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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2 05:00 수정 : 2018.06.02 10:51

지난 23일 오후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의 커피 농장.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은 대부분 소농들이 운영한다. 이르가체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⑥에티오피아·르완다 ‘공정 커피’의 꿈

최고급 이르가체페 원두 값
스타벅스 커피 값의 38분의 1
현지 생산·유통업체 ‘로베라’
“글로벌 기업, 저가경쟁 내몰아
40여년간 커피콩 값 그대로”

지난 23일 오후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의 커피 농장.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은 대부분 소농들이 운영한다. 이르가체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머리가 차창에 몇번이나 부딪쳤을까. 보이지 않는 우악한 손이 바깥에서 차체를 전후좌우로 세차게 흔들어대는 것 같다. 콩 볶듯이 돌을 튀기며 굴러가던 차바퀴가 불쑥 나타나는 진창으로 속절없이 빠진다. 바퀴 아래로 폭우에 무너져내린 흙 절벽이 까마득하다. 지난 23일, ‘커피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에 ‘커피 한잔의 평화’ 따위를 떠올릴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매일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입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르가체페(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 남부 깊은 산악지대에 숨어 있었다. 적도에서부터 북쪽으로 1000㎞ 지점에 있는 이르가체페는 낮 기온이 평균 30도를 웃돈다. 그러나 구름에 닿을 듯 고도가 높아 아침과 저녁은 서늘하다. 숲이 우거져 그늘이 깊고 우기에는 하루 세번씩 비가 오는 등 강수량도 풍부하다. 최고 품질의 커피 원두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천혜의 조건에서 이곳 사람들은 소외돼 있다.

이르가체페 커피 협동조합에서 만난 피터 로즈(76)는 이곳에서 30여년 커피 농사를 지어온 조합원이다. 긴 세월 커피나무를 50그루에서 5000그루로 늘려, 이젠 제법 큰 농장의 소유주가 됐다. 그러나 이르가체페 커피에 대한 그의 남다른 자부심은 커피콩 가격 앞에서 멈춰 선다. “유명세에 비하면 값이 너무 형편없거든요. 우리는 부지런히 농사만 짓지, 원두값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어요.”

5000그루 농장 소유주 로즈
“유명세에 비해 값 형편없다
농사만 짓고 가격 개입 못해”
농민 체하이 “커피 좋아하는데
커피콩 껍질만 끓여 먹는 신세”

지난 23일 오전(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지엠에프 협동조합에서 일꾼들이 커피콩을 등급별로 선별하고 있다. 이르가체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르가체페 협동조합은 한 해 커피콩 8t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최상급인 3t은 에티오피아 상품거래소(ETX)가 1㎏당 428비르(1만6700원)에 사서 스타벅스·커피빈·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에 되판다. 나머지 5t은 1㎏당 55비르(2160원) 받기도 힘든 저품질 커피콩으로 분류돼, 현지인들에게 돌아간다.

공정무역 단체인 옥스팜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수치는 적나라하다. 커피콩 1㎏에서는 평균 200잔의 커피가 나온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한잔 평균이 3달러(3200원)임을 고려하면, 커피콩 1㎏으로 64만원의 수익이 나는 셈이다. 로즈가 생산한 커피콩 가격의 38배다. 커피 한잔에서 커피콩 재배 농민들이 가져가는 이윤은 16.0원(0.5%)이다. 중간상이 내는 세금 등으로 41.6원(1.3%)이 붙는다. 비행기·배 등의 운송료는 140.8원(4.4%). 이윤의 대부분인 3001.6원(93%)은 가공·유통·판매 기업들 몫이다.

농장 주인 로즈의 한 해 수입은 75만비르(3000만원)다. 이곳 협동조합에 고용된 노동자 120여명의 처지는 훨씬 열악하다. 자기 소유의 커피나무가 한그루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그들은 수확기에만 잠깐 일할 수 있는 일용직이다. 체하이(45)는 이곳에서 하루 8시간씩 커피콩을 두 등급으로 가려내고 일당 25비르(1000원)를 받는다. “나도 커피를 무척 좋아해요.” 그는 커피 대용으로 카페인 덩어리인 커피콩 껍질을 끓여 먹는다.

평화원정대가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지엠에프 협동조합에서 만난 피터 로즈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로즈는 암하라어로 ‘커피 일’을 뜻하는 ‘예분나 스라’(??? ??)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이르가체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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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폭리’ 맞선 외침…‘착한 소비자’ 어디 없나요?

농민들이 회사·협동조합 꾸려
원두 생산부터 가공·판매까지 모색

르완다 ‘쿠카무’ 조합원 쥘리에트
공정무역 배우고 커피농장으로
“착한 소비 하는 판매처 찾는 중”

한국 공정무역업체 ‘아름다운커피’
60% 높은 값에 구매…판로 지원도

지난 25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로베라 커피’ 대표 아브라함 로베라(69)는 커피콩에 파묻혀 사는 체하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커피콩의 절대 물량은 미국 선물시장에서 거래됩니다. 그 시장을 주무르는 건 스타벅스를 비롯한 글로벌 커피 기업들이고요. 그들은 가격 변동을 원치 않습니다. 수천수만개 커피 농장에 저가경쟁을 시키죠. 지난 40여년 동안 커피콩값이 거의 그대로인 이유입니다. 물론 그사이 그들이 파는 커피 음료는 값이 엄청나게 뛰었죠.”

로베라는 커피 기업들의 ‘폭리’ 구조를 벗어나려면 농민들이 모여 커피콩 생산부 가공, 판매까지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커피 기업들은 커피콩을 싸게 사서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어요. 커피 농민들이 모여 회사를 차리거나 협동조합을 꾸려 공동으로 대응해야 해요. 핵심은 커피콩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는 것이죠.”

‘로베라 커피’의 아브라함 테레사 대표가 지난 26일 오전(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사무실에서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디스아바바/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로베라 커피는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9개 이상의 브랜드 커피콩을 모아 수출대행을 하고 있다. 직접 커피콩도 생산한다. 300헥타르(90만7500평)의 커피 농장에서 75만그루의 커피나무를 재배해 1년에 3000t의 커피콩을 수확한다. 이 커피콩을 직접 로스팅해 커피 기업에 파는가 하면, 자사 카페에서 음료로 팔기도 한다. 소량이나마 자체 브랜드로 미국과 아시아에 수출도 하고, 유럽연합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수출대행과 생산, 유통까지 모두 더해 연 매출은 2000만비르(7억8430만원)다. “아직 몸집이 작아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공정커피를 실천하는 커피 기업이 되고 싶어요.”

그나마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업은 이웃 나라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르완다의 농민들은 커피 로스팅 기업 등에서 대출을 받아 커피 농사를 짓는다. 커피콩 1㎏당 평균 2500프랑(3760원)도 받기 힘들다. 매년 20% 수준의 이자도 내야 한다. 이자를 못 내면 수확한 커피콩을 빼앗긴다.

지난 17일 르완다 서쪽 지역 무사사에서 만난 우위마나 쥘리에트(24)는 곁에 있는 엄마의 상처 가득한 손을 가리켰다.

“엄마는 1년에 30프랑(40만원) 벌고 있어요. 엄마가 만들어낸 이윤은 거의 다 커피 기업들이 가져갑니다. 엄마는 생계가 어려워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서빙 일을 하고, 주말엔 가정부로도 일하죠.”

평화원정대가 르완다 무사사 지역 쿠카무 협동조합에서 만난 우위마나 쥘리에트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쥘리에트는 키냐르완다어로 좋은 건강을 뜻하는 ‘우부지마 브위자’(UBUZIMA BWIZA)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무사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쥘리에트는 커피협동조합 ‘쿠카무’의 조합원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르완다의 기울어진 커피 시장에서 ‘공정무역’을 해보겠다며 뛰어들었다. 한때 도시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살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공정무역에 대해 배우면서 커피 농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쿠카무에서 커피 농민들의 하루 임금은 1달러 안팎이다. 생산되는 커피콩은 한 해 30t으로, 절반 이상을 르완다무역센터(RTC)에 1㎏당 2000프랑(2700원)에 팔고 있다.

쥘리에트는 조합원들에게 정당하지 못한 가격에 커피콩이 팔리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 등 인근 국가에서 생산되는 커피콩 가격도 조사해 비교해봤다. 지금은 쿠카무의 커피콩을 정당한 가격에 사 줄 판매처를 열심히 찾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 공정무역 업체를 찾아보고 직접 이메일을 보내 거래 의사를 타진한다. “쿠카무는 현실적으로 로스팅까지 해서 팔 형편이 못 돼요. 점차 조합원을 늘려 커피콩 생산량 자체를 늘리고, ‘착한 소비’를 하는 좋은 판매처를 찾아 다양한 경로로 거래해야 합니다.”

한국의 공정무역 업체 ‘아름다운커피’는 지난해부터 쿠카무의 커피콩을 1㎏당 5000프랑(6160원)에 사고 있다. 평균보다 60% 남짓 높은 가격이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카페를 차리고 쿠카무에서 산 10t의 커피콩을 로스팅해 판매할 계획이다. 소량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팔고 있기도 하다. 김다영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주재원은 “커피콩을 높은 가격에 사주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스스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르가체페 협동조합의 로즈는 한국의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4달러(4300원)에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커피 한잔은 2달러 정도가 적당해요. 초과이윤을 커피 농민을 위해 쓰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과한 이윤을 가져가려면 그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 로베라가 아디스아바바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는 똑같은 아메리카노가 15비르(580원)다. 로베라는 “커피 가격만 공정하다고 기울어진 커피 시장이 바로 서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공정커피를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 해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에티오피아와 르완다에는 ‘커피 한잔의 평화’를 향해 험한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길처럼 이어져 있다.

이르가체페 아디스아바바 무사사/유덕관 전종휘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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