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마사이족 거주지역 나로크
‘할례’ 피해 온 에셀렌케 여학생들
구조단체 타사루센터가 보듬어
전통 이름으로 4∼12살 인권유린
케냐 정부 28년 전 금지했지만
마사이 여성 89% 강제할례 당해
길가의 흑인 중에 ‘마사이족’이 많다고 들었지만, 귀를 뚫어 큰 장신구를 하거나 치아를 뽑는 등 잘 알려진 마사이족 성인식의 흔적을 가진 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들도 부족의 관습에서 벗어나 점차 현대화되고 있는 것일까. 케냐 나이로비에서 120㎞ 정도 떨어진 마사이족 거주 지역 나로크의 지난 7일 풍경이다.
움푹 팬 구덩이를 끝없이 이어놓은 듯한 길을 헤치고 도착한 에셀렌케이 여학교. 잔디가 곱게 깔린 정원, 넓은 운동장,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석조 계단 등은 마사이 여학생들을 위한 이 초등학교가 별천지처럼 보이게 했다. 때마침 체육 시간인 듯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나로크에 있는 에셀렌케 여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서로 손을 잡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학교 학생 대부분은 여성할례와 조혼 등을 피해 집에서 도망쳐왔다. 나로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러나 이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80여명 대부분은 성년의식인 ‘여성할례’를 피해 도망쳐 왔다. 여성할례는 오늘날까지도 전통의 이름으로 여성인권을 유린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교는 마사이의 전통이 희석된 시내와는 또 다른 마사이의 두 얼굴을 상징한다.
에셀렌케이 여학교는 나로크 지역에서 여성할례 구조활동을 하는 타사루센터가 운영하고 있다. 타사루센터는 여성할례나 조혼을 피해 도망친 마사이 아이들을 매달 10여명 정도 받고 있다. 여성할례가 4~12살 사이에 주로 이뤄지고 있어 이 센터를 찾는 이들도 전부 미성년자다. 3개월 정도 센터에서 돌봄을 받다가 안정되면 학교에 입학해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과 어울려 살게 된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나로크에 있는 에셀렌케 여학교의 학생들. 나로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로이타 지역에서 살던 블레싱 나이니(14)는 10살이던 2014년 12월 부모의 강제 할례 계획을 우연히 듣고 집에서 도망쳤다. 나이니는 “할례에 대해 잘 몰랐지만 피가 많이 나고 많이 아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나이니의 두 언니는 모두 할례를 겪었다. 특히 18살인 둘째 언니가 많은 조언을 해줬다. “언니는 무조건 도망치라고 했다. 언니는 할례 때문에 죽을 뻔했었다”며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것이 슬펐지만 도망쳤다”고 말했다.
이웃에게 물어물어 찾은 곳은 나로크에 있는 한 어린이센터였다. 현지인 목사가 운영하는 이 센터는 부모 학대 등을 피해 온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주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타사루센터에 연결해준다. 타사루센터에 왔지만 나이니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는 나이니가 여기 있는 것을 알면서도 찾지 않았다.
타사루센터는 부모와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부모를 찾아가 할례 등을 멈추도록 설득한다. 부모가 법적 효력이 있는 서약을 해야 아이를 돌려보낸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부모와 화해한 아이는 90여명에 불과하다. 센터 직원이 부모를 찾아가면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여성할례 비율이 높은 건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부족이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기에서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제거해 외도를 막으려는 남성 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조혼 풍습도 할례만큼 문제가 크다. ‘딸은 팔아도 된다’는 의식은 여성을 경제적 도구나 종족 번식의 도구로만 여기는 여성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케냐 정부는 1990년부터 할례를 금지하고 있다. 18살 미만의 강제 조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부 부족 사회는 귀를 닫고 있다. 케냐 가족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마사이 여성 중 89%가 할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학생 대부분이 부모의 강압으로 할례를 당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9조 ‘부모 등의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전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조혼을 한 뒤 배우자로부터 할례를 당하기도 한다. 제34조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무시되고 있다.
여성할례는 아프리카 일부 종족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보건기구 조사를 보면, 아프리카는 물론 중동 등 28개국에서 행해지고 있고, 지난해까지 1억3천만여명이 할례를 받았다. 지금도 해마다 200만여명, 하루 6천여명이 할례를 받으며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나로크/유덕관 기자 ydk@hani.co.kr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나로크에 있는 에셀렌케 여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평화원정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로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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