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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3월29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최근의 북-미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의 기득권층과 거리가 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평화의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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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브루스 커밍스
3·1운동 비폭력 저항정신 ‘촛불’로 이어져
친일파 등용, 현대사 가장 어리석은 선택
문 대통령, 북-미 중재자 역할 잘하고 있어
미국 ‘제재 완화’ 안하면 남북 관계도 한계
북 제시한 ‘영변 핵 완전 폐기’는 좋은 제안
북핵 해결 위해 트럼프 같은 대통령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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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3월29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최근의 북-미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의 기득권층과 거리가 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평화의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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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76)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3월28~29일 열린 국제학술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한완상)가 마련한 자리다. 포럼에서 커밍스 교수는 일본의 조선 합병은 일반적인 식민지화와는 다른 경우이며 차라리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프랑스 점령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커밍스 교수는 북한 현대사에 대한 오랜 연구에 기반을 두고 최근의 북-미 관계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내놓았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 완전 폐기’는 좋은 제안이었으며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는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접근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대를 피력했다. 인터뷰는 29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20층에서 진행됐다.
―이번 국제학술포럼에서 발표한 글이 흥미롭습니다. ‘한국, 가장 늦게 식민지화돼 가장 먼저 봉기한 나라’가 발표 제목인데요.
“우선 일본이 한국을 1910년에 강점할 때 전세계적으로는 400년의 식민지 역사가 있었습니다. 1931년에 식민지가 된 만주를 빼면, 한국의 식민지화는 가장 늦은 경우였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강제 합병된 지 9년 만에 반일 민중봉기가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이죠. 가장 일찍 봉기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식민지 해방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식민지 성격도 다른 곳과 많이 다릅니다. 한국은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이미 국가로서 상당한 발전을 이룬 나라였습니다. 1910년 이후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일반적인 제국주의-식민지의 관계가 아니라, 침략 국가와 피침략 국가의 관계로 봐야 합니다.”
―3·1운동 100돌을 맞아 국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한데요. 일부에서는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하고 상당한 동의를 받고 있기도 한데요.
“나는 3·1운동을 혁명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저항을 통해 제국주의 국가를 쫓아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억압정책이 이후에 바뀌기는 했지만 완전히 식민 정권을 뒤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3·1운동의 시민불복종 운동방식, 민족대표 33인의 비폭력 저항정신과 철학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 정신이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전개된 저항과 불복종, 최근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최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다시 한번 한국 정치에서 회자됐습니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됐다’고 해서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친일 청산을 위해 설치된 반민특위가 좌초한 것이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대목인데요.
“친일파 문제는 미국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 군정이 과거 일제의 군대나 경찰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등용한 것이 원인입니다. 1940년대 후반에 친일파 청산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지만,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산된 후 1990년대까지 그 상태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엘리트층 상당수가 친일파 또는 친일파 후손으로 이루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지요. 친일파를 다시 등용한 것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미 사이 ‘중재자’ 혹은 북-미 협상의 ‘촉진자’로서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미 사이 중재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김대중 대통령도 중재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셨지만 정책의 중심으로 삼지는 못했습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이 군사력을 후퇴시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더 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협상 타결에 반대하고, 생화학무기까지 제거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 좀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잘못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2001년 국내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 이후 북한의 영변 핵개발 역사를 꽤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여러모로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시발점’이라고 쓰기도 했는데요.
“지금에 와서는 훨씬 더 강력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주제로 삼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이지, 미국이 한반도에 1958년부터 1991년까지 핵무기를 배치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핵무기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것도 미국 정부이고 핵무기로 먼저 북한을 위협한 것도 미국입니다. 핵무기로 상대 국가를 위협한다면 그 국가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핵무기를 자체 개발하고 싶겠지요. 북한의 핵개발에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미국 정부의 그런 행동과 정책이 북한이 ‘우리가 생존할 길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유엔 제재 가운데 민수·민생 관련 5가지 제재 해제를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일괄타결(빅딜)을 제시해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나는 북한의 제안이 좋은 거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보도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안을 수용하려 했지만, 볼턴과 폼페이오가 반대해서 결국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나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도 폐기할 만한 것은 거의 다 폐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빅딜론’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완수하고 그 뒤에 제재 해제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요.”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네이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워싱턴 외교정책 기득권층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한반도에 긍정적이고 많은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북한 처지에서는 ‘도발적인 것’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트럼프가 맨눈(innocent eyes)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트럼프 같은 대통령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기존의 외교정책을 싫어합니다. 미국의 역대 정부가 그런 외교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이기지도 못할 대외 전쟁을 계속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를 맨눈으로 보고 있다’고 했던 것인데요. 그 맨눈이란 게 다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시각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또 ‘기득권과 관계가 멀다’고 했는데, 사실 그 뒤로 더 멀어졌지요. 한반도 문제는 70년이 넘은 오랜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트럼프와 같은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트럼프 집권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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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고명섭 <한겨레> 논설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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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 대다수 정치인, 전문가들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회의적입니다.
“북한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 위협 제거를 모두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외교정책 담당자들은 비핵화를 이야기할 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미국의 핵 역량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도 그랬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은 미국의 핵정책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의 핵무기·핵시설의 폐기만 얘기하지 그 이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북한이 좀 사라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만 있지 진정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그 이후 갈등에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이 전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 문제지요.”
―미국 내부에서 전통적인 보수파(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마저 북-미 비핵화 협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결렬되기를 내심 바라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 태도는 심지어 <뉴욕 타임스> 같은 다소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나타납니다.
“맞습니다. 진보, 보수 다 그렇습니다. 특히 진보 쪽에서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트럼프가 탄핵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에도 일단 반대부터 합니다. 그런 흐름이 지금 상황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지도 66년이 됐습니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시민 앞에서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가기로 약속했다”고 공표했는데요.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한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핵무기도 없고 핵 위협도 없다고 했는데, 이건 북한이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핵 위협이라면 여기서는 미국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솔직히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통일을 이뤄나갈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관계개선 노력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대결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훨씬 더 빠르게 냉전구도를 해체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북한을 바꾸게 될 것이고, 이 정책이 계속된다면 북한이 남한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michael@hani.co.kr
‘한국전쟁의 기원’ 새롭게 밝힌 현대사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 누구인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인으로서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새 길을 개척한 학자다. <한국전쟁의 기원>(1, 2),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과 같은 저작을 통해 남북을 아우르는 시야로 한국 현대사 전개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한국전쟁의 기원>은 분단의 원인과 전쟁의 기원을 추적해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임으로써 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책에서 커밍스는 미 군정이 친일부역자를 그대로 등용했고 한국민의 사회적 개혁에 대한 욕구를 묵살했으며, 미국의 냉전체제에 따른 필요에 맞추어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했음을 논증했다.
커밍스는 <한국 현대사>를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북한 핵 개발에 끼친 미국의 영향을 상세히 밝히기도 했다. 커밍스가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것은 미국인들과 미국 정책입안자·전문가들이 한국전쟁과 한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고, 특히 북한에 대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7년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서문에서 커밍스는 “미국이 북한의 두 가지 중요한 요구, 즉 최종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국전쟁을 끝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라는 요구에 응한다면, 핵 위기는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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