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5 18:19
수정 : 2019.12.16 02:35
김성윤 ㅣ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정부에서는 ‘데이터 3법’, 시민사회에서는 ‘개인정보 3법’이라 부른다.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도해서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법안을 일컫는다. 흥미롭다. 같은 법안을 두고 표현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점과 입장에 따라 채택한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법률 개정안 패키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데이터’가 그 핵심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는 빅데이터가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세상이 됐다. 여기서부터 미래의 부가 창출될 것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지문과 홍채 등 생체정보, 우리의 목소리와 대화 내용, 동선과 위치정보, 클릭과 터치로 남겨지는 심리와 취향에 이르기까지. 데이터가 ‘21세기의 석유’라는 표현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이번 법안 통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의 물꼬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 혁신이라는 지상 과제가 떨어진 이상 이를 위한 터를 닦고 방해물은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령을 손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지만 시민사회 진영에선 ‘개인정보 3법’이라 부르고 있다. 이런 언술은 적어도 두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는 데이터가 개‘인’정보로서 인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라는 광물의 권리가 ‘개인’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즉, 개인정보는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고 상품화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겨 있는 셈이다.
산업중심주의와 인권 감수성 사이에서 정부는 산업중심주의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의료데이터에 대한 개인 열람 허용을 통해 서비스 편의성을 높이고 배달종사자 안전망 강화 방안을 통해 시민사회를 달래려는 조처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제스처는 제스처일 뿐이라는 사실은 명심하도록 하자. 정부·여당이 건강정보나 금융정보 같은 민감 정보의 수집·처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경제 혁신을 노린다는 취지 자체는 박근혜 정부부터 지금까지 줄곧 유지되고 있다.
확실히 정보인권 문제는 중요하다. 사생활을 넘어 우리의 몸과 영혼이, 그것도 부지불식간에 혁신의 동력이 된다는 것은 분명 꺼림칙한 일이다. 게다가 웹사이트 회원정보에서 카드사 신용정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불안 또한 다들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안일한 보안 조처쯤으로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의 장벽을 낮추고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발상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한가지 더 눈여겨볼 것은 개인정보를 둘러싼 쟁론의 지형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인권과 관련된 대다수 쟁점은 주권적 권력의 감시 문제와 관련이 깊었다. 그런데 기술 및 경영 환경 변화와 더불어 지난 수년 동안은 국가권력뿐 아니라 시장권력과도 다툼의 여지가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 같은 쟁점이 줄곧 있었지만) 데이터가 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런 형세는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는 법안 개정이라는 하나의 사안으로 연결된 두가지 쟁점을 접하고 있는 셈인데, ‘양도될 수 없는 정보인권’ 그리고 ‘사유화될 수 없는 개인정보-데이터’라는 쟁점이 그것이다. 각각의 논점을 둘러싼 다툼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치안의 요구와 정보인권 감수성 사이에서, 그리고 데이터를 사유화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는 경제모델과 데이터를 사회적 상호성과 협력의 산물로 여기는 코먼스(commons) 모델 사이에서 말이다.
결국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라는 ‘광물’의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해야만 할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