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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6 05:00 수정 : 2018.06.06 09:41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⑦ 이탈리아 시골마을 ‘난민 공존’ 실험

실업률 11.7%…성장률 1% 못 미쳐…
“안 그래도 정부 재정 나쁜데…”
시민 다수는 난민에 거부감

마시모 발렌티니는 옛날을 그리워했다. 로마가 있어서 먹고살 수 있었던 그는 이제 “로마가 부끄럽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로마의 한 카페에서 발렌티니를 만났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걱정은 25살 루나와 17살 스텔라 두 딸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루나에게 이탈리아를 떠나라고 말한다고 했다. 루나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1965년생인 발렌티니는 이런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하게 될 줄은 젊어서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작은딸의 나이인 17살부터 일을 시작했고, 현재 작은 백화점의 마케팅 책임자로 있다. 발렌티니는 자신의 수입이 로마 중상류층 정도는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식들 앞에 놓인 이탈리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2016년 기준 11.7%에 이른다. 유럽연합 가입국 가운데 그리스(23.5%)와 스페인(19.6%) 다음으로 높다. 청년실업률은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성장률은 2016년 0.9%, 2015년 0.8% 등으로, 1%를 넘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보다 낮다.

지난 29일 오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백화점 간부인 마시모 발레티니가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외 출장이 잦은 발렌티니는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중앙역인 테르미르역까지 올 때 군데군데 파여 있는 도로를 보며 경제 사정을 파악한다. “자카르타에도 파인 도로는 없다. 누가 로마에 관해 물어보면 이제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올해 로마에서는 사이클 대회가 도중에 중단된 적이 있다고 한다. 도로에 구멍이 너무 많자, 안전을 걱정한 선수들이 완주를 포기한 것이다.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반 유럽연합을 내세우는 극우정당 ‘동맹’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일 출범했다. 유럽연합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며 재정 지출 확대, 불법 난민 강경 단속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포퓰리즘 정권이 서유럽에서 출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렌티니는 지난 총선에서 과거를 선택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정당 ‘포르자, 이탈리아당’(전진하자 이탈리아)이다. 그는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남자였고, 그가 있을 때 경제가 성장했다”고 했다. 이탈리아가 부끄러운 것은 발렌티나뿐만이 아니다. 지난 1일 낮 아르바이트하던 중간에 만난 26살의 마르타 차라멜레티는 이탈리아에 대한 걱정보다 불만이 앞선다. 차라멜레티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끄러움은 50대 중상류층 발렌티니의 그것과는 달랐다.

“베를루스코니 등을 보는 게 너무나 부끄럽다.” 그는 과거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보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만 바빴다고 했다. 이탈리아 경제는 후퇴했고, 기업들은 더는 젊은이들을 고용하지 않았다. 차라멜레티의 경우 친구 10명 가운데 1명 정도만 취업하고, 나머지는 식당이나 상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현실에 실망한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택한 것은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오성운동’이었다. 이들에겐 포퓰리즘 정당이건 극우정당이건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차라멜레티는 오성운동으로도 이탈리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젊은이들의 실망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탈리아 사람 다수는 난민을 싫어한다. 발렌티나는 “이전에 지진이 난 것도 복구를 못 하고 있는데, 안 그래도 없는 정부 재정이 난민 때문에 더 힘들다”고 말했다.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차라멜레티는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이탈리아에는 2013년 이래 약 70만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도착했다. 이방인은 정책 실패에 대한 불만을 투사하기에 맞춤한 대상인지 모른다.

로마/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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