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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17:26 수정 : 2019.12.26 09:17

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연말이다. 빨간 자선냄비의 종이 울리면 왠지 겨울바람도 더 차갑게 느껴져 옷깃을 여민다. 연말이 곧 방학을 의미하던 나이는 지났다. 새해가 된다고 크게 변하는 것도 없다. 그저 학사일정에 따라 학습된 아쉬움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연말엔 마음이 좀 아련해진다.

2020년이 온다. 다들 ‘90년대생이 온다’고 할 때 ‘오긴 무엇이’라고 반문했던 나다. 이번엔 진짜 온다. 숫자만 봐선 정말 미래시대가 닥친 것만 같다. 이맘때쯤 되면 화성 정도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를 줄 알았고, 영화 <에이 아이>의 데이빗이 집마다 가족으로 있을 줄 알았다. 매년 4월 과학의 달 행사를 치러본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상상은 예사다.

미래시대의 도래를 어느 정도 체감하기는 한다. 빨간 자선냄비는 올해 들어 스마트페이 기능을 도입했고, 엊저녁 만난 친구와는 어떤 전자책이 더 나은지를 토론했다. 바깥 소리를 차단해준다는 최신 애플 이어폰은 무려 32만원이라는데도 나를 흔들었다. 상상하던 만큼의 미래는 아닌 듯하지만, 이마저도 매일 적응하기에 바쁜 현실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숫자를 잠시 바꿔본다. 지금이 2002년 연말이라면. 뒤에 있는 숫자를 살짝 틀었을 뿐인데 애틋해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88서울올림픽’을 중요한 에피소드로 다루었듯, 밀레니얼들은 ‘2002 한일월드컵’만 나오면 추억 공유가 한바탕 시작된다. ‘설마 88올림픽도 못 본 거냐’라는 질문을 들으며 자랐기에, ‘설마 2002 월드컵도 못 봤단 말이야’라고 생각해본다.

이왕 한번 떠올려보자. 집 근처 마트 주차장, 대형 스크린, 붉은 악마 티셔츠. 온 동네 주민들이 한데 모여 응원과 열광을 다하던 때였다. 모두가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을 때 국민 영웅 박지성 선수가 우뚝 섰고, 슈퍼스타 히딩크 감독이 탄생했다. 스포츠 대회뿐만이 아니다. 2002년은 드라마 <야인시대>가 무려 50% 시청률로 실재하던 때였고, 모두가 방송사 연말 가요 시상식을 지켜보며 수상을 점쳤다. 공채 연기자, 공채 코미디언, 미인대회마저 통하던 시대였으니 대중의 시각이 얼마나 몰입되었던가 새삼스럽다.

시간이 흘러 대중의 의미는 완전히 변모했다. 대형 스크린을 향하던 시선은,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손바닥만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최애를 응원하고 열광하며, 절대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지 않는다. 드라마 시청률은 10%가 넘으면 ‘대박’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언제 어디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스타라는 단어에 공채라는 수식어는 어색해졌고, 연말 가요 시상식은 폐지된 지 오래다. 대중은 취향대로 흩어져버렸다.

유행의 방향도 역행하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스타가 아닌, 만들어내는 스타가 탄생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는 콘텐츠 바닷속에서 스타는 대중들로부터 선택당하는 구조가 됐다. 최근 <교육방송>(EBS)의 ‘펭수’ 신드롬이 대표적이다. 남극에서 날아온 크리에이터 지망생 펭귄 한 마리가 진짜 스타가 되는 여정에는 단연 시청자가 있었다. 하루 1만부 이상의 예약판매를 기록한 다이어리와, 역대 최단기간 최다 판매 실적을 이룬 카카오톡 이모티콘 실적을 보면 펭수는 주력 소비집단으로 부상한 밀레니얼의 선택을 받은 스타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흩어진 대중을 향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2020년의 크리에이티브는 밀레니얼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은 점점 더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과거 광고주들은 얼마나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 드라마에 더 가까운 광고 자리를 차지할지를 두고 경쟁했다고 한다. 대중의 의미가 무색해진 지금, ‘어떻게 하면 제2의 펭수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펭수와 연결고리를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역시 무색하다.

계획과 분석이 딱히 통하지 않음을 인지했다면, 크리에이티브의 대상과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다가올 미래시대엔 어떤 이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어 할까.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기대되는 20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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