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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3 19:43 수정 : 2019.02.13 22:34

그림 장영인 변호사

짱변의 슬기로운 소송 생활

그림 장영인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년 반 전부터 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장영인 변호사는 올해 서른 살이 된 젊은 법조인이다. 웹툰 ‘짱변일기’, 유튜브 ‘짱변의 상담소’ 등을 발랄하게 운영할 만큼 젊은 감성 충만한 그가 격주로 일상 속 우리가 몰랐던 소소한 법률 정보를 알려준다.

직장인 A씨는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간당간당한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기 시작한다. 주말에 보러 가기로 한 콘서트 티켓을 회사 컬러 프린터로 출력하고, 비품실에서 사무용품을 두 개씩 가져와 하나는 가방에 넣는다. 옆자리 동료는 퇴근할 무렵 탕비실에서 티백을 한 움큼 들고나온다.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높은 공감을 사고 있다. 작은 사치를 즐긴다는 의미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변형한 단어로 회사 물건을 소소하게 사적으로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행동을 일컫는다.

회사 비품을 ‘슬쩍’하는 소확횡 놀이는 직장인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일탈 행동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인들은 소확횡에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훔쳐 온 회사 비품’을 자랑하면서 소확횡 인증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확횡은 정말 횡령에 해당하지 않는 걸까?

다행히(?) 소확횡이 횡령죄에 언제나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물건을 반환하지 않은 경우 성립한다. 특별히 회사 비품을 관리, 보관하는 직원이 아닌 이상, 직원들은 회사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횡령죄가 성립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확횡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재물을 그 타인의 허락 없이 가져가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한다. 즉, 회사의 재물인 회사 비품을 직원이 마음대로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문서 출력 몇 장 한 것뿐인데 뭐 어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훔친 재물의 양과 상관없이 절도죄에 해당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휴대전화를 충전한 것은 전기를 사용한 것이지 회사 물건을 취득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법은 ‘관리할 수 있는 동력’도 절도죄에서 말하는 재물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회사에서 개인 전자제품을 충전하는 것은 회사의 재물을 훔치는 행동이 된다. 회사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 말고 잠시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은 어떨까? 이런 행동은 절도가 아니다. 절도란 타인의 소유물을 내가 ‘소유’하겠다는 의사로 가져가는 행동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률용어로 ‘불법영득(不法領得)의 의사’라고 한다. 회사 비품실 박스에서 펜을 여러 자루 꺼내 와, 그중 일부를 ‘가지려고’ 가방에 몰래 넣는 것은 불법영득의 의사로 한 행동이지만, 그 펜으로 연애 편지를 쓰려고 가져왔다가 다시 비품실에 가져다 두는 것은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 전자는 절도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후자를 ‘사용절도’라고 한다.

혹시 ‘회사 물건을 가져가서 마음껏 사용한 뒤 다시 돌려놓으면 되는군!’이라고 생각할까 봐 덧붙이자면, ‘일시사용’이 아니라면 절도가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물건을 나의 소유물인 것처럼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거나, 원래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질 정도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인의 자동차를 함부로 운전한 뒤 200m 떨어진 곳에 세워두고 본래의 장소에 반환하지 않은 것은 소유자에게 돌려줄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 보아 절도죄가 인정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확절’이 관행화되어있고, 회사가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회사가 직원을 고소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소소해도 확실하게 절도’에 해당하니 조심하시라!

장영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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