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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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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⑫
글 잘 쓰기엔 ‘요약’ 필수
공통분모·본질·주제 찾아내는 능력
주제문 찾으면 기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요약 잘하는 공무원 일머리도 좋아
내가 자신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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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약하는 사람이 이끌어간다. 최초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 뜻을 모른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탈레스 그의 생각이니까. 무턱대고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유가 있을 테다. 그러면 됐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어쩔 것인가. 탈레스뿐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할 줄 알았다. 그것이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정의를 잘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단언하고 규정한다. 이름 짓기, 이른바 명명하기도 잘한다. 일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선점하고 주도한다. 힘을 가진다. 정의내리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보라. 잘 풀린다. 이 글의 시작이 그렇다.
요약은 본질이나 원리, 근본, 바탕을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회장이 내게 물었다. “대형 쇼핑몰의 본질이 무엇인가?” 유통이 아닌 부동산업이란다. 그들의 본질은 돈 벌기이고, 큰돈은 물건 팔아서가 아니라 땅값이 올라서 번다는 것이다.
정의 내리고 본질을 말하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일반화 능력이다. 구체적 사실과 사례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거나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역량이다. 개별 사건인 경험에서 보편적 지혜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늘 삶을 반추한다. 나는 내게 그런 역량과 습관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놀란다.
두 번째 특징은 도식화, 시각화 능력이다. 써야 할 내용을 종이 한장에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글쓰기 힘이다. 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할 때 내 상사가 그런 능력을 갖췄다. 몇십 쪽짜리 보고서를 한장의 그림으로 그려 내게 지시했다. 나는 그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수도 없이 지적당하고 고치고 다시 쓴 끝에 일이 끝났다. 그리고 탄복했다. 상사가 애초 그려준 그림이 보고서에 있었다.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본질을 파악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나는 자랑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패턴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때 학력고사를 보기 전 실전 모의고사를 수십개 풀어봤다. 시험장에 갔는데 본 시험을 또 보는 줄 알았다. 문제를 읽지 않고도 1, 2, 3, 4번 중에 답이 보였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답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패턴을 안 것이다. 패턴을 알기 위해서는 범주화할 줄 알아야 한다. 비슷한 것끼리 묶는 능력이 필요하다. 도서관에 책이, 대형마트에는 상품이 분야별로 분류돼 있듯, 카테고리별로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되지 않으면 글에서 같은 내용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한다.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끼리 한 번에 나오고, 거기서 끝내야 한다. 질질 끌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밖에도 요약을 잘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증거는 많다. 글쓰기는 요약이기 때문이다. 일기는 하루의 요약이요, 독후감과 기행문은 책과 여행의 요약이다. 자서전은 인생의 요약이고, 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누가 공부를 잘하는가. 선생님 말씀 잘 알아듣고 노트 필기 잘하는 친구다. 그가 가진 역량이 무엇인가. 기껏해야 불필요한 것을 잘 버리는 능력이다. 새로운 걸 만드는 역량이 아니다. 분리 배출 잘하는 것이다. 이 역시 요약 능력이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좋은 글이다. 참여정부 초기 ‘반부패 국제회의’(IACC)가 서울에서 열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했다. ‘부패는 나쁘다. 척결해야 한다’는 말을 초안에 썼다가 대통령께 호되게 혼났다. 뻔한 소리를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삭제는 욕심을 다스리는 절제력과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피카소의 황소 그림을 보라. 거추장스러운 걸 모두 버렸다. 스티브 잡스도 다르지 않다. 천재는 단순화한다.
삭제뿐만 아니라 압축도 요약이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목사 아버지는 아들 브래드 핏, 나보다 한 살 아래이고, 외모도 왠지 친숙한 그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별다른 게 없다. 반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졸이면 진국이 나온다. 문장도 같은 뜻이면 짧을수록 좋다. 광고 카피, 표어, 슬로건, 명언, 제목이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는 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글에는 첫째, 둘째, 셋째가 나온다. 정리도 요약이다. 세 가지로 정리하는 게 가장 좋다. 2002년 월드컵 개최 효과는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1석 5조의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리하면 독자가 정리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쓰는 사람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 나중에 기억도 잘 난다.
우리는 실시간 검색어에 관심이 많다. 랭킹을 좋아한다. 무엇이 실검 1위인지 궁금해한다. 등수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뭘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중요한 순서대로 알고 싶다. 일도 마찬가지다. 우선순위대로 처리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요약 능력이다. 그런 사람이 글도 잘 쓰고 일머리도 좋다. 출판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1년 반했다. 편집은 우선순위를 가려 중요도가 높은 내용을 남기고, 남은 것을 배열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중요한 것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이다. 기자 역시 중요한 것부터 쓴다. 중요도가 높은 정보부터 순서대로 보여주는 역피라미드 방식으로 기사를 쓴다.
공직생활을 8년 가까이했다. 어느 공무원이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가.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머릿속 생각을 개조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머릿속 생각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간결하고 명료한 보고서를 쓸 수 없다. 또한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일 처리도 깔끔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술형으로 되어 있는 말과 생각을 개조식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요약 능력이다. 나는 대통령의 구술을 글로 옮기는 일을 했다.
요약을 잘하는 사람은 키워드, 핵심문장, 주제문도 잘 찾아낸다. 키워드에 동그라미를 치고, 핵심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주제문에 별표를 친다. 이런 사람이 글도 잘 쓸 수밖에 없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나는 키워드, 핵심문장, 주제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글을 쓸 때 키워드를 찾아내고 그 단어를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에 쳐서 그 개념을 명확히 파악한 후 글쓰기를 시작한다. 또한 내 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문장들을 띄엄띄엄 써본다. 그 문장이 내 글의 문단 첫 문장이다. 다시 말해 핵심문장이다. 핵심문장 아래 빈칸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뒷받침문장들이다. 핵심문장은 문단 수만큼 필요하다. 주제문은 하나다. 영화를 보고 요약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발췌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 내용을 함축해서 줄거리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독의 주제의식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할 수도 있다. 주제문 찾기는 바로 이런 요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문이나 기고문 구술하기에 앞서 첫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무슨 얘기 할까?” 주제문을 무엇으로 할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런 주제문을 대통령은 명제라고 했다. 주제문은 사실명제, 가치명제, 정책명제 가운데 하나다. 주제문을 찾으면 기뻐했다. “아, 이걸로 하면 되겠다. 됐다!” 반은 쓴 것이다. 이후 작업은 이 주제문이 사실이란 걸 증명하거나, 옳다는 걸 설득하거나, 주제문대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내용을 덧붙이면 된다.
결말은 주제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결말을 설정하는 실력도 요약 능력이다. 특히 스토리텔링 글에서 그렇다. 이런 능력이 탁월한 사람의 글에는 반전과 여운과 감동이 있다. 좋은 결말을 맺기 위해서는 첫 문장이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 이 또한 요약 능력이다. 전체 그림이 없는데 첫 문장이 나올 리 만무하다. 멋진 첫 문장이 나오려면 전체가 요약돼야 한다. 그런 첫 문장과 멋진 결말이 어우러진 글이 나는 좋다.
이쯤 하면 지겨울 수 있다. 요약과 글쓰기를 이처럼 밀도 있게 연결한 글을 본 적 없을 테니까. 그래도 하는 김에 한두 가지 더 하자. 논지를 읽어내는 것도 요약 능력이다. 글을 쓸 때 중간 제목을 달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중간 제목을 달면서 글을 쓰려면 주어진 문제를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그런 부분의 의미를 규정한 후, 각각의 부분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마다 강조하는 한 장 보고서 쓰기를 예로 들어보자. 쓰고 싶은 말 다 쓴 후 한 장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줄이는 것도 방법이고, 한 줄에서 시작해 살을 붙여나가다가 한 장이 다 차면 끝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목차를 짜고, 즉 중간 제목을 달고 그 아래 빈칸을 채우는 것도 원 페이지 보고서를 쓰는 방법이다.
논지를 읽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취지를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내는 능력이다. 겉으로 드러난 주제 보다, 그렇게 말하는 의도나 배경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이 또한 요약 능력이다. 이것은 내가 자신 있다. 대통령이나 회장이 “그거 있잖아, 알지?” 그러면 나는 안다. 텍스트 이해 능력은 떨어지지만, 콘텍스트를 알아먹는 역량은 있다. 그 힘으로 남의 글을 썼다. 이는 월급 받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보고서는 잘 쓰는 역량이 아니라 잘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쁜 세상이다. 모든 것이 넘치는 시대다. 간결함이 미덕이다. 자료를 잘 찾는 것, 메모를 잘하는 것, 직관적으로 말하는 것, 통찰이 담긴 글을 쓰는 것 모두 요약이다. 요약이 능력이다. 요약하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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