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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30 05:01 수정 : 2018.06.30 15:06

남편이 이집트인인 울라(35)가 지난 18일(현지시각) 요르단 자르카에서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면서 둘째 리인(7)을 보고 있다. 울라는 국적이 요르단이지만 딸 셋은 아버지 국적 때문에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채 살고 있다. ♣H56s자르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⑪ 요르단인이 될 수 없는 아이들

69만명 넘는 ‘난민 수용’ 포장 뒤엔
아버지 국적따라 각종 차별받는
‘요르단인 어머니의 자녀들’ 35만명

“후회합니다, 이라크인과 결혼한 걸…”
만시의 두 아들, 요르단 아내 맞았지만
생계조차 힘든 ‘외국인 노동자’ 신세

“가족들이 먼저 ‘이민 가자’ 얘기도”
이집트 국적 가진 와킬의 딸들은
학교 생활기록부부터 달라 상처

남편이 이집트인인 울라(35)가 지난 18일(현지시각) 요르단 자르카에서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면서 둘째 리인(7)을 보고 있다. 울라는 국적이 요르단이지만 딸 셋은 아버지 국적 때문에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채 살고 있다. ♣H56s자르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르단은 개방적인 나라다. 수치로 나타나는 면면은 놀랍다. 유엔난민기구(UNHCR) 보고서를 보면, 요르단은 지난해 말 69만1000여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 예멘 난민 문제로 온 나라가 논란에 휩싸인 한국은 2245명이다.) 미등록 난민까지 포함하면 1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등록 난민 수는 세계에서 10번째, 인구 1000명당 난민 수(87명)는 레바논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표 참조)

외국인 비율도 압도적이다. 2015년 말 요르단 정부가 실시한 인구 총조사 결과를 보면, 총인구 950만명 가운데 외국인이 290만명(30.6%)이나 된다.

그러나 이런 개방성의 이면에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요르단의 다른 얼굴이 있다.

“이라크인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해요.”

지난 17일 요르단 2대 도시 이르비드에서 만난 나빌라 만시(60)는 아들과 손주 걱정에 눈물을 비쳤다. 요르단인인 그는 지난 40년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오가며 미용실을 운영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왔다. 어느덧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지만 두 아들 때문에 여전히 쉬지 못한다. 큰아들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월급은 300디나르(47만원). 월세 170디나르를 내고 나면 세 가족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다. 둘째 아들은 5년간 일을 못 구하다가 한달 전부터 240디나르(37만6000원)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이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건 국적 탓이다. 아버지가 이라크인이라는 이유로 이들도 이라크 국적으로 산다. 요르단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요르단에서 살면서 대학까지 나와 요르단인 여성과 결혼하고 가족을 꾸렸지만,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다.

17일(현지시각) 요르단 이르비드에서 미용실을 하는 나빌라 만시가 한겨레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르비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르단은 외국인 아버지와 요르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요르단 국적을 주지 않는다. 2014년 요르단 정부의 통계를 보면, 35만5000여명이 이런 처지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요르단인도 외국인도 아닌 ‘중간인’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국적엔 ‘중간’이 없다. 아버지 국적을 거부하면 무국적자로 살아야 한다. 요르단에는 이들을 부르는 호칭도 딱히 없다. 그저 ‘요르단인 어머니의 자녀들’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할 뿐이다.

지난 18일 자르카에서 만난 라미 와킬(37)은 아버지와 같은 이집트인 국적자다.

“어머니가 아픈데 아들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의 자괴감을 아세요? 그것도 외국인이라서요.”

요르단인인 어머니는 지난 2010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국립병원으로 호송됐다. 병원은 아들의 수혈을 거부했다. 요르단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친척들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는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요르단인 여성과 결혼해 낳은 큰딸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딸의 생활기록부만 파란색이어서 다른 아이들과 한눈에 구별돼요. 아비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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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차별들…“아픈 어머니에게 수혈도 못해요”

‘국적 부여땐 사회적 혼란’ 걱정에
의료·보험·교육·임금 차별은 물론
운전면허증 받기도 하늘의 별따기

‘6대 시민권리’ 모두 보장한다며
2014년 도입한 등록증제도마저
“너희 나라로 가라” 차별 근거로

“엄마의 국적이 나의 권리다”
변화 촉구하며 거리 나선 시민들
정부는 해결책 약속하고도 방관만

8일 요르단 자르카에서 라미 와킬(왼쪽 두번째) 가족이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와킬은 이집트인 아버지와 요르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집트 국적자로 살고, 요르단인 부인 울라(맨 오른쪽)와 결혼해 세 딸을 뒀다. 세 딸 모두 와킬과 같은 이집트 국적이다. 자르카/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르단의 이런 야누스적인 얼굴은 이 나라의 독특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요르단의 근현대사는 난민 유입의 역사다.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요르단 인구는 40만명대였다. 1948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 이스라엘을 세우고 3차례 중동전쟁을 거치는 동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요르단으로 밀려왔다. 요르단 정부는 이들을 자국민으로 흡수·통합했다. 현재 660만명의 국적자 가운데 원주민과 팔레스타인 출신 비율은 4대 6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다 다시 1990년대부터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팔레스타인 등에서 난민들이 유입됐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요르단 정부는 더는 이들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원주민 비율이 더 낮아지면 국가 정체성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요르단 정부가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겁니다.”

와킬은 “정부는 우리에게 요르단 국적을 주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밖에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라고 이미지를 포장하면서 정작 자국 여성의 자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17일(현지시각) 요르단 자르카에서 만난 가다 이사(오른쪽)와 가족들. 이사는 5년 전 이집트 국적의 남편을 잃고 식당에서 일하며 딸 다섯과 산다. 딸들은 모두 요르단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암만/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르단 사회가 이들을 부르는 표현(‘요르단인 어머니의 자녀들’)은 모호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만큼은 뚜렷하다. 이들은 노동·의료·보험·교육·면허 등에서 요르단인과 다른 차별을 받는다. 고용주는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지 않는다. 정부에 신고할 것도 많고 문제가 생기면 뒤처리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하더라도 질 낮은 일자리뿐이다. 임금은 요르단인보다 낮고, 언제든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국공립 학교에 다녀도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해 교육비 전부를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운전면허증 발급이 이유 없이 거부되는 등 면허와 자격증 취득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17일 자르카에서 만난 가다 이사(50) 가족은 이런 차별이 삶에 얼마나 촘촘하게 새겨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아이사는 5년 전 이집트 국적의 남편과 사별하고 식당에서 일하며 딸 다섯과 산다. 첫째 에실(25)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5년째 취업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를 받아준 곳은 한 곳도 없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서류를 제출하라거나 큰 비용이 드는 신체검사를 받아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둘째 살리(22)는 가슴에 생긴 희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17차례나 받았다. 국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요르단 국적자보다 4배 이상 비싼 병원비를 현지 교회의 도움으로 겨우 대고 있다.

가다 이사의 고등학생 넷째 딸 무나가 지난 17일(현지시각) 요르단 자르카의 집에서 ‘요르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녀 등록증’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이집트인, 어머니는 요르단인으로 쓰여 있다. 자르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고등학생인 넷째 무나(16)는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요르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녀 등록증’(등록증)을 받았다. 등록증 제도는 요르단 정부가 2014년에 도입했다. 원칙대로라면 이 등록증을 가진 이는 요르단인이 누리는 6대 시민권리(취업, 교육, 건강과 보험, 소유와 투자, 운전면허 취득, 해외여행의 자유)를 모두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등록증 자체가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다. 무나는 “등록증 때문에 학교에서 이집트인으로 불린다”며 “아이들과 다투기라도 하면 ‘이집트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등록증을 들고 취업에 나섰다가는 고용주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뿐이다. 그나마 발급 규정도 까다로워 2018년 현재 발급받은 이는 대상자의 20%에 그친다.

와킬은 ‘우리 엄마는 요르단 사람이고, 엄마의 국적이 나의 권리다’라는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설립된 이 단체는 국적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요르단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집회를 열어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2017년까지 70회나 집회를 열었다. 단체가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인원은 1만3000여명에 이른다. 그나마 등록증 제도가 도입된 데도 이들의 활동이 영향을 미쳤다.

2017년 3월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기로 약속하면서 크고 작은 캠페인들이 중단됐다. 그러나 정부는 여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지쳐간다. 와킬의 가족들마저 얼마 전부터 “이민 가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와킬은 “정부 행태를 보면서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며 “요르단인이라면 누구든 이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요르단 정부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캠페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에 맞선 인권활동가이자 자신도 극복하지 못한 차별을 물려받게 될 세 딸의 아빠라는 위치 사이에서 그는 깊이 고뇌하고 있었다.

암만 이르비드 자르카/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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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평화

평화원정대가 요르단에서 만난 유명 방송인 출신 인권활동가 아룹 수브흐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아랍어로 써서 보여주고 있다. 수브흐는 정의를 의미하는 ‘알아달라’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암만/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평화원정대가 요르단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 출신 초등학생 루자인(8)이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아랍어로 써서 보여주고 있다. 루자인은 전쟁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마비 하루비’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암만/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평화원정대가 요르단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 출신 마딘 수라이피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아랍어로 써서 보여주고 있다. 수라이피는 안전을 의미하는 ‘알아만’을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암만/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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