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05:03
수정 : 2018.05.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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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우간다 키리안동고에 있는 남수단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물통과 곡식을 이고 이동을 하고 있다. 키리안동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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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④ 남수단 내전은?
5년여 끌며 313만명 ‘피난 행렬’
이행계획 없이 정전협정만 거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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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우간다 키리안동고에 있는 남수단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물통과 곡식을 이고 이동을 하고 있다. 키리안동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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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남수단에서 내전이 일어난 뒤 지난해 10월까지 숨진 사람은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서 우간다를 비롯해 이웃 나라 6곳으로 피신한 난민만 모두 250만명에 달한다. 60만여명이 추가로 피난 행렬에 나서 올해 말 전체 남수단 난민은 31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유엔난민기구는 내다보고 있다. 우간다로 간 난민이 138만여명으로 가장 많고, 북수단이 100만7000여명으로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120만명 이상의 국민이 기근에 시달린다는 통계도 있다.
남수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수단은 1899년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식민지가 됐다가 1956년 수단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아랍 쪽에서 온 북쪽 무슬림과 남쪽의 기독교 흑인 세력 간의 반목과 대립이 끊이지 않았고, 21세기가 되기까지 두차례의 내전이 이어졌다. 2007년엔 다르푸르 대학살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으며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남수단 내전의 두 주인공인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은 기독교 흑인 세력을 대표하는 군인이었다. 2011년 남수단이 수단에서 독립하기까지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이끈 이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권력투쟁 탓에 남수단은 독립 이후 2년여 만에 내전의 질곡에 빠졌다. 거듭된 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이행 계획을 세우고 지지자들을 관리하지 못해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이 크다는 비난이 나온다.
남수단 내전은 그동안 1만9000여명에 이르는 자국의 소년병에게 총을 쥐여주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요구한 것으로도 악명 높다. 올해 초엔 소년병 311명이 군벌에서 풀려나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군과 반군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현지에 나간 유엔평화유지군의 활동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죽음과 피난의 행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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