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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1 18:50 수정 : 2019.11.12 02:10

덤프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돼지 피. 돼지가 부풀어 올라 피가 나오고 있다. 전광준 기자

[연천 민통선 마거리 매몰지 가보니]

“병 안 걸린 돼지들도 싹 죽여…수만마리”
현장엔 덤프트럭 20여대 줄서
실온 방치된 사체에선 피 뚝뚝

정부, 돼지 묻을 땅 확보는 안 해줘
연천군 “빈 부대 발견, 매몰지 겨우 찾아”

경기도가 비용 싼 ‘렌더링’으로 전환
사체 밀려드는데 처리 속도는 더뎌
“이번에 확실한 매뉴얼 만들어야”

덤프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돼지 피. 돼지가 부풀어 올라 피가 나오고 있다. 전광준 기자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군부지에 살처분된 돼지 수만마리가 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감염되지 않은 돼지들까지 전부 살처분하도록 밀어붙이면서 매몰지 확보 등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11일 오후 <한겨레>가 마거리 민통선 인근을 찾았을 때 도로에는 덤프트럭 20여대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덤프트럭 적재함 뒤편 틈새에선 피가 뚝뚝 떨어져 도로가 빨갛게 물들었다. 적재함 덮개는 부풀 대로 부푼 수십마리의 돼지 사체가 밀어내고 있었다. 덤프트럭 한대가 실을 수 있는 돼지는 50~60마리다. 1천여마리의 돼지는 마거리에 도착해 이미 하루 넘게 실온에서 방치된 터였다.

덤프트럭들이 향한 곳은 원래 군 수색대 연병장으로 쓰이던 민통선 내 마거리 매몰지로 민간인은 허가 없이 오갈 수 없다. 이 지역에서 돼지 매몰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한겨레>에 “현장에 죽은 돼지가 3만마리는 있다고 알고 있다. 돼지가 산처럼 쌓여 침출수가 흐르고 있다. 10일 내린 비 때문에 냇가에 돼지 피가 흐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연천군의 하천은 임진강과 연결돼 있어, 식수 오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민통선 마거리 매몰지에 이런 아비규환이 연출된 것은 정부가 ‘예방적 살처분’ 방식으로 연천군 내 모든 돼지를 수매 후 살처분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인 뒤 두달 새 연천에서만 19만마리의 돼지가 일괄 살처분됐다. 마거리 매몰지의 돼지들 중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돼지는 없다. 연천군 관계자는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천에 있는 돼지를 싹 다 죽였다. 이런 방식은 지침에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을 보면 연천에서 사용하는 ‘수매 후 살처분’ 방식에 대한 지침이 없는데도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이달 9일까지 살처분을 모두 끝내라’고 압박했다. 살처분된 돼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매몰 부지 마련 등 ‘살처분 이후’ 대책 마련엔 소극적이었다. 연천군 관계자는 “한참 전부터 (매몰) 부지를 알아봤지만 부지를 알아보는 건 실무자 선에서 불가능하다. 여러차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직접 민통선 안에 있는 빈 부대를 발견한 뒤 국방부에 문의해서야 매몰 가능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몰지를 선정하는 데 연천군과 협조해달라고 (우리 쪽이) 국방부에 부탁했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살처분 방식을 바꾼 것도 이런 ‘지옥도’의 한 배경이다. 경기도는 그동안 매립 방식으로 진행된 살처분을 렌더링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2일 밝혔다. 렌더링은 사체를 고온에서 가열한 뒤 퇴비 등으로 재가공하는 방식인데 비용이 매몰의 40% 수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렌더링의 경우 처리 속도가 느려 연천과 인근 포천의 렌더링 업체 두곳이 모두 달라붙어도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개체 수가 4천~5천마리에 그친다. 처리 속도가 지지부진하자 경기도는 뒤늦게 정부, 연천군과 협의해 매몰과 렌더링을 병행하기로 방침을 재변경했다. 서둘러 살처분을 지시한 정부와, 비용을 고려한 지자체가 방역에서 엇박자를 낸 셈이다.

덤프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돼지 사체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전광준 기자

마거리 매몰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연천군이 긴급지침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지침상 군수는 매몰 후보지를 선정할 때 매몰지특별관리단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연천군은 아예 특별관리단을 꾸리지도 않았다.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병에 걸린 가축에 대한 일반적 살처분은 필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가축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은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살처분은 답이 아니다”라며 “이번 기회를 토대로 확실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연천/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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