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포대로와 서초대로에 시민들이 가득 차 있다. 사진 왼쪽부터 대법원 앞길, 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잇길, 서초역 네거리에서 교대역 길, 서초역 네거리에서 예술의전당 길. 서초역 네거리 상공 위에 드론을 띄워 360도로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 사진 앱에서 파노라마로 편집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심층인터뷰│내가 촛불을 든 이유
8차 서초동 촛불집회 참여자 52명 “검찰보다 국민이 더 세다”
서초역 네거리 반포대로 서초대로 양방향 3㎞ 채워
|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포대로와 서초대로에 시민들이 가득 차 있다. 사진 왼쪽부터 대법원 앞길, 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잇길, 서초역 네거리에서 교대역 길, 서초역 네거리에서 예술의전당 길. 서초역 네거리 상공 위에 드론을 띄워 360도로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 사진 앱에서 파노라마로 편집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지난 5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서초역 네거리는 동~서 1.2㎞, 남~북 1.6㎞ 크기의 촛불로 가득 찼다. <한겨레>는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 목소리가 울려 퍼진 이날 집회 참가자 52명을 직접 만나 참가 이유와 함께 조국 법무부 장관과 검찰에 대한 평가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촛불을 든 이유, 나이와 성별은 제각기 달랐지만, 한 가지는 비교적 명확했다. 조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과잉됐다는 판단이 촛불에 불을 붙였다.
_________
11시간 압수수색이 ‘버튼’이었다
<한겨레>가 만난 52명 가운데 38명(73%)은 집회 참가 이유를 검찰의 ‘과잉 수사’로 꼽았다. 특히 38명 가운데 15명은 지난달 23일 조 장관 집 압수수색을 변곡점으로 꼽았다. 직장인 이원의(58)씨는 “현직 장관인 것을 떠나서 자연인이라도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조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 건강도 안 좋은데, 11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한 것은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검찰 수사의 목적이 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망신을 주기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7살 아들과 함께 집회에 나온 천아무개(47)씨는 “검찰이 음식을 시켜먹으면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아예 노골적으로 예의를 안 지키기로 작정하고 수사하는 것 같았다. 마치 한판 붙자는 메시지로 보였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의 이아무개(54)씨는 “청문회 날 검찰이 조 장관 부인을 기소했을 때 하극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 압수수색 때 조 장관 딸 일기장까지 가져가려고 했다는 보도도 충격이 컸다. 그 장면들이 나에겐 ‘버튼’이 눌린 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최아무개(52)씨도 “가장 큰 변곡점은 무리한 압수수색이었다. 그때부터 조 장관이나 그의 가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검찰 수사의 형평성도 지적했다.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신혜영(42)씨는 “검찰은 그동안 자기들이 수사하고 싶은 것만 수사해왔다. 김학의 사건, 세월호 참사, 장자연 사건 등 (검찰이) 어물쩍 넘어온 게 얼마나 많았냐”며 “그런 검찰이 조국 수사에는 검사 수십 명을 투입하는 걸 보면서 기득권 유지에 위협이 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수사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황아무개(48)씨도 “나경원(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나 장제원 의원 자식들은 어마어마한 죄를 저질렀는데 불구속하고, 조 장관 딸은 (기존에) 있는 표창장을 탄 게 문제가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문제를 꼽는 이들도 많았다. 박성환(43)씨는 “처음에는 의혹이 많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검찰에서 프레임을 그렇게 만들고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일었다. 검찰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는 언론에도 불만이 많았다”고 밝혔다. 인천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박정호(61)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언론사에서 나온 대부분의 기사를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_________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 기억도 큰 영향
2009년 검찰 수사를 받다가 세상을 등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시민들을 거리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한겨레>가 만난 52명 가운데 32명(62%)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집회 참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최아무개(57)씨는 “사실이면 상관이 없는데 당시도 사실이 아닌 것을 검찰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언론에 뿌린 것 아닌가. 한국 민주주의에 많은 공헌을 한 대통령인데 자존심을 무너뜨려 세상을 떠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그때처럼 잃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아무개(51)씨 역시 “그때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돕지 못해서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 기억이 촛불을 드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박병욱(56)씨는 “(권양숙 여사가) 논두렁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고가의) 시계를 버렸다는 것처럼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검찰이 유포하고 언론이 그대로 보도한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본다”고 두 사건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은 조 장관에 대해 “검찰개혁의 선봉장이다”, “조국을 지켜야 검찰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은 같이 외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초동 집회에선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이라는 두 구호가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조 장관 개인에 대해 비판적인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도현(51)씨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이번 사태는 개인에 대한 호감 문제가 아니”라며 “조국 장관은 검찰개혁의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자 정치 적폐와 국민권력 간 싸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므로 도저히 물러설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오아무개(32)씨 역시 “처음에는 꼭 조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의 모습을 보며 위협을 느꼈다”며 “내 아이가 아무리 유능해도 저렇게 매장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위한) 내 명분이 됐다. 무조건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조 장관이 내놓은 메시지들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 장관이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 군포에 사는 이아무개(64)씨는 “조 장관이 물러나면 그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의 손아무개(48)씨도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 장관을 흔들어 검찰개혁을 막고 정권까지도 흔들려는 것이다. 조 장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_________
집회 처음 나온 이들도 많아
이번 사태를 보고 평생 처음 집회에 나왔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겨레>가 만난 52명 가운데 11명(21%)이 그런 경우였다. 경기 부천에 사는 김아무개(54)씨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지난주부터 참여했다”며 “처음엔 촛불정권에서 굳이 집회를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 이번에는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아무개(51)씨 역시 “검찰개혁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 이번에 처음 집회에 나왔다”고 밝혔다.
|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에서 연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검찰과 언론, 야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많은 시민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검찰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다. 그만큼 ‘내가 조국이다’라는 구호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경기 파주의 이아무개(24)씨는 “언론과 야당과 검찰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죄를 뒤집어 씌어 한 가족을 몰아가고 있지 않나. 그게 내 가족 같고 나 자신 같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의 이아무개(65)씨도 “검찰을 국민의 힘으로 기필코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회에 나왔다. 지금 검찰을 개혁하지 못하면 우리 중 누구라도 죽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했다.
최근 검찰이 스스로 내놓은 개혁안에 대해서도 “뼈를 깎는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손톱을 깎았다”, “사건 (내용) 흘리지 말고 우리 식구, 내 편이라고 감추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특수부 축소로 가능한 게 아니다” 등 부정적인 견해가 나왔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40~50대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다. 실제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52명의 연령층도 20~30대가 9명, 40~50대가 34명, 60대 이상이 9명이었다. 이 가운데 남성은 32명, 여성은 20명이었고, 이들의 평균 나이는 50살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2016년 12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끝장 내는날’ 7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_________
서초동 안 간 ‘2016년 촛불’ “‘검찰개혁=조국수호’ 동의 못해”
2016년 광화문 박근혜 탄핵 촛불에는 참가했지만, 2019년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두고 ‘촛불의 분화’라거나 ‘진보의 균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겨레>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탄핵 촛불에는 참여했지만, 서초동 촛불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대체로 ‘검찰개혁’이라는 구호에는 공감했지만, 서초동 촛불에서 나오는 ‘조국수호’ 구호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검찰개혁 필요성과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관련 의혹과 입시 특혜 의혹 등의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대학원생 남아무개(26)씨는 “검찰권력 제어도 중요하지만,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등치하는 집회 방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입시부터 취업까지 모든 게 경쟁인 시대인데, 어떤 이는 부모 잘 만나서 남들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니 맥이 탁 풀렸다.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의제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권아무개(24)씨도 “검찰개혁이 필요하지만, 사모펀드나 딸 입시 등 특혜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조국수호’를 외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주변에 전문대 졸업한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들은 조 장관 딸을 두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강사인 염아무개(46)씨는 “조 장관은 집권 세력인데 굳이 집회에 나가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사모펀드는 본인에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과거에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데다 민정수석이라는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재산권을 행사하는 부분에서 보통 사람보다 엄격한 자기 규칙이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등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뭉쳤던 탄핵 촛불과 달리 서초동 촛불을 ‘문재인 정부 수호 세력과 그 반대쪽 사람들의 싸움’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대학원생 이희영(26)씨는 “탄핵 촛불 때는 페미니스트와 노동자 계급 등 사회의 불의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이 다 나왔지만, 이번 집회는 문재인 정부를 수호하려는 사람 대 조국을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의 구도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주아(25)씨는 “구체적으로 검찰개혁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조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검찰개혁 구호를 쓰고 있다”며 “조 장관에게 능력이 있다고 해서 도덕적 결함을 묻고 가자는 건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과 합의를 흔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2016년 열린 촛불집회에 대부분 참석했던 이아무개(42)씨는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보인 검찰에 대한 분노가 주된 공감대인 것 같은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감흥이 없다”며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은 정치인이 서로의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을 없애자는 데 초점이 맞춰진 건데, 그게 검찰개혁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삼성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검찰을 만드는 게 개혁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계급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서초동 촛불에선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인 박아무개(31)씨는 “부자든 빈자든 입시제도 앞에서만큼은 누구나 평등함을 보장받는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번 조국 사태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면서 그 믿음이 깨졌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아무개(30)씨는 “따뜻한 개천을 만들자던 사람이 붕어와 가재, 개구리를 비웃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라며 “자녀 입시 특혜 논란에 ‘모른다’고 일관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용의 세상’에서만 살아온 이의 관성적 무지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진보 진영에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부터 탄핵 촛불까지 모두 나갔다는 직장인 김아무개(32)씨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 장관 부인의 하드 빼돌리기를 두고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보존용’이라고 말한 걸 보고 진보 진영의 도덕성이 선택적으로 작동하는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환봉 이유진 서혜미 김윤주 강재구 김혜윤 권지담 김민제 이주빈 기자
yjle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