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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7 09:39 수정 : 2019.07.27 10:04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⑧ 고령 운전자 문제

88살 고령 운전자 조작 실수
30대 어머니와 3살 딸 숨져
면허 자진반납 운동 더 커져

운전능력 점검 서비스 인기
초소형차 대여, 장보기 버스 등
다양한 이동수단 제공도 모색

지난 4월1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88살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31살 여성과 그의 3살짜리 딸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쿄/EPA 연합뉴스
지난달 7일 정장을 갖춰 입은 노신사 한 명이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사메즈운전면허시험장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남성이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직원에게 건네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이 남성은 배우인 스기 료타로로 올해 74살이다. 그는 더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날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그는 대거 몰린 취재진 앞에서 “나의 운전면허 반납이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70살 때 면허증을 갱신할 때 정말 힘들었다. 운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반응이 늦었다. 다시 갱신할 때는 반납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갱신 시점이 올해 8월로 다가오자 시기를 앞당겨 면허증을 반납했다.

사망사고 중 령운전 비율 높아

그의 운전면허 반납에 취재진이 몰린 직접적인 계기는 올해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 때문이다. 지난 4월19일 88살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31살 여성과 그의 3살짜리 딸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케부쿠로 폭주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스기도 이 사고가 자신이 운전면허 반납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케부쿠로 교통사고로 숨진 여성의 남편은 기자회견에서 “운전이 불안한 분이 있으면 (운전을 그만두는 것을) 가족이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지난 18일 도쿄 가스미가세키에서 가해자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다시 열었다. 지난해 6월 ‘아버지의 날’에 딸이 자신의 그림을 건네주며 “고마워요 아빠”라고 말한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앞으로 두 사람 같은 피해자(아내와 딸)와 나와 같은 유족이 없도록 되도록 무거운 죄로 기소하고 엄벌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가해자인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 페달 대신) 가속페달을 실수로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 일본 경찰은 가해자를 자동차운전처벌법 위반(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며, 유죄가 확정되면 가해자는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이케부쿠로 폭주 사건은 평범한 일본 가정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9일치 <요미우리신문> 독자 투고란에는 ‘면허 반납 가족 소동’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82살 남성을 남편으로 둔 여성은 “남편에게 몇번이나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했지만 남편은 자신이 고령자라는 자각이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런데 이케부쿠로 폭주 사건 뒤 아들이 ‘숨진 엄마와 딸이 내 아내와 딸과 겹쳐 보인다, 아버지도 면허를 반납해주기를 바란다’고 메신저 가족방에 글을 올렸다. 남편은 처음에는 거부하려 했으나 아들이 화를 내자 결국은 면허를 반납했다”고 전했다.

일본 전체로 보면, 교통사고 인명 피해는 크게 줄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970년 1만6785명에서 지난해 3532명까지 줄었다.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989년 9.03명에서 지난해 2.79명으로까지 감소했다. 음주운전 감소와 차량 안전장치 발전 등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 원인이다. 교통사고 발생 건수 전체로 봤을 때 고령 운전자가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전체 사고 중 연령별로 분석해보면 16~19살, 20~29살, 80살 이상 순으로 사고 발생 건수가 많다. 그러나 사망사고로 좁혀보면 2017년 기준 80살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인구 10만명당 14.6명으로 발생 비율이 가장 높다. 75살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망사고는 2006년 423건에서 지난해 460건으로 늘었다. 75살 이상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사망사고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7.4%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3.3%까지 늘었다.

75살 이상 고령자가 일으킨 사망사고 증가의 일차적 원인은 인구 고령화로 고령 운전자 자체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75살 이상이 운전면허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539만5312명으로 전체 8225만5195명 중 6.6%를 차지해 2007년(3.5%)보다 3.1%포인트 증가했다.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사망사고 원인 1위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는 등의 ‘조작 실수’(29.6%)였다.

공업디자이너 네즈 고타가 스펀지와 천을 뼈대로 디자인한 차량. 네즈 고타 누리집 갈무리

대중교통이 부족한 지역에선

이 때문에 일본 정부와 사회가 최근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캠페인이다. 하지만 고령자 상당수는 자신의 운전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반납을 촉진하기 위해서 고령 운전자의 실제 운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자동차보험회사 중에서는 다기능 ‘드라이브 레코더’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 이 기기는 운전자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시점, 운전대 조작 등의 자료를 수집한 뒤 종합적 평가를 내린다. 같은 연령대 운전자의 평균 점수와 비교도 해준다. 지방자치단체가 무료로 드라이브 레코더를 고령 운전자에게 대여해주기도 한다. 가나가와현 야마토시는 2017년부터 고령 운전자에게 무료로 드라이브 레코더를 대여한 뒤 시청 직원이 기록 내용을 토대로 개별 상담을 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면허증 자진반납을 유도한다.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하고 싶어도 대중교통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고령자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자동차가 없으면 위급한 경우에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자동차 앞에 사람이 있으면 가속페달을 밟아도 작동하지 않고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등의 안전장치가 추가된 자동차 개발을 자동차회사들에 요구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이런 안전장치를 갖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경우에 한정해 면허를 내주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면허 반납’이나 ‘계속 운전’ 둘 중 하나가 아닌 제3의 길도 모색되고 있다. 아이치현 도요타시 산악지대에서는 3년 전부터 지자체와 대학 등이 공동으로 고령자에게 최대 2명이 탈 수 있는 초소형차 30대를 대여해주고 있다. 자동차라기보다는 오토바이에 가까운 형태로, 면허를 자진반납한 고령자에게도 대여해준다. 다만 이 차는 일부 지역에 한정해서 운전할 수 있으며 다른 일반도로로는 나올 수 없다. 공업디자이너 네즈 고타는 스펀지와 천을 뼈대로 만든 자동차를 시험적으로 디자인했다. 부딪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치명적 인명사고가 나지 않게 만든 형태다. 자율주행차량 보급도 장기적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일본 지자체들이 당장 고령자 운전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부족한 대중교통을 보완할 각종 서비스다. 버스나 택시가 부족한 미에현 고모노 지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비영리법인(NPO)이 고령자에게 신청을 받아서 일정 비용을 받고 목적지에 실어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사업자에게 줄 보조금으로 268만엔을 책정했다. 가나가와현 즈시시와 가마쿠라시는 2015년 12월부터 ‘장보기 지원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정 쇼핑센터에서 장보기를 마친 고령자를 인근 노인복지시설 차량으로 집에 데려다주는 서비스다.

한국에서도 고령자 대상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고령자 운전 문제가 확산되면서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 시행 등 여러 대책도 검토되고 있다. ‘나이가 많으니 면허를 반납하는 게 좋다’는 단순한 설득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반납 필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설득, 그리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여러 이동수단이라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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