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4번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이기인씨.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씨는 땅을 5번째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놓이자 지난해 3월30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옆에 세워두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토지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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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⑥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일생에 4번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이기인씨.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씨는 땅을 5번째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놓이자 지난해 3월30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옆에 세워두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토지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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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토지보상법 말고도 110개의 개별법으로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제도에 반대하며 495일째 1인시위를 하는 박성율 목사. 지난 6일에도 자택인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를 나서 청와대 앞에 섰다. 박성율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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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 국방부에…
이번엔 논 1700평 또 수용될 위기
철원군청에 따지니 고소 운운
이씨 딸 “사람 위에 법 있더라” 공익성 검증 부실한 ‘토지수용 법안’ 한해 3000건 토지수용 사업 중
국토부 ‘사업 인정’은 7.1건 꼴
폭넓은 예외 인정에 공익성 ‘뒷전’
공공기관 9년간 여의도 132배 수용
최소 49개 법안 ‘민간 강제수용’ 허용 시·군청 공고로 끝… 졸지에 ‘토지난민’ 지자체 누리집에 일방적 사업공고
주민들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
이의제기도 못하고 보상금 협상만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 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토지보상법 4조는 “국방·군사시설, 철도, 도로, 공항 등에 관한 사업” 등 강제수용이 가능한 공익사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다만 4조 8항에서 토지보상법이 아닌 개별법에서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문제는 이런 법률이 110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은 2000년 43개였으나 의원 발의 등으로 점차 증가해 2019년 현재 110개에 이르렀다. 110개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사업자의 토지 수용을 허용한다. 2013년 연구보고서 <우리나라 수용 법제에 대한 법경제학적 검토>를 낸 이호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낸) 당시 개별법이 100개였는데 이 가운데 49개 법률이 공공이 아닌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허용했다”고 분석했다. 강제수용에 앞서 공익성 검증 절차 또한 부실하다. 토지보상법은 수용 이전에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해 이뤄지는 토지 수용 사업 3000여건 가운데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은 건수는 2014~2019년 43건에 그친다. 한해 평균 7.1건에 불과한 이유는 토지보상법이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폭넓게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사업을 공고하거나 관리 계획 또는 사업 계획 승인을 하면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사업 인정 의제’를 허용한 탓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 110개 가운데 91개가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선거 때 남발되는 각종 개발 공약 또한 이런 손쉬운 과정을 통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한다. 특히 산업단지 유치 공약의 경우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허가를 쉽게 내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 앞에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진위원장(맨 왼쪽)과 주민들이 서 있다. 구만리 주민들은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다치고 전과자가 되었다. 주민들의 반대 투쟁으로 골프장 공사는 중단됐다. 홍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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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를 지낸 법인의 골프장 조성 공사는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강원도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골프장들이 홍천군 곳곳에 조성되면서 농민들은 터전을 잃었다. 홍천/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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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토지난민연대 2차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토지 강제수용 철폐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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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한 장의 서류에서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재산 공개 내역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논과 밭이었다. 제보자, 취재원, 조력자 없이 시작한 취재였다.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홀로 전국을 헤맸다. 6차례 이어진 탐사기획의 소재는 농지로 동일하지만, 같은 소재를 두고 다양한 계층과 층위의 현실을 담으려 했다. 1~2회는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실태를 공약 전수조사와 그들의 농지 인근 도로 개설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3회는 한 마을에서 이뤄지는 농지 투기 실태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어떻게 부동산 왕국을 이루는지, 한 공간을 깊이 들여다봤다. 4회는 법률적 측면이다. 누구나 위반하지만 범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농지법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앞장서서 허무는지, 편법으로 취득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현장 취재를 대비해 보여줬다. 5회는 개발 예정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농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12명의 농민 구술로 담아냈다. 6회는 개발로 인해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의 문제점을 짚었다. 공직자들에 대한 개별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농지 소유가 일상화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실과 이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했다. 의원들의 농지 소유에서 시작된 연재는 마지막에 토지보상법이라는 부조리한 법률에 닿았다.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법이 제정되는 국회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누가 어떤 법을 입법하고 이로 인한 이득을 취하는지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이 문득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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