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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8 14:56 수정 : 2018.06.20 23:12

6일 오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분리장벽이 도시 전체를 뱀처럼 감싸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로 인해 학교와 일, 병원 등을 원하는 시간에 가기가 힘들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⑧ 거대한 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칭칭 감은 거대 장벽
이스라엘과 분쟁 예방은 핑계
유대인 정착촌 건설 등 탐욕 ‘똬리’

정착민 몰려와 부숴버린 집 보며
PLO 활동가 하산 “일리걸” 넋두리
장벽공사 맨몸 막아 20번 감옥행

6일 오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분리장벽이 도시 전체를 뱀처럼 감싸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로 인해 학교와 일, 병원 등을 원하는 시간에 가기가 힘들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재헌(41)씨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수시로 끊겼다. 그래서인지 더욱 다급하게 들렸다. 열악한 통신 사정 탓에 통화시간은 계속해서 길어졌다. 총상 환자들을 앞에 두고 의약품이 턱없이 모자라는 의사의 답답함만큼은 정확히 전달된 탓인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잡음이 지지직거렸다. 이씨는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의 정형외과 전문의다. 그는 지난 3일부터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활동하고 있다.(인터뷰 기사 참조)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감옥이다. 이스라엘 서남쪽, 지중해에 붙어 있는 이 지역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해 땅과 바다가 모두 봉쇄돼 있다. 지난 3월부터 주민들은 악명 높은 분리장벽을 향해 ‘위대한 귀환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사이 100여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졌다.

이씨와 전화 통화를 할 때 평화원정대는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라말라에 머물고 있었다. 100㎞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이지만 그와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전화 말고 없었다. 일반인이 가자지구를 출입하려면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절차가 그렇다는 얘기다. 처리 시한도 없고,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지난 6일, 평화원정대는 또 하나의 팔레스타인 지역인 이스라엘 동쪽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로 향했다. 가자지구보다는 ‘평화롭다’고 알려진 그곳.

“일리걸, 일리걸.”(illegal·불법이다 불법)

하산 브레이저는 “일리걸”을 입에 달고 다녔다. 팔레스타인 마을 코앞까지 들어온 유대인 정착촌이나, 이스라엘이 만든 거대한 분리 장벽이나, 그리고 정착촌 사람들이 몰려와 부숴버린 집을 보면 항상 “일리걸”이 튀어나왔다. 47살의 팔레스타인인인 브레이저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식민과 장벽 저항 위원회’에서 일한다. 국제법 등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싸운 그는 베들레헴 주변에서 자신이 유명인사라고 했다. 그는 베들레헴 남부에 건설되는 분리장벽 공사를 맨몸으로 막았고, 투쟁을 하다 20번 감옥에 드나들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친구이지만, 유대인 정착촌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다.

베들레헴 남동쪽 지발딥 마을에서 차를 멈춘 브레이저가 먼저 가리킨 곳은 마을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구분 짓는 분리장벽을 넘어 팔레스타인 안쪽으로 훨씬 깊게 들어온 유대인 정착촌이다. 지발딥과 정착촌 사이는 분리장벽 대신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6일 오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동남쪽 팔레스타인 인근에 이스라엘 집단농장 키부츠가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키부츠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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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키부츠 우리땅이었는데…” 조여오는 장벽에 분노만

유대인, 아랍인 학교도 못짓게 해
한밤 600명 모여 5시간만에 뚝딱
마을서 만난 꼬마 “유대인 무서워”

실제 목적은 땅 뺏으려는 ‘합병장벽’
텔아비브 비싼 집값 피하려는
젊은 부부 몰려와 부동산 뛰어

“저기가 키부츠다. 원래는 이 마을 사람들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인들이 들어오더니 마을 사람들을 쫓아냈다. 지금 마을에 있는 집들은 키부츠 사람들한테 쫓겨났다가 5년 전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것이다. 베들레헴의 물가를 못 견디고 가난한 사람들이 돌아왔다.”

브레이저 등 활동가들은 황폐해진 마을에 물과 전기를 다시 끌어왔다. 마을 옆에는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광 패널도 여러 개 서 있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소송도 걸어서, 그들이 다시 와서 마을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마을에서 만난 꼬마 압둘라흐만 알와시(9)는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정착촌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며 지켜봐 무서웠던 적이 있다”고 했다. 알와시는 유대인들이 무서워 정착촌 가까이에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 주민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브레이저는 그가 무서워한다고 전했다.

마을 뒤편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덩그러니 있었다. 운동장은 없고 교실만 4개인 단층 건물이었다. 마을과 연결되는 길도 없어 3명의 노동자가 공사 중이었다. 이 허름한 학교에는 사연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동남쪽에 세워진 학교. 이스라엘이 집단농장 키부츠와 가까운 이곳에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했으나, 2017년 9월 마을 주민 600여명이 밤에 모여 5시간 반 만에 학교를 세우고 이름을 ‘챌린지 스쿨’이라고 붙였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브레이저는 “지난해 9월 한밤중에 600명이 모여서 5시간 만에 지은 학교다. 팔레스타인 학교가 지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정착민들을 피해 빨리 학교를 완성해야 했다”고 말했다. 밤새 학교가 지어지자 화가 난 유대인 정착민들이 학교 뒤 언덕에서 총을 쏜 적도 있다고 했다. 브레이저는 다시 “일리걸”을 반복했다. 이전엔 5㎞ 떨어진 학교에 다녀야 했던 아이들은 더는 멀리 걷지 않아도 된다. 이 학교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60명이 다닌다.

높이 10m를 훌쩍 넘기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보였다. 한반도를 가르는 휴전선은 철조망 너머를 볼 수 있지만, 분리장벽은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볼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장벽을 넘을 수 없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리장벽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보지 않아도 된다.

서안지구 장벽의 길이는 714㎞에 달한다. 1949년 유엔이 정한 서안지구의 국경선은 373㎞였지만,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국경선이 복잡해졌다. 현재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에이(A) 구역,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정착촌이 섞여 있는 비(B) 구역,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시(C)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분리장벽은 이 구역들을 따라 건설되었고, 이스라엘은 군데군데 체크포인트(검문소)를 설치했다.

6일 오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분리장벽에서 독일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로 인해 학교와 일, 병원 등을 원하는 시간에 가기가 힘들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장벽은 서안지구를 칭칭 감고 옥죄는 뱀이다.” ‘식민과장벽 저항위원회’ 폭력에 대한 기록과 출판 디렉터인 카심 아와드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장벽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뱀처럼 서안지구 땅을 뺏기 위해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저항위원회’는 분리장벽을 ‘합병장벽’(annexation wall’이라고 표기한다.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이스라엘에 합병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정착촌뿐만 아니라 군 기지와 산업지역, 서비스지역 등을 더 지정해 건설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 내줬는데 돌아온 것은 하마스가 로켓포를 쏘고 땅굴을 파는 등의 위협이었다. 서안지구를 내주면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고 이스라엘의 보수우파는 우려하고 있다. 보수우파는 더이상 팔레스타인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은 1997년 31만명에서 현재 60만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실제로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라말라 지역을 오가는 도로 중간중간에 많은 유대인 정착촌들이 건설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리장벽을 경계로 타워크레인이 하늘 높이 서 있었고, 언덕을 깎아 많은 주택을 짓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에 부동산 경기가 좋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서안지구에 산업과 서비스 등 많은 기반시설을 짓고 있고, 텔아비브 등 집값이 비싼 곳에서 밀려난 젊은 유대인 부부 등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위험 속에서도 유대인들이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짓는 것은 ‘부동산’을 노리는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8일 저녁(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칼란디아 체크포인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불도저로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차량 통행이 증가하는 금요일에는 검문소의 차량 통과를 막고 사람만 통과시킨다. 라말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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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검문소 굴욕…팔 노동자 “난 이스라엘 노예”

예루살렘까지 10분 거리지만
검문소 통과하는 데 2시간
새벽 3시 눈떠야 근무시간 맞춰
일당 9만원…브로커에 3만원
팔레스타인 저임노동 착취

살던 집 네차례 파괴당한 열 식구
“신이 허락해 다시 집 지을 수 있길”

말렉 알힛(32)은 주로 예루살렘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4시엔 베들레헴 체크포인트에 가서 줄을 서야 7시 반부터 시작하는 작업에 늦지 않는다. 그는 베들레헴 남쪽 슈리프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베들레헴까지 온다. 그리고 걸어서 체크포인트를 넘어 또다시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향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예루살렘으로 일하러 가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 체크포인트를 지나기 때문에 통과하는 데 2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12일 베들레헴에서 만난 말렉은 “팔레스타인에는 일자리도 없고 임금도 낮아서 예루살렘에 가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3명의 아이가 있다. 그가 받는 일당은 하루 300세켈(우리돈 약 9만원) 정도지만, 일을 소개해준 브로커에게 100세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저임금 노동자의 공급처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인 베랄 악코트(42)도 체크포인트를 지나며 “장벽 안에 사는 나는 노예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체크포인트에 줄을 서서 한사람씩 들어가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먼저 옷과 몸을 수색한다. 두번째는 금속탐지기로 몸을 훑고, 세번째는 공항 검색대에서 볼 수 있는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하게 한다. 그러고는 신분증을 제출하고 지문을 확인해야 끝난다.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는 데 2시간씩 걸리는 이유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벌칙을 준다”며 “그렇게 지각을 하면 시간당 20세켈씩 임금이 깎인다”고 베랄은 말했다. 2002년 분리장벽이 세워지기 전 예루살렘까지는 10분 거리였다. 라마단 기간이라 낮에 밥을 먹지 못한 베랄은 “배가 고프다”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6일 오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유스라 후산 사라핫의 집이 파괴되어 있다. 집 잔해 뒤로는 기다란 분리장벽이 보이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이 집의 위치가 정착민들을 내려다본다는 이유로 지난 2001년, 2004년, 2008년, 2014년 네차례 집을 부쉈다. 유스라와 가족 8명은 한 방에서 지내고 있다. 베들레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브레이저가 베들레헴 서쪽에 있는 어떤 집으로 안내했다. 정확하게는 집이 아니라 부서진 집 잔해였다. 분리장벽 건너편에 있던 이 집은 유대인 정착민들에 의해 네번이나 부서졌다. 네번째 부서진 뒤 부모와 8명의 아이는 돈이 없어 다시 집을 짓지 못하고 한 방에 모여 산다. 어머니 유스라 핫센 살라핫은 “유대인들에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나는 신을 믿는다. 신이 허락하셔서 다시 한번 집을 지을 수 있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유대인에겐 동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있지만, 서안지구에는 온 마을 곳곳에 ‘통곡의 벽’이 있었다. 가자지구보다 상대적으로 평화롭다는 서안지구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가자지구에서는 계속 사상자가 발생했다. 통곡도 계속되고 있다.

베들레헴, 라말라/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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