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등의 저자 강원국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이었던 사람
“유시민은 에밀 졸라 자처하는 것” “김부겸은 대선 주자감” 등
지금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 조언하기도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테마와 프로젝트 찾는 것
글쓰기야말로 자신의 길 찾는 데 최적의 방법
|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195쇄. 불황을 꼬리표처럼 달고 사는 우리 출판계에서 경이로운 출간 기록이다. 더구나 온갖 문학상을 휩쓴 소설가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한때 그저 필부였던 이가 저자다. 강원국(57). 그의 첫 번째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는 출간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형 베스트셀러다. 이어 낸 <회장님의 글쓰기>(2014)와 <강원국의 글쓰기>(2018)를 합치면 그의 이름 석 자 박힌 책의 판매량은 30만권이 넘는다.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 몰랐다”는 그를 지난 1일 만났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간 연설 행정관과 비서관으로 대통령의 말과 글을 썼던 그의 얼굴엔 우리 시대 지도자 ‘김대중’과 ‘노무현’의 자취가 짙다. 하지만 정작 그가 대중에게 소비되는 통로는 글쓰기 콘텐츠다. 지난 2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총 20회 ESC에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원고를 보내왔던 강원국. 연재가 끝났지만, 아쉬운 마음에 그에게 글쓰기의 미덕과 인생에 관해 물었다.
■
글쓰기는 자신의 프로젝트 찾아 가는 길
―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대우증권이었는데 본래 글쓰기가 꿈이었나?
“1990년 1월께 입사해서 대우증권 홍보실에서 7년 일했다. 홍보실에 있다가 기자가 되려고 했다. ‘대우 20년사’를 쓰면서 눌러앉았다. 회장 비서실 문화홍보팀에서 일하다가 후에 청와대와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대한 적 없다. 내겐 ‘역사 속 인물’ 같았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직접 부르셔서 구술하셨다. 정말 솔직하신 분이셨다. 격의 없이 다 말씀해주셨다. 때로는 속내도 비치셨다. 뒷짐 지고 걸으시면서 배경, 본질, 예측, 전망, 추론, 정치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얘기까지 말씀하셨다. ‘생각하는 과정’을 보여주신 거다. 기자도 꿈은 아니었다. 인생 계획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표도 없었다.”
― 글쓰기 전문가가 됐다. 이른바 그동안 본 문장에서 가장 잘 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문(2006년)이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로 시작하는데, 정말 감동적이다. 예정된 연설문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초안부터 직접 쓰신 거다. 한번 보라고 보내셨는데, ‘역사는 우리 편일 것입니다’를 붙여 드렸다. 그 말은 결국 빠졌는데, 나중에 보니 빼는 게 맞았다. ‘나도 열심히 하는데 왜 혼내시지’ 하고 화난 적도 있었는데, 그 글을 읽고 이렇게 잘 쓰시는데 내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내가 그분에게서 (글을) 배우고 있다는 걸 알았다.”
|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 당신은 글쓰기에 관한 글을 잘 쓰는 이인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인가?
“글을 잘 쓰는 사람 아니다. 목표도 아니다. 글을 잘 쓰는 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전자다.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글쓰기를 자신의 필생의 과업이나 프로젝트로 삼고 그걸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숙제가 있으면 된다. 글쓰기 고통에서 인류를 해방시키는 게 목표다. 뇌 과학이나 심리학에 관심 갖는 이유다. 모든 글의 구성법을 매뉴얼화하고 싶다. 모든 문형을 정리하는 거다. 천자문이나 구구단처럼 외우면 문장력 있는 사람 될 수 있다. 수사법을 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 글쓰기 책 10권은 낼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 100만명이 보는 책을 만들고 싶다. 글쓰기 강사들은 보통 기법 익히는 걸 강조하는데, 자기 글을 보여주면서 ‘글은 이렇게 써라’ 말할 수 있는 단계로 가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진짜 잘 써야 하는데, 아직 멀었다.”
― 어릴 때부터 많은 책 읽은 거로 안다. 한국의 명문장가는 누구?
“대학 때 3000권 읽었다. 책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책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나 서평 보는 게 재밌다. 요즘엔 좋은 글이 많다. 내용이나 발상, 관점이나 해석, 시각이 돋보이면 좋은 글이다. 올해 초 알려진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처럼 구성이 참신한 것도 좋은 글이다. 문장이 유려하거나 통찰을 툭 던져주는 글도 좋다. 신영복 선생의 글은 참신하지는 않아도 통찰이 있다. 명문장가는 표현력과 묘사를 잘하는 소설가 김훈이라고 생각한다.”
|
강원국이 출간한 책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60살이 넘은 나이에 20~30대의 전유물인 웹소설에 도전했다.
“내년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할 예정이다. 나는 뭐든지 잘하더라.(웃음) 회사 들어가도, 공직에 몸담아도, 책을 내도, 강의에 나서도 다 잘했다.(웃음) 유튜브도 잘할 거다. 유튜브는 일시적인 현상 같지 않다. 글쓰기에 관해 아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식의 유튜브 채널이다. 영상과 글은 다른 영역 같지만, 아니다. 영상시대라지만, 그 바탕에 글이 있다. 어떤 콘텐츠도 기반은 글이다.”
―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영역에서 경쟁자는? 유시민 작가인가?
“이미 유시민 선배는 내가 최고라고, 나를 당해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웃음)”
― 유시민 작가와 가깝다고 안다. 최근 일각에서는 그의 행보에 의아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나야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다.(웃음) 본인이 늘 말하는 ‘문재인 정권을 지켜야 한다, 어용지식인 하겠다’고 말하는 게 한 축인 거 같다. 다른 축은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19세기 프랑스를 휩쓴 반유대주의 때문에 희생된 드레퓌스 사건. 당시 에밀 졸라 등이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의 에밀 졸라처럼 시대의 지식인이 감당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조롱이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다. 사람들이 ‘관종’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러 가지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자신이 시대의 파수꾼 역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 요즘 정치인은 글쓰기가 기본이다. 많은 이들이 트위터에 글 남긴다. 그 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치인의 글이나 말에 대해 말해 달라.
“안 본다. 정신 건강에 안 좋다. <교통방송>의 <색다른 시선, 강원국입니다>를 지난 3월부터 석 달 진행하고 그만뒀다. 결정적인 이유가 (서로를 비난하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7가지만 알면 된다. 이 7가지를 체화하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생각의 허점, 약점, 단점을 안다. △나와 다른 이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그 다른 생각을 평가할 줄 안다. △다른 생각과 내 생각을 섞어서 결론 낼 줄 안다. △내로남불 안 한다. 이 7가지를 비판적 사고력이라고 하는데, 이건 민주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 역량이다. 우리는 첫 번째 것부터 안 된다. 자기 생각이 없으니 남의 생각에 휩쓸려 산다. 자기 생각이 있어도 표현할 줄 모르고, 표현할 줄 알아도 단점 몰라서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이의 생각 못 받아들이니까 평가를 못 하고 결론도 못 낸다. 정치인은 촌철살인이나 멋있게 말하는 거 중요하지 않다. 근거가 있는 사실을 얘기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시대에 주입식 교육은 쓸 데가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뭘 하며 살고 싶은지, 자기의 프로젝트는 무엇인지만 찾게 해주면 된다. 글쓰기는 그런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의 화두나 프로젝트, 자기 주제를 찾는 것 말이다. 이젠 어디 출신, 어디를 다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끝났다. 최대 50년은 소속 없이 자기 정체성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다. 내 정체성이란 나의 테마이자 주제, 관심사다. 그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다. 그걸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다. 글로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이다. 글이 나다. 글이 없는 사람은 ‘내’가 없는 사람이다. 앞으로 시대는 이런 측면이 더 가속화할거다.”
|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
‘슬기로운 청와대 생활’을 위한 조언
― 청와대에 8년간 있었다. 정치인들과 가까울 터인데, 어젠다 설정 등이 돋보이는 정치인은? 다음 대선 주자는 누구를 거론하고 싶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치인은 김부겸이다. 합리적이고 균형감과 사리분별력 갖췄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정치인이다. 소탈하다. 대구에 꾸준히 문 두드린 것을 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제2의 노무현’이다. 대구 사람 표도 필요하다.(웃음) 개인적인 친분 없다.(웃음) 그분이 나를 알긴 안다. 나도 유명하니까.(웃음)”
―최근 이낙연 총리의 대권 도전설이 정치권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그분을 처음 만난 건 노무현 전 대통령 인수위 때였다. 당선자 비서실장이었다. 너무 똑똑하고 빈틈이 없다. 당시 취임준비위원은 7명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사 돌아가며 쓰게 하셨는데, 다 마음에 안 드셨다. 구술도 여러 차례 하셨다. 마지막에 결국 이낙연 현 총리가 펜을 들었는데, 바로 한 자도 안 고치고 ‘오케이’ 하셨다. 그 글을 보니 알겠더라. 대통령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했다. 하지만 너무 똑똑하고 눈이 높아서 주변에 사람이 모일지는 모르겠다.“
― 요즘 문재인 대통령 연설이나 ‘국민과의 대화’ 등을 보면 아쉬운 거 없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다움이 있다. 아주 매력적이다. 날것 그대로의 매력 말이다. 결기도 있는 분이다. 그것에 우리는 충분히 감동한다. 그냥 그것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빈틈도 보이고, 정면승부도 하고, 민낯으로 국민도 만나고. 너무 정제돼 있는 느낌이다.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정권 초반부터 너무 감동적인 연설로 출발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이제 지금 정부의 임기가 반을 넘었다. 8년간 두 번의 정권을 경험한 이로서 청와대 분들께 ‘슬기로운 청와대 생활’을 위한 조언은?
“지금의 분란의 1차 책임은 야당에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대적 과제를 말씀하시면서 정권이 어디에 있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운에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처럼 확 포용해 전환국면을 만들든지, 정권이 끝난 다음 평가 들어갔을 때 또박또박 점수 딸 수 있는 것을 챙기든지 해야 한다. 매듭짓기 어려운 건 과감히 손 놓는 거다. 공약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리고 청와대는 위기관리 조직이다. 위기 대비하는 거 중요하다.”
|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
유머가 절실해
― <한국방송>(KBS)의 <대화의 희열>을 보니 유머에 자부심도 있어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배웠다. 그분은 치켜세웠다가 뚝 떨어뜨리고, 떨어뜨렸다가 치켜세우는 억양법을 쓰셨다. 우리 사회가 유머, 조크 넘쳐나서 가볍고 유쾌하고 즐거운 나라로 가야 한다. 우리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그래서 웃기려고 노력한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통쾌하고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성공한 이의 여유일까? 하지만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눈치 보고, 다른 이가 시키는 것만 하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이”라고 어린 시절을 술회한다. 초등학생일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 중학교 때 재혼한 아버지. 그로 인해 외삼촌, 이모 댁에 거주하면서 외할머니의 돌봄 속에서 자란 그다. “상처라기보다는 그런 생활이 눈치 빠른 이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눈치 빠름은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이다. 늘 낮은 자세로 사는 게 몸에 배어 있다.(웃음)”
― 고등학생일 때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일화, 전주고 떨어진 얘기는 유명하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재혼하셨지만, 우리 형제(3남매) 챙기셨다. 1980년 아마도 광주 아닌 지역에서 고등학생이 봉기한 건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헬기 뜨고, 장갑차 교문 앞에 들어섰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돈가스 하나 먹이고는 서울로 피신시켰다. 당시 전주에선 전주고가 명문고였고, 떨어지자 아버지는 처칠도 육사에 세 번 떨어졌다고 위로하셨다.”
재수해 들어간 대학에서 한 학기도 보내지 못하고 입대한 그는 전경으로 20대 초반을 보냈다. “1983년 연세대 전담 전경부대로 차출되었는데, 늘 북받치는 게 있었다”고 회상했다.
|
강원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대통령의 글쓰기> 출간인가?
“청와대를 나온 후 다들 두 대통령(김대중·노무현)에 관해 물었다. 그때 질문을 몇 년 뒤 글로 쓴 거다. 그래서 깊이가 없다.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작가가 됐다. 누구의 행정관, 비서관이라는 이름 대신 ‘작가 강원국’이 된 게 기쁘다. 오진이었지만, 암 판정받았던 일은 삶을 전환하는 데 계기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위나 월급이 아닌 자신의 일을 말이다.”
― 강연도 그런 일 중 하나인가?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주말 포함하면 올해만도 700번이 넘는다. 그러기를 3년 했다. 2000번이 넘는다. 강연 요청은 선착순으로 받는다. 강연료도 안 묻는다. 달걀 꾸러미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아보는 이 많아서 좋다. 강의 내용을 떠나 내 존재만으로 환영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최근 <교육방송> 펭수가 그런 존재라고 말하면서 경쟁자인 셈이라고 하자 그가 크게 웃으면서 “나의 경쟁자는 펭수! 그거 좋다”라고 말했다. 유쾌하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인생 책은 무엇인가?”
그는 사회 초년병일 때 끼고 살았던 이어령의 <문장백과대사전>을 꼽았다. 의외다.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도, 누구나 알만한 책도, 철학과 허세가 녹아든 책도 아니다. 그저 홍보실 글쟁이에게 꼭 필요한 책, 그런 책을 ‘엄지척’ 한 그가 바로 강원국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