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명작으로 손꼽히는 한국 영화 중에 <마부>라는 영화가 있다. 1961년 개봉한 이 영화는 홀로 네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는 마부 ‘춘삼’의 이야기다. 1960년대 서울은 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했다. 신분을 속이고 연애하는 둘째 딸 옥희가 애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 춘삼의 마차를 보고 숨는 장면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당시 영화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영화 <마부>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빚 때문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던 말을 되찾았고, 아들은 고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춘삼과 같은 마부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영화와 달리 마부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1971년 <경향신문>은 ‘우마차를 몰아낸 용달차’라는 기사에서 5~6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에 우마차가 150대 있었지만, 이제는 소 4마리와 노새, 조랑말 등 6마리가 전부라고 달라진 세태를 전했다. 그나마 서울역 뒤에서 창고까지 짧은 거리만 오고 갈 뿐이어서 사실상 서울 시내에서 마부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 <마부>가 상영된 지 불과 10년 만의 변화다. 최근 에너지 분야 변화를 보고 있으면 사라진 마차가 떠오른다. 유럽을 중심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위한 정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디젤 엔진은 물론이고 온실가스 규제 강화로 휘발유 엔진도 퇴출되고 있다. 나라마다 편차는 있지만,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 프랑스와 영국은 204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를 발표했다. 이들 나라의 지자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파리는 2025년부터 디젤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할 예정이다. 런던은 기존 혼잡통행료 이외에도 런던을 통과하는 노후 경유차에 대해 배출가스 과징금을 부과해 런던 시내 진입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요 자동차 회사들도 이에 맞춰 ‘마지막 내연기관 자동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0년 이상 개량과 혁신을 거듭해온 휘발유·디젤 엔진 역사가 이제 조금씩 저물고 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풍경이 있다. 지난달 일본 도카이대학은 2021년 말까지 공학부 내에 설치된 원자력공학과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1956년 설립한 도카이대학 원자력공학과는 정원 160명을 계속 채우지 못했다. 이 대학뿐만 아니라 일본 대학의 원자력공학 전공 학생 수는 급격히 줄었다. 일본 원자력 백서에 따르면, 1994년 2200명을 상회하던 원자력공학 전공 학부·대학원생 수는 2008년 500명 이하로 떨어졌다. 원자력 관련 학과 수도 1984년 학부 10개 학과, 대학원 11개 과정에서 2004년 학부 1개 학과, 대학원 5개 과정으로 급감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학생 수가 약간 증가해 현재 750명 선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 증가하지 않고 몇년째 ‘보합세’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도 700여명의 카이스트 1학년 학부생 중 원자력 전공자가 2년 연속 4~5명에 그친다. 신입생 수보다 교수 수가 더 많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20여명의 학생이 원자력 전공을 선택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더 멀리 보면, 예전 본고사와 학력고사 시절 원자력공학과는 물리학과와 함께 전국 수석을 다투는 이들이 선택하던 과였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학과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2040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보고서’가 논란 끝에 배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서 신형 원자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급변하는 에너지 정세를 놓고 볼 때 답답한 소식들이다. 이런 계획은 변화를 몇년 늦출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변화의 소용돌이를 멈출 수는 없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마부 같은 단순 직업뿐 아니라 변호사나 회계사, 의사 같은 전문직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19세기 마차 산업 생태계를 살린다며 자동차 속도를 제한했던 ‘적기조례’를 만든 영국의 오류를 곱씹어보면서 말이다.
칼럼 |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마부, 내연기관, 원자력공학과 /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명작으로 손꼽히는 한국 영화 중에 <마부>라는 영화가 있다. 1961년 개봉한 이 영화는 홀로 네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는 마부 ‘춘삼’의 이야기다. 1960년대 서울은 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했다. 신분을 속이고 연애하는 둘째 딸 옥희가 애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 춘삼의 마차를 보고 숨는 장면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당시 영화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영화 <마부>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빚 때문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던 말을 되찾았고, 아들은 고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춘삼과 같은 마부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영화와 달리 마부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1971년 <경향신문>은 ‘우마차를 몰아낸 용달차’라는 기사에서 5~6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에 우마차가 150대 있었지만, 이제는 소 4마리와 노새, 조랑말 등 6마리가 전부라고 달라진 세태를 전했다. 그나마 서울역 뒤에서 창고까지 짧은 거리만 오고 갈 뿐이어서 사실상 서울 시내에서 마부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 <마부>가 상영된 지 불과 10년 만의 변화다. 최근 에너지 분야 변화를 보고 있으면 사라진 마차가 떠오른다. 유럽을 중심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위한 정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디젤 엔진은 물론이고 온실가스 규제 강화로 휘발유 엔진도 퇴출되고 있다. 나라마다 편차는 있지만,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 프랑스와 영국은 204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를 발표했다. 이들 나라의 지자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파리는 2025년부터 디젤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할 예정이다. 런던은 기존 혼잡통행료 이외에도 런던을 통과하는 노후 경유차에 대해 배출가스 과징금을 부과해 런던 시내 진입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요 자동차 회사들도 이에 맞춰 ‘마지막 내연기관 자동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0년 이상 개량과 혁신을 거듭해온 휘발유·디젤 엔진 역사가 이제 조금씩 저물고 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풍경이 있다. 지난달 일본 도카이대학은 2021년 말까지 공학부 내에 설치된 원자력공학과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1956년 설립한 도카이대학 원자력공학과는 정원 160명을 계속 채우지 못했다. 이 대학뿐만 아니라 일본 대학의 원자력공학 전공 학생 수는 급격히 줄었다. 일본 원자력 백서에 따르면, 1994년 2200명을 상회하던 원자력공학 전공 학부·대학원생 수는 2008년 500명 이하로 떨어졌다. 원자력 관련 학과 수도 1984년 학부 10개 학과, 대학원 11개 과정에서 2004년 학부 1개 학과, 대학원 5개 과정으로 급감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학생 수가 약간 증가해 현재 750명 선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 증가하지 않고 몇년째 ‘보합세’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도 700여명의 카이스트 1학년 학부생 중 원자력 전공자가 2년 연속 4~5명에 그친다. 신입생 수보다 교수 수가 더 많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20여명의 학생이 원자력 전공을 선택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더 멀리 보면, 예전 본고사와 학력고사 시절 원자력공학과는 물리학과와 함께 전국 수석을 다투는 이들이 선택하던 과였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학과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2040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보고서’가 논란 끝에 배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서 신형 원자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급변하는 에너지 정세를 놓고 볼 때 답답한 소식들이다. 이런 계획은 변화를 몇년 늦출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변화의 소용돌이를 멈출 수는 없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마부 같은 단순 직업뿐 아니라 변호사나 회계사, 의사 같은 전문직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19세기 마차 산업 생태계를 살린다며 자동차 속도를 제한했던 ‘적기조례’를 만든 영국의 오류를 곱씹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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