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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0 09:34 수정 : 2019.03.11 10:26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시대 일본’
② 내 이웃의 인지증(치매)

사이타마 주간보호센터 치매환자들
지역 아동들에게 무료저녁 제공
메뉴 선정하고 직접 요리도 해

7명 중 1명 치매환자 ‘보편 질병’
시설수용에서 지역사회 돌봄으로
‘치매’→‘인지증’으로 용어도 바꿔

치매 전문의이자 환자 가즈오 박사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
예전 자신 생활 유지하는 게 좋다”

지난달 25일 일본 사이타마현 미요시초에 있는 인지증(치매) 전문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센터) ‘게야키노이에’(‘느티나무의 집’이라는 뜻)에서 인지증 환자들이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마 껍질을 까고 있다.
“오늘 아이들 저녁 메뉴는 면으로 할까요?”

“면은 쉽게 붇지 않나요?”

“잘 안 붇는 면도 있어요. 우동면이라든지.”

지난달 25일 일본 사이타마현 미요시초에 있는 인지증(치매) 전문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센터) ‘게야키노이에’(‘느티나무의 집’이라는 뜻)에서는 저녁식사로 무엇을 만들지를 놓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치매’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치호’(痴?·치매와 글자는 같은데 발음이 다름)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04년부터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라는 단어를 쓰는 치호가 모욕적이라며, 인지증(認知症·일본어 발음으로는 ‘닌치쇼’)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인지증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인지능력이 저하됐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인지증 환자’라고 부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조된다며 ‘인지증 당사자’라는 표현을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메뉴 선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장년층 인지증(65살 이하일 때 발병한 인지증. 한국에서는 ‘초로기 치매’라고 부름) 환자들과 데이케어센터 직원들이다. 이들은 센터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 지역 아동들에게 무료로 저녁을 제공하는 ‘아동식당’을 열고 있다. 장년층 인지증 환자들은 메뉴 선정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다. 직원들이 어느 정도 도와주기는 하지만 직접 장을 보고 채소를 다듬고 조리를 한다.

“아이들 모습 보는 게 기뻐”

보통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인지증 환자들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점은 인지증 관련 사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도 이례적 일이다. 게야키노이에에는 매주 일본 사회복지 사업 관련자들과 언론들이 참관이나 취재를 올 정도다. 이날도 사회복지법인 관련자 2명이 게야키노이에 아동식당에 사업 참관을 위해 방문했다.

게야키노이에는 2016년 아직 육체적으로 활동할 여력이 충분한 장년층 인지증 환자가 집 외에 있을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이 사업을 시작했다. 게아키노이에의 관리자인 나이죠 가즈토는 “데이케어 서비스를 받는 이들은 보통 80살 이상이다. 노래를 부른다든지 장기를 둔다든지 하는 레크레이션 활동 위주다. 비교적 젊은 인지증 환자들에게 맞지 않는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장년층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 특화된 사업을 펼치려는 분위기가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이타마현에서도 ‘장년층 인지증 환자 특화 사업’ 공모를 했고, 게야키노이에의 아동식당 사업은 여기에 응모해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2016년 1년 동안 사이타마현에서 보조금을 지급받았다. 나이죠는 장년층 인지증 당사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보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동료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장년층 인지증 당사자 7명이 참가해, 50인분의 우동을 만들었다. 이들은 한번 참여할 때마다 1380엔(약 1만4000원) 보수를 받는다. 나이죠는 “금액은 적지만 보수를 받는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지증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출판·도서 관련 일에 종사했다는 후카타 신이치(65)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보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60살 무렵에 인지증 진단을 받았다. 60살 정년 뒤에도 일할 수 있었는데 회사에서 그만둬주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였다”며 “아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이곳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인지증 진단을 받으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다. 4년 전 인지증 진단을 받은 이노하나(63)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기쁘다”고 말했다. 이노하나는 이전에 요리를 해본 적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칼질’ 전문이다. 와타나베 구니오(63)도 집에서 밥을 지어본 적은 없다. “퇴직하고 할 일이 마땅치 않았던 때 이곳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물론 손놀림이 빠르지는 않았다. 와타나베는 조리용 장갑을 제대로 손에 끼우지 못해서 직원이 다시 끼워줬다. 후카타는 신문지를 테이블에 붙여 고정하는 작업을 할 때, 신문지에만 테이프를 붙였다. 그럴 때는 직원들이 다가와서 유쾌한 어조로 “이렇게 하시면 되죠”라고 고쳐준다.

이젠 보편적 질병

일본에서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는 배경에는 인지증이 ‘보편적 질병’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인지증 환자는 2015년 기준 525만명으로 2030년에는 83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기준 일본 인구는 1억2632만명이며 그중 65살 이상은 3562만명(28.2%)이다. 현재는 65살 이상 인구 7명 중 1명이 인지증 당사자이지만 2025년엔 5명 중 1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도 치매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한국 중앙치매센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치매 환자 수는 약 77만명으로 추산되고, 2024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인지증 대책도 ‘시설 수용’에서 지역사회에서 공존하는 ‘커뮤니티 케어’ 위주로 바뀌고 있다. 같은 인지증 환자라도 증상의 경중은 스펙트럼이 넓다. 증상이 아주 심각하지 않고 약간의 도움을 받아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면 되도록 지역사회 도움을 받으면서 본래의 생활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일본 거주자는 만 40살이 넘으면 개호보험료(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료)를 따로 내야 하는데, 이 개호보험료가 각종 돌봄 서비스의 재정적 기초가 된다.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이케어센터의 재정적 기반도 개호보험이다. 데이케어 시설 이용자는 증상 정도에 따라서 이용료 10~20% 정도를 본인이 부담한다. 인지증은 노화에 따라 발병 확률이 높아지지만 젊은 사람도 앓을 수 있다. 정부와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인지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고, 특별히 불행한 질병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인지증 치료의 일인자로 꼽히는 하세가와 가즈오(90) 박사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에요.” 그는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부터 해주고 싶다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떤 사람도 걸릴 수 있는 병이에요. 그러니까 병에 걸린 뒤에도 예전 자신의 생활을 되도록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아침이면 일어나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그런 생활 말이에요.”

도쿄 스기나미구에 있는 ‘인지증 돌봄연구연수 도쿄센터’에서 만난 하세가와 박사의 말은 자신의 인지증 체험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 자신도 2017년 인지증 진단을 받았다. 하세가와 박사는 1974년 인지증 진단을 위한 진단지 ‘하세가와 스케일’을 개발했다. 지금도 ‘하세가와 스케일’은 인지증 진단지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인지증 원인 질환은 알츠하이머를 포함해서 수십가지가 넘는데, 그는 과립성 인지증 진단을 받았다. 과립성 인지증은 인지증 중에서도 나이를 먹으면 많이 생기는 편이다. 그는 “의사인 나 자신이 인지증 진단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인지증에 걸리고 나서 인지증 환자를 돌보는 개호(돌봄) 인력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인지증 치료의 일인자로 꼽히는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
2017년 자신이 인지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뒤 하세가와 박사는 일본 주요 언론들과의 인터뷰, 대중 강연회 등을 통해서 인지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수십년 전 인지증 환자를 방에 가둬놓은 경우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편견은 남아있다. 인지증에 걸린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뇌 신경세포 변형이 일어난다. 하지만 인지증에 걸리기 이전과 걸린 뒤에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지증 진단 사실을 공개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는 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 환자는 ‘선생님 왜 제가 인지증에 걸렸나요’고 물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어요. 그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신경세포의 변화 같은 의학적 설명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왜 하필 내가 인지증에 걸렸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손을 잡아주며 ‘그러네요’라고 답해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더군요.”

하세가와 박사는 그 이전까지 쓰이던 ‘치호’라는 말 대신에 ‘인지증’을 사용하자는 주장도 앞장서서 펼쳤다.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차별적인 뉘앙스가 적은 곳이 있지만, 도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을 그만두게 한다든지 부작용이 많았다”고 했다. 하세가와 박사는 의학적 치료로만 인지증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는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완전히 인지증에 걸리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할 방법은 없다. 인지증에 걸리면 베타아멜로이드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쌓이는 경우가 많다. 그걸 멈추게 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세가와 박사는 인지증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인지증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 가이드북> 등 관련 도서를 여러권 냈다. 최근에는 <괜찮아요 우리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냈다. 한 할머니가 인지증에 걸린 뒤 길을 잃거나 사람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는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가족들이 헐머니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는 할머니를 기억하니까 괜찮다고 말하니 할머니가 안심한다는 내용이다. 하세가와 박사는 책 마지막에 “인지증에 걸리면 길을 잃거나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자상하게 손을 잡아주라”고 적었다. 하세가와 박사는 인지증 탓에 낮에는 비교적 사람들의 말에 집중할 수 있지만, 오후가 되면 집중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하세가와 박사와의 만남도 그래서 오전에 이루어졌다.

사이타마현·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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