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핵발전소에 견학 가면 항상 보여주는 ‘다중 방벽’ 개념도가 있다. 핵물질을 모두 5개의 방벽이 감싸고 있는 그림이다. 핵연료 펠릿(원자로에 쓰는 산화우라늄이나 산화플루토늄 가루를 원기둥 모양으로 만들어 구워서 굳힌 것), 핵연료봉, 원자로 용기, 격납건물 철판(CLP), 콘크리트 격납건물 등 5개의 방벽이 감싸고 있어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설명이 항상 따라붙는다. 이중 콘크리트 격납건물의 경우, 두께 1m가 넘는 실제 모형을 전시한다. 콘크리트 내부엔 두꺼운 철근이 가득 차 있고, 한쪽 곁에는 전투기가 격납건물에 충돌해도 끄떡없다는 동영상까지 상영하면서 핵발전소 안전성을 강조한다. 격납건물은 평소에도 원자로와 각종 설비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용도는 폭발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충격을 견디고 방사성 물질 유출을 막는 것이다. 격납건물 바깥은 외부이기 때문에 격납건물은 핵사고를 막는 ‘최후의 보루’라고도 한다. 따라서 일반 건물과 달리 더 두껍고 튼튼하게 지어야 하며, 평소에도 밀폐 상태를 항시 유지해야 한다. 이 중요한 격납건물 철판에서 구멍이 발견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2016년 7월, 전남 영광 한빛 2호기에서 처음 발견된 구멍은 이후 진행된 전수조사로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철판 두께가 기준치에 미달하는 결함이 발견된 곳은 무려 9998개에 이른다. 이들 결함이 발견된 핵발전소도 13기에 이른다. 다른 발전소와 원자로형이 다른 월성 1~4호기에는 격납건물 철판이 없기 때문에 국내 핵발전소 중 62%가 문제인 것이다. 특히 한빛 2·4호기에서는 철판이 관통된 사례가 발견됐고, 한빛 1호기와 고리 3·4호기에서는 각각 2천곳 이상의 결함이 드러났다.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철판을 바깥에 오랫동안 내놔 삭거나, 작업 중 지나치게 깎아내서 철판에 문제가 생긴 경우들이다. 격납건물 철판을 조사하던 중 콘크리트 격납건물에서도 구멍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전국 핵발전소 8기에서 구멍 295개가 발견됐다. 한빛 4호기에서는 최대 지름 157㎝짜리 대형 구멍이 발견되기도 했다. 콘크리트 격납건물의 구멍은 콘크리트 타설 당시 부실 시공을 했거나 건설 기간을 줄이려고 보강재를 없애지 않고 공사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철판과 콘크리트 모두 건설할 때 부실이 인제야 드러난 것이다. 이들 점검과 조처로 정비일 합계가 15개 핵발전소에 3400여일이나 된다. 한빛 4호기는 780여일째 가동을 멈췄고, 고리 3호기와 한빛 3호기가 각각 400일 이상 가동을 멈추었다. 현재까지 보수 점검 비용으로만 1655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 생산을 못해 생긴 매출 피해는 더 클 것이다. 통상 핵발전소 1기의 전력판매액은 하루 1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이미 수조원의 매출 피해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부실 공사와 피해액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현대건설 등 시공사에 1차 책임이 있다. 건설 공사를 감독했던 감리사와 정부 관계자들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시공사는 하자 보수 기간이 지났다고 발을 빼고 있고, 관리·감독 책임자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물 뒤쪽 부실은 잘 감추면 된다는 건설업계 오랜 악습이 핵발전소에도 그대로 적용돼왔다는 점이 섬뜩하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사고가 나서 대규모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자, 현대건설은 한빛 3·4호기 보수 비용을 자체 부담하겠다고 밝혔다는 소식이 들린다. 보수 비용만 언급한 구두 약속이라 정확한 내용을 알기 힘들지만, 이 정도 선에서 책임 추궁이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건설업계 비리와 부실 시공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파트와 다리, 백화점이 무너지고 희생자가 생기고야 문제가 해결되는 이런 악순환은 이제 끊어야 한다. 핵산업계 역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를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칼럼 |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건설업계 악습이 핵발전소에도 / 이헌석 |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핵발전소에 견학 가면 항상 보여주는 ‘다중 방벽’ 개념도가 있다. 핵물질을 모두 5개의 방벽이 감싸고 있는 그림이다. 핵연료 펠릿(원자로에 쓰는 산화우라늄이나 산화플루토늄 가루를 원기둥 모양으로 만들어 구워서 굳힌 것), 핵연료봉, 원자로 용기, 격납건물 철판(CLP), 콘크리트 격납건물 등 5개의 방벽이 감싸고 있어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설명이 항상 따라붙는다. 이중 콘크리트 격납건물의 경우, 두께 1m가 넘는 실제 모형을 전시한다. 콘크리트 내부엔 두꺼운 철근이 가득 차 있고, 한쪽 곁에는 전투기가 격납건물에 충돌해도 끄떡없다는 동영상까지 상영하면서 핵발전소 안전성을 강조한다. 격납건물은 평소에도 원자로와 각종 설비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용도는 폭발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충격을 견디고 방사성 물질 유출을 막는 것이다. 격납건물 바깥은 외부이기 때문에 격납건물은 핵사고를 막는 ‘최후의 보루’라고도 한다. 따라서 일반 건물과 달리 더 두껍고 튼튼하게 지어야 하며, 평소에도 밀폐 상태를 항시 유지해야 한다. 이 중요한 격납건물 철판에서 구멍이 발견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2016년 7월, 전남 영광 한빛 2호기에서 처음 발견된 구멍은 이후 진행된 전수조사로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철판 두께가 기준치에 미달하는 결함이 발견된 곳은 무려 9998개에 이른다. 이들 결함이 발견된 핵발전소도 13기에 이른다. 다른 발전소와 원자로형이 다른 월성 1~4호기에는 격납건물 철판이 없기 때문에 국내 핵발전소 중 62%가 문제인 것이다. 특히 한빛 2·4호기에서는 철판이 관통된 사례가 발견됐고, 한빛 1호기와 고리 3·4호기에서는 각각 2천곳 이상의 결함이 드러났다.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철판을 바깥에 오랫동안 내놔 삭거나, 작업 중 지나치게 깎아내서 철판에 문제가 생긴 경우들이다. 격납건물 철판을 조사하던 중 콘크리트 격납건물에서도 구멍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전국 핵발전소 8기에서 구멍 295개가 발견됐다. 한빛 4호기에서는 최대 지름 157㎝짜리 대형 구멍이 발견되기도 했다. 콘크리트 격납건물의 구멍은 콘크리트 타설 당시 부실 시공을 했거나 건설 기간을 줄이려고 보강재를 없애지 않고 공사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철판과 콘크리트 모두 건설할 때 부실이 인제야 드러난 것이다. 이들 점검과 조처로 정비일 합계가 15개 핵발전소에 3400여일이나 된다. 한빛 4호기는 780여일째 가동을 멈췄고, 고리 3호기와 한빛 3호기가 각각 400일 이상 가동을 멈추었다. 현재까지 보수 점검 비용으로만 1655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 생산을 못해 생긴 매출 피해는 더 클 것이다. 통상 핵발전소 1기의 전력판매액은 하루 1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이미 수조원의 매출 피해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부실 공사와 피해액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현대건설 등 시공사에 1차 책임이 있다. 건설 공사를 감독했던 감리사와 정부 관계자들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시공사는 하자 보수 기간이 지났다고 발을 빼고 있고, 관리·감독 책임자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물 뒤쪽 부실은 잘 감추면 된다는 건설업계 오랜 악습이 핵발전소에도 그대로 적용돼왔다는 점이 섬뜩하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사고가 나서 대규모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자, 현대건설은 한빛 3·4호기 보수 비용을 자체 부담하겠다고 밝혔다는 소식이 들린다. 보수 비용만 언급한 구두 약속이라 정확한 내용을 알기 힘들지만, 이 정도 선에서 책임 추궁이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건설업계 비리와 부실 시공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파트와 다리, 백화점이 무너지고 희생자가 생기고야 문제가 해결되는 이런 악순환은 이제 끊어야 한다. 핵산업계 역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를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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