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7 17:12
수정 : 2019.10.28 12:53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우리 사회는 괄목할 경제성장과 물질적 생활 향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민생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주거 문제다. 급속한 도시화와 병행한 건설산업의 발달로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높아져, 2010년 100%를 넘었고 2017년 103.3%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국 자가점유율은 50%대 중반을 못 벗어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지난해 98.3%지만, 자가점유율은 49.9%에 그친다. 다른 가구는 거의 전부 전·월세 가구다.
세입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 정도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주거 불평등을 나타낸다. 여기에 소득을 고려하면, 불평등은 더 심각해진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점유율은 2006년 하위계층 49.7%, 상위계층 67.0%였지만 지난해에는 각각 47.2%와 75.2%가 됐다. 그리고 가계소득에서 주거비 지출 비중은 하위 1분위 소득계층의 경우 2006년 19.4%에서 지난해 28.5%로 크게 늘었다. 반면 상위 10분위 소득계층은 3.9%에서 3.0%로 줄었다. 주거 불평등이 더 심화된 것이다.
전체 주택의 절반이 주거보다 임대 수입과 집값 상승 목적으로 보유되는 셈이다. 다주택 보유자들은 대체로 소득이 높고, 불로소득으로 임대 수입도 얻는다. 반면 저소득 무주택 세입자들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임대료도 내야 하는 이중적 수탈을 당한다. 이들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이주에 따른 주거 불안정을 감내해야 하며, 주거비 증가로 다른 용도의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생활고를 겪는다.
주거는 삶에 필수적이며, 누구든 누려야 할 기본 권리다. 모든 사람은 인간적 존엄성을 위해 적정한 주거를 보장받을 권리, 즉 주거권을 가진다. 국가는 이런 주거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주거권은 헌법에 바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이를 함의한 조항은 여러 군데 있다. 예로 헌법 제34조 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천명한다.
이런 주거권 보장을 위해, 정부는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해 주거복지를 제공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최저기준에 못 미치는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 ‘집 아닌 집’에서 살고 있다. 이런 곳에서 아동의 주거환경은 더 열악하다. 이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여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우선 입주권을 부여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입자의 권리도 주거권에 준해 이해될 수 있지만, 그 특성상 사용수익권이자 채권으로서 제한된 권리로 규정되기도 한다. 최근 세입자의 권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누려야 할 ‘사회권’, 또는 자신이 만든 도시의 거주자로서 가지는 ‘도시권’으로 해석된다. 이런 취지로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제4차 사회권 심의 권고에서 한국 정부에 “치솟는 주거비를 규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임차인의 더 오랜 계약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갱신청구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1981년 제정된 이 법은 1989년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기 위해 한번 개정된 뒤 현재까지 적용돼왔다. 현행법은 보증금 우선변제권, 최단임대차기간 등 몇가지 세입자 보호 조항을 담고 있지만, 임대기간 보장과 임대료 규제 등 핵심 사항의 규정은 미흡하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은 2년마다 인상되는 임대료를 부담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면 이사를 해야 한다.
선진국은 대부분 세입자 권리 보호와 주거 불안정 해소를 위해 이런 사항을 반영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가는 지난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이 개인 재산권 행사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라고 비판하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거 사례를 제시하면서 개정된 법의 시행 직전 전·월세 가격의 폭등이 우려된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을 무산시키려 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7일 ‘세계 주거의 날’에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를 출범시켰다. 이 모임은 국회가 이번 회기 안에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인상률상한제 등을 반영한 법 개정을 할 것을 요구한다. 관련 법 개정은 주거 불평등과 불안정 해소를 위해 필수이며, 세입자의 권리와 이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 그리고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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