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아시아 스타상’을 받은 일본 배우 미우라 하루마는 수상소감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서울드라마어워즈 조직위 제공
“이웃 나라로서 우리는 종종 난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이런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난 28일 열린 ‘2019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아시아 스타상’을 받은 일본 배우 미우라 하루마의 수상 소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일 관계’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2분 남짓한 수상 소감 내내 양국 관계 정상화를 기원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엔터테인먼트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통해 아시아 전체의 강화에 더욱더 기여하고 싶다. 이 자리에서 수상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미우라 하루마는 1997년 아역으로 데뷔한 일본의 대표적 인기 배우다. 우리에게는 현재 <후지티브이>에서 방영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작 <투윅스>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유명 배우가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에 공식 석상에서 한-일 관계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우익 논란이 인 영화 <진격의 거인> <영원의 제로> 등에 출연한 배우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드라마어워즈 관계자는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커지고 있어 수상 소감으로 배우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리가 걱정했을 정도였다”며 “일본 내 인기 배우가 이 정도의 발언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서도 문화교류는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1998년 한-일 문화 전면 개방 이후 오랜 기간 양국의 문화공유 경험이 누적돼 있어, 이를 냉각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열쇠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시바야마 마사히코 일본 문부과학상은 인천에서 비공개 양자회의를 열고 “한-일 문화교류는 계속될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는 한일 코미디언들이 함께 <코쿤과 월드와이드> 무대에 섰다. 그들은 공연 도중 “아이러브코리아”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제공
한국과 일본 코미디언들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9월1일까지 열린 ‘7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 최대 코미디언 소속사인 요시모토흥업의 우에스피(P), 아키라 콘티넨탈 휘바와 한·일 코미디언들로 구성된 5인조 개그 그룹 코쿤은 24~25일 공연 <코쿤과 월드와이드>를 선보였다. 이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주최 쪽에서 프로그램북에서 공연 소개를 빼고, 애초 제목인 <코쿤과 요시모토>를 수정하는 식의 ‘과도한 몸사리기’에도 묵묵히 공연을 진행했다. 엉뚱한 마술로 웃음을 자아냈던 아키라 콘티넨탈 휘바는 공연 도중 태극기를 들거나 ‘아이 러브 코리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보여주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코쿤의 한·일 멤버들은 공연이 끝난 뒤 “공연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객은 1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요시모토흥업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도 관객들이 호응해줘서 일본 코미디언들이 감사해했다”며 “문화교류 차원에서라도 공연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인형극단 예술무대산과 일본 그림자극단 가카시좌가 함께 기획하고 양국 무대에 올린 인형극 <루루섬의 비밀>. 예술의전당 제공
한·일이 함께 손잡고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시도도 연극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 인형극단 예술무대산과 일본 그림자극단 가카시좌가 공동제작해 지난달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어린이 연극 <루루섬의 비밀>은 2012년 교류를 시작한 양국 극단이 5년간 함께 아이디어를 내어 완성했다. 연출은 공동으로 맡고 한국인 배우 2명과 일본인 배우 2명이 참여한다. 지난 3월 일본 초연 뒤 8월 서울 공연에 이어 9~10월에는 과천과 인천 등에서 막을 올리고 내년 5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세계총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 내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콘텐츠는 아시아로 뻗어나갔고,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한 케이(K) 컬처의 위상은 이제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년도 문화콘텐츠산업(출판·영화·게임·음악 등) 통계조사를 보면, 일본에 대한 수출액은 16억5597만5000달러로 수입액 2억1408만6000달러의 7~8배에 이르는 등 문화 콘텐츠에서 한국은 일본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문화교류를 통해 정치, 경제에서 생기는 양국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티브이아사히>가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취소하는 등 ‘한국 때리기’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도쿄 공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일본 아미들의 목소리였다. 김경환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는 “한-일 문화교류는 정치, 경제와는 분리시켜서 달리 가야 한다. 문화 쪽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굳이 문화행사를 안 할 필요가 없다. 전선은 경제 쪽으로 국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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