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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0 11:39 수정 : 2018.05.10 11:48

[창간30주년 특별기획]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탄자니아 성인 84% 모바일머니로 거래
전통시장·노점상·택시 모두 ‘오케이’
2009년 도입 뒤 거래액 GDP 절반 차지
은행 접근 어려운 현실이 외려 큰 도움
현금 사용 줄다 보니 그만큼 저축 늘어
케냐선 전체 가구 2%가 극빈층서 탈출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이 아닌 ‘핀테크 천국’이다?

탄자니아에선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은 물론이고 시골 마을까지 세 집 건너 한 곳에 붙은 간판 이름이 ‘와칼라’다. 구멍가게보다 훨씬 많다. 와칼라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어보니 현지인은 ‘와칼라’가 중개인을 뜻하는 스와힐리어로, 일종의 환전소를 뜻한다는 대답을 했다. 모바일머니를 충전하고 인출할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인터넷 속도도 한국보다 훨씬 느리고, 온라인 쇼핑도 발달하지 않은 곳에서 모바일머니라니?’ 호기심이 들어 와칼라 이용에 도전해봤다. 먼저 전화번호를 이용해 모바일머니 계정(지갑)을 만들어야 한다. 여권(신분증)과 휴대전화를 챙겨 탄자니아 아루샤 지역에 있는 통신사 ‘보다콤’(Vodacom)의 한 지점을 찾았다. 지갑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그리고 길에 있는 와칼라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2만 실링(우리 돈 약 1만원)을 건네고 전화번호를 적어내니 1분 만에 띵똥. 엠페사(M-Pesa)가 충전됐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엠은 모바일을, 페사는 돈을 뜻한다. ‘아이티(IT)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 온 평화원정대가 드디어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으로 모바일머니를 충전했다.

1일 오후 탄자니아 아루샤 킬롬베로 시장에서 유덕관 기자가 엠페사(M-pesa, 모바일머니)를 충전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전기보급률이 매우 낮고 은행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아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머니로 바로 넘어갔다. 아루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모바일머니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자, 직원이 영수증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가져왔다. 이 번호로 송금하라는 것이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송금 코드 숫자 5자리를 누르고 # 등을 누르자 휴대전화 화면에 결제 관련 질문이 떴다. ‘돈 보내기’를 선택하고 상대방 전화번호와 금액 입력 뒤 비밀번호 4자리를 누르자 엠페사가 사용됐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직원도 돈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으면서 모든 거래가 끝났다. 결제에 든 시간은 1분 안팎. 휴대전화 종류가 무엇이든 6번의 클릭만으로 결제를 완료할 수 있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릴 때도 엠페사를 이용했다. 엠페사 이용객을 위해 택시 안에는 송금 코드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전통시장인 킬롬베로 마켓에서도 엠페사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과일상에서 바나나와 토마토, 열대 과일을 집어 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상인이 먼저 엠페사로 결제할지 물어왔다. 과일상을 운영하는 타리실라 모샤(50)는 “수수료 때문에 이문은 줄지만, 복잡하고 난잡한 시장에서 현금을 들고 있는 것보다 엠페사가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1일 오후 탄자니아 아루샤 킬롬베로 시장에서 유덕관 기자가 엠페사(M-pesa, 모바일머니)를 충전하고 있다. 아루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심지어 길거리의 노점상이나 행상에서도 엠페사를 쓸 수 있다. 지난 2일엔 케냐 나이로비행 버스를 탄 뒤 창가로 다가와 기념품 목걸이를 1000∼2000원에 파는 노점상에게 엠페사 결제가 가능한지 물었다. 출발 전 남은 돈을 모두 환전한 탓에 현지 화폐가 없기도 했다. “오케이.” 노점상 남성은 흔쾌히 엠페사 거래를 수락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몇 차례 전화번호 오류를 일으키는 바람에 엠페사 결제를 완료하지는 못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모바일은 은행 그 자체다. 탄자니아의 경우 인구 가운데 11%만 은행 지점 반경 1km 안에 거주하고 있어 은행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이 없는 개인은 신용 문제로 은행계좌를 개설하기도 쉽지 않다. 2009년 탄자니아 보다콤이 도입한 엠페사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탄자니아인들에게 획기적인 금융 상품이 된 셈이다.

엠페사는 지난 2007년 케냐의 통신사업자 사파리콤이 만든 결제시스템이다. 모바일 이용자 간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단순한 방식을 채택했다.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이 쓰이기 시작한 뒤 한참이 지난 2017년께부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활성화된 것에 견줘, 아프리카에서는 이보다 10년 전부터 모바일머니가 활발히 이용되어온 셈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탄자니아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성인 1000명당 가장 많은 모바일 계좌를 보유한 국가(2015년 기준)로 꼽힌다. 성인 모바일머니 거래비율이 84% 수준에 이른다. 모바일머니 송금액은 2011년 2260억원(4520억 탄자니아실링)에서 2016년 23조5000억원(47조 탄자니아실링)으로 100배 급증했다. 탄자니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이다.

1일 오후 탄자니아 아루샤 킬롬베로 시장에서 유덕관 기자가 엠페사(M-pesa, 모바일머니)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있다. 아루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루샤 마젱고 지역에 사는 아이린 수마리(25)는 엠페사를 애용하고 있는 회사원이다. 수마리는 용돈의 절반을 엠페사로 쓰고 있다. 미용실에 가거나 공과금을 낼 때도 모두 엠페사로 한다. 편리함 때문이다. 수마리의 지갑에는 현금이 거의 없었다. 수마리는 “가족이 쓸 용돈을 보낼 때가 가장 편하다”며 “부모님이 돈을 찾기 위해 멀리 있는 은행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킬롬베로 마켓의 과일 상인 모샤(50)는 저축하기가 쉬운 점을 엠페사의 장점으로 꼽았다. 모샤는 “엠페사로 돈을 받으면 당장 내 손에 현금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돈을 덜 쓰게 된다”며 “일정 정도 돈이 모인 것이 확인되면 와칼라로 가서 돈을 인출해 보관한다”고 했다. 엠페사가 일찍이 도입된 케냐에선 모바일머니 서비스를 통해 전체 가구의 2%가 극빈층에서 빠져나왔다고 사파리콤이 밝힌 바 있다.

탄자니아 정부에서도 모바일머니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모바일머니를 통해 현금 흐름과 세금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탄자니아 국영통신사 TTCL의 모바일머니 총괄 매니저 모세스(46)는 “모든 영역에서 모바일머니가 활성화됨으로써 탄자니아 국가 경제의 투명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이들이 모바일머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아루샤·나이로비/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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