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6 17:49
수정 : 2019.09.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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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및 처분 현장에서 생매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생매장 살처분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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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단체, 살처분 현장 문제 폭로 기자회견
“관리 감독 제대로 안돼 사실상 돼지 생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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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및 처분 현장에서 생매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생매장 살처분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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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김아무개(59)씨는 지난 23일 경기도 김포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적 살처분’ 작업 현장에 투입됐다. 예방적 살처분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안에 있는 농장의 가축을 죽이는 작업이다. 충남 천안에서 이날 오후 8시에 출발해 자정이 다 돼서야 김포에 도착한 김씨는 방역복을 입고 24일 오전 8시까지 밤을 새워 돼지를 구덩이에 모는 일을 했다. 이날 살처분은 돼지들이 모인 구덩이에 비닐을 씌우고 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8시간 동안 쉴새없이 돼지들을 죽이고 집에 돌아오니 낮 12시가 됐다. 받은 일당은 16만원. 김씨는 “살처분 전에 방역복 입는 방법이나 살처분 하는 방법을 교육받고, 살처분이 끝난 뒤에는 소독하는 것 말고는 따로 안내 같은 걸 받은 건 없다”며 “‘살처분 뒤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10일 동안 돼지농장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지침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연천과 김포를 지나 인천시 강화군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방역사를 동원할 수 있는 ‘상시 방역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전문성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동원해 ‘속도전’식으로 살처분 작업을 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은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용역업체들의 주먹구구식 방식에 살처분을 맡기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현장에서 살처분 인력들을 만나서 확인하니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법과 매뉴얼에 따라 방역을 시행해야 하는데 날림과 불법, 편법으로 생매장 살처분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돼지를 몽둥이로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면서 넣고 있었고, 포크레인으로 밀고 있었다”며 “살처분에 참여하는 용역업체의 수익이 살처분 돼지 수와 범위에 달려있다 보니 불법적인 살처분 방법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법 제10조 2항을 보면, ‘축산물위생관리법이나 가축전염병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나 전기 충격을 이용해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고,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매몰의 경우에도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케어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안락사 살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직무유기 때문”이라며 “(살처분 작업 현장 중 한 곳인) 파주시를 동물보호법 위반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고 말했다. 케어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해서 “동물보호법이 가축의 도살을 가스법 등 고통을 최소화하는 안락사로 한정시키고 있는데, 케어가 실제 살처분 현장을 확인해보니 관리 감독이 제대로 안 돼 돼지들이 의식이 있는 상태로 집어 던져지고 땅에 묻히는 등 사실상 생매장 방식으로 살처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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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및 처분 현장에서 생매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생매장 살처분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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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을 보면, 이번 돼지열병으로 인해 전날 오후 7시 현재까지 살처분 대상이 된 돼지는 모두 6만여마리다. 정부는 현재 발생농장으로부터 500m 이내 농장의 돼지를 살처분하도록 규정하는 긴급행동지침보다 범위를 확대해 3㎞ 이내 농장의 돼지까지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 문제는 동물보호단체의 지적처럼 살처분 외주화로 인해 현장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데다 사후 관리도 안 된다는 점이다. 긴급행동지침을 보면, ‘시장·군수는 살처분에 참여하는 인력에 대하여 작업 전·후 반드시 방역수칙 교육(살처분 관련규정, 작업요령, 주의사항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한겨레>가 25일 충남 천안에서 만난 다수의 살처분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이런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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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의 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현장에서 방역 당국이 살아있는 돼지들을 포크레인으로 집어 트럭에 싣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케어’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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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용직 노동자들의 다수가 외국인 이주노동자라는 점도 방역 교육과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 20일 경기도 연천군으로 살처분을 하러 갔던 천안의 한 용역업체 대표 ㅈ(67)씨는 “연천에 살처분을 하러 간 일용직 노동자 35명 가운데 2∼3명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속도전식 살처분 작업으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ㅈ씨는 “(살처분하고 난 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돼지를 몰아넣는 그 장면이 막 떠오른다”며 “돼지들이 막 달려들어서 살려달라고 하는 꿈을 몇번 꿨다”고 말했다.
김혜윤 오연서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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