안보적 도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한국의 설명은 ‘무지의 소치’라는 얘기다. 일본 외무상이 “지역의 안보환경을 완전히 오인한 대응”이라고 밝힌 것과 판박이다. 위협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한 동맹이 과연 있을까 싶다. 동맹이라고 해서 한결같이 굳건하고, 협력한다고 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이따금 덜컹거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관계가 굴러가는 것은 강력한 행위자가 동맹의 이익을 분배하고, 협력의 지속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의 역사적 청산을 놓고 불거진 한-일 갈등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폭발한 작금의 상황은 미국이 그런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애초 미국의 구상에서 출발한 ‘불안한 동거’였다. 서로 다른 과거를 가진 한국과 일본을 미국이 억지로 맺어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동거가 유지되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이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 미국이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이듬해 지소미아 체결까지 성사시킴으로써 결속력을 키웠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지도력이 어떤 형식으로든 한-일 관계에 관철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도력은 사라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곳곳에서 동맹의 가치를 동전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칭송하기보다는 주한미군과 연합훈련 유지에 돈만 들어간다며 투덜댔다.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군국주의화의 길을 가속화하는데도 모른 척했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은 침략의 과거를 환기시키고, 이는 우호적인 한-일 관계와 양립할 수 없다. 적어도 한-미-일 안보협력은 이미 파탄의 조짐을 드러냈다. 미 국무부가 논평에서 지적한 ‘동북아에서 직면한 안보 도전’이란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증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부상이 이 지역에 뿌리내린 미국 주도의 질서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틀린 인식은 아니다. 중국은 기존 동북아 질서를 변경하려 하고, 이는 미국의 이익과 충돌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역내 국가들을 규합하려는 줄세우기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역내 국가들이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미-중 대결구도로 단순하게 수렴하지 않는 데 있다. 더욱이 역내 국가들의 힘의 격차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좁혀져 있고, 특정 분야에서는 순위가 바뀌는 세력전이가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지정학적 변화를 촉진하거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동북아의 변화는 중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갈등은 이런 복잡성이 양자관계에 투영된 결과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과 미국,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일본은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해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군사대국이 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일 관계는 뚜렷한 좌표를 잡지 못한 채 표류했다. 미국은 이제 동북아에서 동맹의 이해충돌을 반영하는 한층 세심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moo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