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육식과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한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이제 인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돼지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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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영화감독 황윤 기고
과도한 육식과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한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이제 인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돼지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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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 100%에 이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발생 농가 인근 수천 마리의 돼지들은 살처분을 당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돼지를 다룬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연출하고, 최근 책 <사랑할까, 먹을까>를 펴낸 황윤 감독이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악취나는 축사, 널브러진 약병들 세계적으로 1만8500명을 희생시키고 국내에서도 263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종플루, 아니 ‘돼지독감’(swine flu)은, 멕시코의 대규모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된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했다.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두 돌을 앞둔 2010년 말, 이번엔 구제역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살처분 광풍이 불었다. 돼지독감과 구제역은 비슷하고도 달랐다. 둘 다 돼지를 매개로 한 1급 전염병이지만, 전자는 사람에게 옮았고, 후자는 돼지들만 걸렸다. 구제역으로 아이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무서웠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살아있는 생명을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잔인함이었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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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이 놀라운가 한편으로 나는 공장식 축산이 아닌 소규모 농장도 취재했다. 충북 어딘가에 방목형 돼지농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새끼돼지가 독수리에게 물려가기도 한다니, 넓은 곳에 돼지를 방목하는 괜찮은 농장인가보다 하는 기대를 갖고 현장에 도착했다. 악취가 진동했다. 파이프를 통해 갈색 죽 같은 형태의 음식물 잔반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돼지들이 그것을 먹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잔반이 섞여 부패한 악취로 토할 것 같았다. 돼지는 굉장히 발달된 후각과 미각을 가진 동물이다. 농장주는 사료 값을 아끼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로 돼지를 키우는 것이라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는 피를 통해 전파된다. 한 방울의 피에도 수백만 개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누군가 해외에서 ASF 바이러스가 묻은 육포를 갖고 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다면, 그리고 그걸 그 농장의 돼지들이 먹었다면? 그 농장을 시작으로 한국의 돼지 농장들은 초토화되었을 것이고 야생의 수많은 멧돼지들도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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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돼지열병…다음은? 돼지독감(신종플루),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그다음은 무엇일까? 질병 전문가들은 돼지독감과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조합이 되어 치명적인 인수공통 전염병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현재의 과도한 육식문화를 멈추지 않는 한, 구덩이에 들어갈 다음 차례는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한국인은 연간 75만 마리의 소, 1500만 마리의 돼지, 8억 마리의 닭을 먹고 있다. 한편으론 ‘탈 육식’ 비건(vegan) 문화가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동물에 대한 착취를 멈추라는 외침에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져서다.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2050년에는 인류문명이 파멸에 이르고 인간도 멸종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 속에, 지난주 수백만 명의 세계인이 거리로 나와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를 촉구하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_______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육식 지난 8월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 전 세계 과학자 107인이 내놓은 '기후변화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통곡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으로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영국 BBC 방송은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서구식 음식섭취가 지구 온난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문장을 이번 IPCC 특별보고서의 핵심으로 골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에서 수석 자문위원으로 근무한 환경과학자 로버트 굿랜드 박사는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총량의 무려 51%를 차지한다"는 분석 결과를 2009년 월드워치연구소 보고서에 발표한 바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어떤 이는 고깃값이 오를까 걱정하고 어떤 이는 한국산 삼겹살을 못 먹게 될까 걱정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걱정은 그런 걱정이 아니다. 이제는 이 별에서의 생존을 걱정할 때이고, 그러므로 남의 살 무한리필을 멈춰야 할 때다.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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