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은 매우 중요한 책이다. 저자 하승수씨는 녹색당 창당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제 확대를 위해 지난 수년간 불철주야 헌신해온 시민운동가이자 ‘진보적’ 논객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크게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큰 그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해방 후 실시된 ‘농지개혁’의 예를 들어, 지금 그와 유사한 과감한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지금 국회는 완전 마비 상태이고,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매진한 것 외에는 촛불정부를 자임한 취임 초의 ‘장엄한 약속’은 어느새 희미해져 가고 있다. 마치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의 ‘야만인들을 기다리며’라는 시에 묘사된 것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로원 의원들이 자신들의 임무는 팽개치고 오로지 야만인들이 와서 구원해주기만을 바라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철저한 무책임과 무능 탓에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고 막연히 큰 ‘이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속수무책의 정치 상황을, 전율을 느끼며 볼 수 있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그리고 나아가 세계 전체)의 정치적 기능 부전 상태는 고도의 산업기술문명 속에서 우리들의 시야가 갈수록 좁아지고, 정신력이 쇠약해지고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큰 그림’ 없이는 실종된 사회정의를 되찾을 수도 없고, 임박한 생태적 위기를 타개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은 상상력을 키우고, 마음을 크게 갖는 것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소나마 낯선 풍경을 자주 접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왜소한 정신세계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코스타리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현대 세계에서 군대 없는 나라가 있으랴 싶지만, 실제 그런 나라가 있다. 아이슬란드와 코스타리카가 그렇다.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의 외딴 섬나라이니 예외적이라 할 수도 있다면, 정말 흥미로운 나라는 코스타리카다. 놀랍게도 소규모 도시국가도 아닌, 인구 500만명의 버젓한 근대국가가 1949년에 헌법에 군대 폐지를 명시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도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는 10만명 이상의 상비군에다가 유사시에 즉시 동원 가능한 10만명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는 무장 국가다.
<군대를 버린 나라―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라는 일본인 청년이 쓴 책을 보면,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없앤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원래 군대를 없애자고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은 뜻밖에도 국방장관이었다. 오랫동안 라틴아메리카는 빈발하는 쿠데타 때문에 세계에서도 가장 불안한 지역이었다. 그 상황에서 군대의 폐지란 쿠데타 방지책으로 유효한 방책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의 최고 지휘자가 이를 발의하고, 대통령이 수용한다는 것은 비상한 용기가 없으면 안 될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군대를 없앤 후, 코스타리카는 별문제 없이 주권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두어 차례 니카라과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외교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 외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비무장 국가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늘의 국제 질서가 약육강식의 논리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국제법이 있고 명분을 중시하는 국제관계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코스타리카는 비무장 국가가 됨으로써 도리어 더 큰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군대를 없앰으로써 얻는 구체적인 이익은 무엇인가. 우선 막대한 국방 예산이 필요 없어졌으니 당연히 그 돈을 빈민에 대한 지원, 교육과 의료, 사회보장 강화에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익은 대다수 국민의 심리와 정서가 극히 평화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군대를 폐지하고도 문제가 없음을 체험한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오히려 국가와 자신의 일체화를 느끼게 되었다. 근대국가란 ‘정당한 폭력행사를 독점하고 있는 조직체’이다. 따라서 국가 질서는 기본적으로 ‘큰 폭력이 작은 폭력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국가권력은 언제라도 괴물로 변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늘 잠재적인 국가공포증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코스타리카 국민은 오늘의 세계에서 예외적인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반세기 이상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된 민주주의를 유지해온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질을 증언해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시, 미국은 최소한의 명분 확보를 위해서 유엔의 승인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하자, 영국·일본·한국 등 만만한 동맹국들로부터 전쟁 지지 표명을 얻어냈다. 어떤 경위인지 모르지만 코스타리카도 거기에 동참했다. 그러자 한 대학생이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제소를 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지지 명단에서 코스타리카를 삭제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코스타리카는 인간이 ‘자유인’으로 살면, 얼마나 생각이 넓어지고 지혜로워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농어업과 관광업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코스타리카에서 대다수 국민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도한 공업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에는 호사스러운 호텔도, 대규모 골프장도, 카지노 따위도 없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세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5성급, 6성급 호텔에 투숙하고 골프를 치고 도박을 하기 위해 코스타리카로 오는 게 아니라 빼어난 자연경관과 평화로운 사회를 보러 온다고 생각한다. 부러울 정도로 건강한 상식이 살아 있는 나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국이 분단국가인 이상, 군대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고착관념이 바로 우리를 가두고 있는 근원적인 질곡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군대 없는 나라가 될 거라는 신념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그런 신념의 유무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과 결합됨으로써 우리 민족이 ‘웅비’할 수 있다는, 낡은 성장시대의 왜소한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간 겪어온 분단의 고통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마음을 크게 먹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김종철ㅣ<녹색평론> 발행인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