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2 05:02
수정 : 2018.05.02 10:44
창간기획 _ 평화원정대 뒷얘기
케이프타운 경찰서 기습취재
‘등투’ 대학생 24명 체포 악명
서장에게 ‘평화’ 묻자 “조화”
한겨레평화원정대는 하루하루 길을 갑니다. 길 위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납니다.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평화란 막다른 길목의 끝에 찍는 마침표가 아니라 길목과 길목을 연결하는 쉼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쉼표는 끊기가 아니라 잇기입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한테서 쉼표 같은 연결감을 느낍니다.
원정대는 지난달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론데보스 경찰서를 예고 없이 방문했습니다. 낯선 이역에서 시도한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좀체 시도하지 않는 취재 방식입니다. 더구나 이 경찰서는 2015년 등록금 투쟁 ‘피스머스트폴’의 선봉 구실을 하는 공립 케이프타운대에서 대학생들을 향해 고무탄을 쏘고 24명을 체포한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경찰서 최고 책임자인 바버라 브리트 서장은 원정대를 따뜻하게 맞아줬습니다. 50대 여성인 브리트 서장은 “일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다른 학생들의 등교를 막는 등 폭력적 시위를 벌여 체포할 수밖에 없었다”며 “학생들이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학생들의 입장도 고려하는 조화로운 투쟁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백인인 그에게 “평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에게 조화란 평등이 달성된 결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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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라 브리트 서장이 4월11일 오전 남아공 케이프타운 론데보스 경찰서에서 한겨레평화원정대와 케이프타운대학의 등록금 인하 투쟁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이프타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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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헌법이 인정한 공용어가 11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종족과 언어, 문화가 있습니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케이프타운 인근 시몬디움에서 만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난디파 응골로티(26)는 흑인과 유색인종에겐 먼 나라 얘기라고 했습니다.
난디파는 “(백인은 몰라도) 흑인이나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선 많은 성소수자들이 죽임과 성폭행을 당한다”며 “법만으로는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케이프타운 인근 가난한 유색인종 주거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김경래 목사는 “이 나라에선 동성애 문제도 극과 극이다. 백인들에겐 퀴어문화가 발달해 있지만 흑인들에겐 (폭력과 위협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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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평화원정대가 4월12일 오후 남아공 시몬디움에서 코사족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난디파 응골로티와 인터뷰하고 있다. 시몬디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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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가 남아공에서 잠비아로 갈 때 38시간을 탔던 버스 이름은 공교롭게도 ‘샬롬’(평화) 버스였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한 남성이 일어나 설교를 시작하더군요. 알고 보니 그는 잠비아의 전도사였습니다. 그가 예수와 가족의 가치를 강조할 때마다 버스 뒤쪽에 탄 잠비아 사람들은 일제히 “아멘”을 외쳤습니다. 원정대는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연속되는 셔터 소리에 사람들은 야유를 시작했습니다. 원정대는 취재를 중단했습니다. 취재의 자유만큼이나 종교 활동의 자유도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정대는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졸부’가 됐습니다. 500억달러, 200억달러, 100억달러, 5억달러, 1천만달러짜리 한장씩, 도합 805억1천만달러어치 화폐를 갖게 됐습니다. 미국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80조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단돈 5미국달러로 바꾼 짐바브웨달러였습니다. 짐바브웨는 2000년대에 계측이 불가능할 만큼 물가가 뛰었습니다. 빵 한 조각 사려면 리어카에 종이화폐를 가득 싣고 가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치와 경제의 실패로 고통받는 짐바브웨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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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가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미국돈 5달러를 가지고 환전한 짐바브웨돈 805억1천만달러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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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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