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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8 09:07 수정 : 2019.08.09 07:11

게티이미지뱅크.

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⑬

글쓰기엔 모방이 중요한 기술
나보다 나은 이 따르고 싶은 충동
그 사람 생각 흉내 내는 게 출발점
소설가 김훈 좋아했던 이국종 아주대 교수
좋은 표현 찾아 간절히 외우기

게티이미지뱅크.

왜 글을 못 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쓰긴 어렵지만, 누구나 쓸 수는 있지 않은가. 글이란 걸 세상에서 처음 써야 하는 것도, 문자를 창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누군가 써놓은 글이 있지 않은가. 지금 글을 못 쓰고 있다면 남이 써놓은 글을 덜 봤거나, 그런 글을 쓰려는 노력을 덜 했거나, 글 쓰는 일이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모방은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는 것을 말한다. 나는 모방의 힘을 믿는다. 재능이나 소질이 없어도, 독서를 많이 하지 않고도 남의 글에 기대서 얼마든지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그 증거다.

모방의 출발은 사람을 본받는 것이다. 대통령 연설문 쓰는 일은 모방 능력이 거의 전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대통령의 생각을, 문체를 베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따라 하고 싶고, 흉내 내고 싶어야 한다. 그러면 베낄 수 있고, 누구라도 그처럼 쓸 수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1960년 일명 ‘보보인형 실험’을 통해 모델링(Modeling) 이론을 주창했다. 사람은 누구나 모델이 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모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주대의료원 이국종 교수를 보면 이 말은 맞다. 그가 쓴 <골든아워>를 선물 받고 몇장 읽지 않았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대필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의 글이 김훈을 닮아 있었다. 그를 만났을 때 물었고, 그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김훈 선생을 가장 존경하고, 그분처럼 쓰고 싶은 게 말 그대로 나의 소원이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당신은 이미 김훈 선생님이다.” 그가 뛸 듯이 기뻐했다.

벤치마킹 모델을 정해보라. 작가도 좋고, 학자, 정치인도 상관없다. 직장인이라면 조직 안에서 본받고 싶은 사람을 찾아봐라. 뉴턴의 말대로 그의 어깨에 올라타라. 그의 글을 교본으로 삼아보라. 고교 시절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 흉내 내듯 ‘큰 바위 얼굴’만 있으면 된다.

굳이 사람일 필요도 없다. 책 한 권을 모델로 삼는 것도 괜찮다. 고등학교 다닐 적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 독파하듯 책 한권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왜 좋은지, 저자는 왜 이렇게 썼는지 분석하며, 좋은 표현은 메모하고, 자주 띄는 단어는 언젠가 써먹겠다 생각하며 읽고 또 읽는 것이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이나 글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이라 하지 않는가. 어느 시점에는 저자처럼 쓰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책을 독파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문장으로 접근해보라. 문장 필사와 암송, 창조의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삼촌 벌쯤은 된다. <크리스마스 캐롤>로 친숙한 찰스 디킨스는 필경사 출신이다. 당시 인쇄술이 대중화되지 않아 직접 베껴서 책을 만들었다. 디킨스는 그 필사를 하다 작가가 됐다. 나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시, 자칭 시인이 됐다. 국어 선생님께서 ‘한국의 현대시’란 단원에 나오는 시를 모두 외우라고 한 이후, 신기하게도 시가 써졌다. 친구들이 야간자율학습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간 사이, 칠판에 자작시를 썼다.

디킨스같이, 강원국처럼 쓰고 싶은가. 좋은 문장을 필사하거나 암송해보라. 암송과 필사는 문장 패턴을 우리 뇌로 하여금 터득하게 하는 힘이 있다. 흔히 접하는 명언이나 격언도 좋다. 오랜 세월 검증되고 선택받은 문장이다. 문장이 어떠해야 사람 사이에 회자되고 기억에 남는지 알려준다. 거기에는 여러 문형이 녹아 있고 온갖 수사법이 구사돼 있다. 기발한 표현도 많다.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한 이후 이런 아포리즘은 모방의 보물창고가 됐다.

그냥 베껴 쓰거나 무턱대고 외우는 것은 효과 없다. 눈을 부릅뜨고 좋은 표현을 찾는 게 먼저다. 간절하게 닮고 싶은 문장을 찾아 기쁜 마음으로 반기며 꾹꾹 눌러 쓰거나 외어야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필휘지 능력도 좋은 글귀에 대한 갈급함에서 비롯되었으리니.

나는 생각도 모방한다. 네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바꾸기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변형, 응용, 재배열한다. 있는 것을 뒤집거나 덧붙이거나 다른 소재로 대체한다. 비틀거나 재배치한다. 줄이거나 쪼갠다. A를 a 또는 A+로 만드는 식이다. 창의와 모방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창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있는 것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있던 것을 바꾸고 변형한 끝에 나온다. 돌덩이가 구르는 것을 보고 바퀴가 만들어진 것처럼.

두 번째는 섞기다. 이미 있는 A와 B를 결합해 A+B를 만든다. 이때 A와 B는 여전히 내 글 안에 존재한다. 일종의 편집이고 물리적 결합이다. 나는 이를 위해 쓰려는 주제에 관한 글을 스무 편 정도 읽는다. 나의 뇌는 어느 글에서 전개 형식을 빌려온다. 또 어느 글에서는 인용구를 차용한다. 또 다른 글에서는 시작과 끝내는 방식을 참고한다. 베끼라고 시키지 않았다. 뇌가 알아서 했다. 누가 내게 돌을 던질 것인가. 파스칼이 그랬다. 배치가 새로운 것도 새로운 것이라고. 몽테뉴도 그랬다. 꿀벌은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얻지만, 꿀은 꿀벌의 것이라고. 따지려면 파스칼에게 따져라. 억울하면 몽테뉴를 찾아가 하소연하라.

세 번째는 녹이기다. A와 B를 융합해 AB를 만든다. 화학적 용해다. 글에서 A와 B는 보이지 않는다. AB가 있을 뿐이다.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궁리해야 한다. 이것저것을 부딪쳐보고 연결해봐야 한다. 나는 올해 들어 소셜네트워크(SNS)에 1600개 넘는 글을 썼다. 나는 이 조각들이 녹아 연말쯤엔 다음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는 낳기다. A+B가 C를 잉태하는 경우다. 생물학적 해산(解産)이다. 이 경우 산고((産苦)까지 겪을 필요는 없다. 고찰하는 수고와 발효하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숙성된 생각이 길을 걷다가, 반신욕 하다가 혹은 잠들기 직전 불현듯 찾아온다. 나는 이런 때 통찰이 오고 뮤즈가 찾아온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자료를 찾아 쓰는 것이야말로 모방이다. 자료는 어딘가에 있다. 자료가 없어 글을 못 쓰진 않는다. 분명히 있다는 확신을 갖고 찾으면 반드시 나타난다. 회사에서 보고서 쓸 때 선배들이 써놓은 것을 찾아봤다. 무엇을 봤나. 중간 제목을 봤다. 그동안 회사에서 나온 보고서의 중간 제목을 망라해서 한데 모았다. 글을 쓸 때마다 그중 몇 가지를 골라 조합했다. 글의 구성을 모방한 셈이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배경, 취지, 현황, 원인, 대책, 해법, 기대 효과, 실행 계획 등의 중간 제목을 많이 알고 있다. 소설가는 살인, 탈옥, 추적, 역전, 구출, 갈등, 복수와 같은 중간 제목, 다시 말해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개념어를 많이 갖고 있다.

모여서 함께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 그렇게 글을 썼다. 함께 쓰면서 서로를 흉내 내고 서로에게 배웠다. ‘아, 저런 방법도 있구나, 저렇게 쓰니까 더 좋구나.’ 어느새 모두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됐다. 우리는 그때 글 쓰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기실 글쓰기 학습을 한 것이다. 글쓰기 규범을 익히고 글 쓰는 방법을 공부했다. 모방을 통해 서로에게 배웠다.

모방의 성공 여부는 기존에 있는 것을 얼마나 내 것으로 내면화, 자기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단순 복제여선 곤란하다. 정체된 모방은 답습이고 클리셰다. 무임승차는 표절이고 도용이다. 설사 법에 저촉되진 않더라도 짝퉁이란 소릴 듣는다. 내 것이 가미 되어야 한다. 이전보다 나아져야 한다. 이미 있는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관점과 시각으로 해석하고, 결합하고, 조합해서 현실에 접목하고, 적용한 후 해법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창조적 모방이다.

모방의 종착점은 내가 나를 모방하는 것이다. 남을 모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내 것이 만들어지고, 다음에 글을 쓸 때 그것을 베끼게 된다. 그런 것들이 축적되면 나만의 문체가 만들어지고 나다운 글을 쓰게 된다.

나는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게 모방은 나보다 더 나은 것을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다.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더 나은 나를 향해 가는 성장 여정이다. 나는 남의 글을 숙주 삼아 내 글을 쓴다. 남의 글에 기생한다. 그러나 쭈뼛쭈뼛 않는다. 도리어 큰소리친다. 당신을 내가 보존하고 번식시켜 주는 거야, 훔치는 게 아니라 빌리는 거야. 기다려. 더 좋은 것으로 갚아줄게. 지켜봐. 나를 따라 하게 될지니.

누구나 누군가를 모방한다. 글은 그렇게 서로를 모방하며 자라난다. 글은 글을 통해 완성된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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