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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⑮
생각 많이 해야 좋은 글도 써져
주제 정해 고민하는 것도 한 방법
평소 롤 모델의 생각 따져보기도
호기심은 근사한 사유의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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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안 떠오른다. 이런 때 나는 인용으로 시작한다. 네로 황제 개인 교사였던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문장은 생각에 걸친 옷에 불과하다.”
글을 쓰려면 내 생각이 있어야 한다. 생각은 글을 써야 하는 시간에 만들려고 하면 이미 늦다. 만들어놓은 생각을 써먹는 게 글쓰기다. 공부해놓은 것을 써먹는 시간이 시험이듯, 생각해둔 걸 문자로 적는 게 글쓰기다.
나는 글 쓸 때 개요를 짜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물론 생각나는 게 많지 않다. 하지만 쓰기 시작하면 없던 생각이 난다. 쓸수록 더 많은 생각이 나고 생각이 정리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낱말 퍼즐 맞출 때 빈칸이 채워질수록 남은 칸 채우기가 쉬워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생각이 거저 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잘 나는 환경이 있다. 나는 놀 때, 그림이나 동영상을 보거나 칼럼을 읽을 때, 자기 전 엎치락덮치락 할 때, 반신욕하거나 샤워할 때,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술을 적당량 마셨을 때, 멍 때릴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생각이 잘 난다. 이런 상태가 생각을 불러오는 마중물이고, 생각이 필요한 때 내가 하는 일이다.
국어사전에서 ‘생각’을 찾아보면 의견, 느낌, 기억, 관심, 심경, 의향, 상상, 판단, 바람, 각오 등이 나온다. 이처럼 생각은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 생각을 ‘의견’으로 한정하면 생각이 궁색해진다. 정의 내려 보는 것, 이유를 대는 것, 비교, 비유, 구분, 분류, 상기해보는 것 모두 생각이다. 지하철에 관해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하철은 지옥철이다’라고 ‘정의’ 내려 볼 수 있다. 왜 지옥철인지 ‘이유’를 댈 수 있다. 유럽 지하철 혹은 버스와 ‘비교’해보고, 지하철 노선별로 ‘구분’해보고, ‘콩나물시루’에 ‘비유’해볼 수도 있으며, 출근길에서 겪은 일화를 ‘상기’해볼 수도 있다. 이밖에 예상, 연상, 추측, 상상, 해석, 감상, 가정, 전제, 비판도 생각의 실마리를 푸는 단어들이다.
생각은 또한 글의 소재, 요소, 항목이기도 하다. 보고서 쓸 때 중간 제목에 들어가는 배경, 취지, 목적, 개요, 현황, 문제점, 원인, 이유, 근거, 사례, 대책, 개선책, 해법, 세부계획, 소요 인력, 예산, 기대효과, 예상되는 부작용, 협조 요청사항과 같은 항목을 잘 떠올리는 사람이 보고서를 잘 쓴다. 기획력,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예를 들어 회의 결과를 보고해야 할 때 논의사항, 결정사항, 쟁점사항, 건의사항, 후속조치 필요사항 같은 단어를 잘 떠올리면 보고서, 즉 글을 잘 쓴다.
내 생각 절차는 일반적으로 이렇다. 일단 무엇에 관해 생각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주제를 정하는 것이다. 그것에 관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풀어놓는다. 종이에 쓰기도 하고 노트북에 치기도 한다. 때로는 도식으로 그리기도 한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혹은 마인드맵이다. 남들도 다 생각하는 것은 버리거나 뒤집어 본다. 살아남는 생각을 덩어리로 묶는다. 덩어리의 중요도에 따라 줄을 세운다. 가장 위에 있는 덩어리를 한마디로 집약한다. 그것이 내 글의 중심 생각이 된다.
내가 자주 쓰는 비장의 생각법도 있다. 내가 평소 글 선배로 여기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이 사안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런 습성은 회사 다닐 적 생겼다. 항상 채택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동료가 있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쉽게 타개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에도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저 주제에 관해 나라면 뭐라고 얘기할까’ 생각한다. 티브이(TV)나 라디오에서 토론을 하면 ‘내가 토론자라면 뭐라고 주장할까’ 생각해본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나는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해본다.
다른 발상법도 있다. 내가 무엇이라고 주장했을 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시험은 사지선다형이었다. 모르는 문제의 답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걸 찍는가. 친구들과 정답을 놓고 갑론을박을 할 때 친구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그때 내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1인칭으로 시작한다. 누군가 내 생각을 물었을 때 ‘내 생각은 무엇이다’라고 대답할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2인칭으로 바꿔본다. 내 생각과 다른 반대편 생각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마무리는 3인칭으로 한다. 반론과 인용을 통해 내 의견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객관화한다. ‘이것은 무엇이다.’
더 근원적인 방법도 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면 된다. 그러면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상태가 된다. 몸의 근육을 키우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각 근육이 불어나 사유의 힘이 세지면 쥐어짜지 않고도 보다 많은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 근육 중 으뜸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키우는 지름길은 관심 주제를 갖는 것이다. 내 주제는 글쓰기다. 관심 주제가 있으면 봐야 할 것과 안 봐도 될 것을 빨리 정해서 효율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남의 눈에 안 보이는 것도 내 눈에는 잘 띈다. 관심 주제에 관해 알고 싶어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색하고 공부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사를 관심 주제의 렌즈로 보고 해석한다. 그런 사람은 독서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경험한다. 생각 만들기에 필요한 이 네 가지를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독서, 학습, 토론, 경험의 입력 행위와 쓰기라는 인출 행위와의 사이에 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색, 성찰, 궁리라는 숙성과 발효 과정이다. 이런 사유는 정신없이 바쁠 때는 가능하지 않다. 한가하고 심심하고 권태로울 때,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뇌가 사유하는 모드로 들어간다.
생각 근육을 키우려면 또한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미 있는 생각을 추종하거나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상습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매사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내 생각을 가지려고 힘쓰는 것이다. 나아가 무엇이 공동체를 위해 옳은 생각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에는 네 가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첫째, 혁신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 변화와 진보에 관한 고민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생각으로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반역이다. 둘째, 균형감이 있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 이론과 실제,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셋째,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 특히 약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구조적 사고를 해야 한다. 끝으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희망과 비전, 낙관적 대안이 생각 안에 담겨야 한다.
감각을 벼리는 것도 생각 근육을 키우는 길이다. 산책, 여행, 영화나 음악 감상을 통해 많이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오감을 자극하고 감수성을 민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생각이 건조하고 딱딱할 수밖에 없다. 감각과 감성이 더해져야 촉촉하고 유연해진다.
건강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진리다. 운동, 휴식, 수면은 좋은 생각을 만드는 바탕이다.
백날 생각해봐야 뭐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당장 한 줄이라도 써야 하는 것이다. 생각은 글로 표현되지만, 우리는 또한 글을 보며 생각한다. 생각을 쓰기도 하지만 쓰면서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생각과 글은 상호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그 자체가 생각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생각 근육을 키우려면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다. 용기다. 생각을 말한다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모두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래서다. 부당함에 맞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비난을 감내하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으면 배짱이라도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비난에 직면했을 때 ‘아니라고? 아무튼 내 생각은 그래. 생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지.’ 이런 배짱이라도 없으면 자체 검열을 과도하게 하게 돼 생각 근육이 단단해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생각 쓰기다. 좋은 자재가 없으면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없고, 좋은 재료가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멋진 춤을 추려면 흥이 넘쳐나야 하듯, 좋은 글을 쓰려면 생각이 흘려 넘쳐야 한다. 생각이 좋은 글이 좋은 글이다.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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